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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13~20 지혜는 생명나무 2017. 1. 4

 

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19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20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지난주에 말씀 중에 조금 더 살펴볼 내용이 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자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으로 처음 것을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처음 익은 것을 요구하신 이유는 처음 것의 희생으로 나머지가 거룩함을 입는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출애굽 때에 장자의 죽음에서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남은 처음 것은 여호와께 드려지는 내용이나, 곡식의 처음 익은 것을 드림도 처음 것이 여호와께 드려짐으로 나머지가 거룩하게 되는 것을 말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가 이 역사 속에서 탄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과정임을 살펴보았습니다.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썩어질 것을 유업으로 받는 자들이 아니라 이 역사라는 시간과 공간이 다 사라진다고 하여도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의 유업을 받는 자들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태로부터 죄인이라서 땅의 것만 추구하는 삶을 살아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나라에 대한 내용보다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것들에 마음이 가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로 대접하시는 과정을 징계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2:1~6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잠언서 3:11~12절을 인용하면서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의 과정을 걸어갔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거리끼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거리끼고 얽매이기 쉬운 죄들이란 선악과 이후의 인과율에 쌓여 살아가는 모든 세상살이입니다.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얽매이기 쉬운 죄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신 예수를 언제 바라보겠습니까? 주의 징계와 꾸지람이 있을 때에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분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7~13절입니다.“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이런 내용들이 처음 익은 열매가 드려짐으로 그 처음 익은 열매의 희생 안에 들어가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열매를 잘 바치면 세상의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흔히들 구약은 물질적인 복을 말한다고 하지만 구약의 복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이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멀리서 환영하며 기뻐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세상의 썩어질 것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과정이 징계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는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징계하여도 우리가 복종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주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하여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는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그 징계를 통하여 연단을 받으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의 발이 곧은길로 가게 하라고 합니다. 그 길의 목표가 의와 평강입니다.

 

오늘 본문 13~15절입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이 최고의 힘과 가치를 지니는 세상입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고 명철을 얻으면 자본이 많아지는지를 계산하게 됩니다. 돈이 안 되는 지혜와 명철은 퇴출되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 더한 노력으로 지혜와 명철을 찾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적은 자들이 한 달 동안 힘들게 돈을 버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동자들이 힘들게 한 달 동안 벌어서 하루 폼 나게 돈 쓰는 재미로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세상살이입니다. 옛날에는 버는 대로 차곡차곡 모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모아서는 평생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것을 알기에 포기하고 삽니다. 그래서 n포 시대라고 합니다. 미래를 포기하고 오늘 하루 돈을 씀으로 하루라도 자신이 주인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지혜와 명철을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한 마음으로 찾겠느냐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3:44~46절입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천국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주일오전에 마태복음에서 살펴본 내용입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감추어 두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과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진주장사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다르게도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우발적이든 지속적이든 천국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천국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산다고 하는 것은 주님에 의하여 찾아내어진 자들은 세상의 썩어질 것들이 보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임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정말로 성령이 임한 성도들이 맞습니까? 제가 경기도와 광주에서 성경공부 할 때에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현금 백만 원이 아무른 이유나 조건 없이 정말 공짜로 주어지는 기쁨과 영생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소식 중에 어느 것이 더 피부에 와 닿는 소식이냐고 물었습니다. 너무 유치한 질문을 했습니다만 우리가 지혜와 명철을 얻기 위하여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애를 써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잠언서 첫 시간에 남방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그 멀리서 온갖 보석과 귀한 것들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예수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솔로몬의 지혜는 세상의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온 세상에 소문이 날 정도의 부귀와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혜 그 자체이신 예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난 그런 부귀와 영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방 여왕이 그 심판의 날에 이 시대의 사람들을 심판 할 것이라고 합니다. 솔로몬보다 큰 이가 오셨지만 그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보면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옷이 들의 한 송이 꽃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일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합니다. 그런데 이런 염려는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이나 하는 염려라고 하시면서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합니다. 공중의 새는 농사짓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는 길쌈하지 않아도 솔로몬의 그 영광으로 입은 옷 보다 더 아름답게 입히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아멘하시겠습니까? 솔로몬은 온갖 명품으로 다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마른 땅에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이 없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자들이 무엇을 보고 따라갑니까? 제자들조차 세상의 힘과 영광을 위하여 따라갔습니다. 이들은 지혜와 명철을 구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썩어질 것을 구하며 따라간 것입니다. 왜 이럴까요?

