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예레미야 7:1~15 도둑의 소굴이 된 성전 2013. 8. 14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면 긴늪 솔밭에서 부흥회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소는 중학교 때 소풍가던 장소라서 익히 아는 곳입니다. 부흥회를 마치고 강사와 회중이 함께 통성기도를 하는 중에 갑자기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이상한 노래가 들리니 더 크게 기도합니다. 그러자 묘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하나님이여 이 백성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거짓말이야~. 주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거짓말이야~.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거짓말이야~. 이런 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무엇이 거짓말인지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7:1~3절입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합니다. 참된 선지자들은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번에 임한 말씀은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의 문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여야 합니다. 성전으로 예배하러 오는 자들에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너희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 예배하러 오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예배하러 오는 자들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변에서 종종 듣는 말은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말입니다. 부흥사들이나 대형교회들에서 주로 나오는 말입니다. 물론 작은 교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배의 성공이란 공식예배에 잘 참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하여 예배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예배를 잘 드리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합니다. 이럴 때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는 록펠러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교회 몇 년 다닌 사람은 다 알만한 이야기입니다. 주일성수, 앞자리 앉기, 십일조 철저하게 하기,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기기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도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정 반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절기를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몰려오는 그 시간에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합니다. 그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내용은 5~6절에 나옵니다.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성전에 예배하러 오는 이 사람들이 평소에 우상숭배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행위를 고치지 않고 거저 성전에 나와서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행위를 고치면 조상들에게 영원무궁하도록 주신 땅에서 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7:4절을 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세 번을 반복하는 것은 최고의 강조입니다. 예레미야 당시의 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였던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에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고 여호와의 눈이 늘 살펴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이 지은 전에 거하실 수는 없습니다. 이미 솔로몬도 열왕기상 8:27절에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도 주님을 용납할 수 없거든 하물며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전에 거하실 수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다만 그 이름을 두신 곳이니 눈으로 살펴보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전이 어떻게 거짓말이 되어 버린 것입니까? 그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제사만 잘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는 식의 말을 들었습니다.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이기에 성전이 유지되고 성전의 제사가 유지되는 한 우리나라는 안전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너희의 일상생활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곳에 와서 아무리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도 이곳은 성