 

본문 16~17절입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다고 합니다. 그 길은 즐거운 길이며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지혜를 찾아 얻으면 장수하고 부귀를 누리며 즐거움과 평강이 있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예수님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 장수하고 부귀를 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약이나 신약이나 간에 지혜와 명철의 길을 간 사람들이 어떤 길을 갔습니까?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이 간 길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간 길이 어떤 길입니까? 고난과 핍박과 죽음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지혜의 오른 손에 있는 장수와 지혜의 왼손에 있다는 부귀가 세상의 장수와 부귀영화가 아닌 것이 자명합니다. 히브리서의 믿음의 사람들 중에 첫 째가 아벨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심으로 그의 형에 의하여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두 번째 믿음의 사람으로 나오는 사람이 에녹입니다.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요절한 것으로 볼 것입니다. 그 다음이 노아입니다. 노아가 무엇을 예비하면서 살았습니까? 금과 은을 위하여 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고팔고 먹고 마시며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바빴지만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를 예비한 것입니다. 그 다음의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도 하는 아브라함은 평생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지혜와 명철을 구한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 되도다오늘 말씀의 핵심구절입니다. 지혜를 얻은 자에게 그 지혜가 생명나무가 됩니다. 즉 지혜를 얻은 자는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혜를 가진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혜를 얻지 못한 자는 생명이 없기에 이 세상의 죽은 것과 썩은 것과 결국 멸망하여 불태워 없어질 것들을 보물로 보면서 살아갑니다. 죽어서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들을 보물로 여기며 사는 자들이 생명이 없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 19~2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시고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가르시고 공중의 이슬이 내리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보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보고 배우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미 인간이 타락하여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상태이기에 하늘과 땅을 통하여서도 참된 지혜와 명철을 찾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는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창세기 3:22~24절입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차단 된 인생들은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생명나무라고 지혜를 찾으라고 하였지만 생명의 가치를 모르기에 지혜마저 세상의 것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로마서 1:18~23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그 만물에 보여주시고 알리셨지만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그 생각들이 허망하여져서 썩어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미련하고 어리석어진 인생들이 실상입니다. 사람들이 지혜롭다고 하고 명철하다고 하지만 그들이 구하여 찾는 것이 썩어질 것들이라면 이들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이로 인하여 세상이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은을 구하고 금을 구하는 것은 오늘 식으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돈을 벌어서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결국은 썩어질 것들입니다. 물론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삽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생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인생들이 추구하는 것은 거저 밥만 먹고 살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들을 추구합니다. 타락한 인생들이 지혜와 명철을 말합니다.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지혜를 사랑한다고 하는 자들이 철학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에게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지혜와 명철의 이야기가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결코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수님에게 와서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켜온 부자관원도 예수님 앞에서 돌아서 버렸습니다. 3년을 따라다닌 제자들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돌아서 버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지혜와 명철로 받아 들여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함을 성경이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심으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8~40절입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예수님을 보고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루어 내셔야 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6:53~57절입니다.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지혜와 명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 믿는 자들이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알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하는 것은 내 평생의 소원이라는 찬송가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기에 그 생명을 알고 믿게 되는 것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열린 자들입니다. 이들은 생명 쪽에서 우리는 잡아 이끌어 들이는 형식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저주 받은 십자가가 생명인줄 알고 들어가는 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이 지혜와 생명나무임을 믿게 되는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2: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에베소 교회가 받은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처음 사랑이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버린 것이 책망이라면 이기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생명나무 열매를 주어 먹게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 살펴본 요한복음과 연결하여 보면 생명나무의 열매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됨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긴 자를 특정한 사람으로 말하면서 그 이긴 자의 말만 들어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신천지의 사람들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2:1~5절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생명수가 어디에서 흘러나옵니까?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입니다.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요한계시록의 어린 양입니다. 그 생명수가 흐르고 생명나무가 있다는 것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나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나라에 속히 가고 싶어 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요한계시록 22:13~14절입니다.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입혀주신 의의 세마포에 인간의 더러운 것을 묻히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입은 두루마기에 다른 것들이 묻었다면 그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의지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8~21절입니다.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보태고 제하여 버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완성에 무엇을 더하거나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생명나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을 증언하신 분이 진실로 속히 올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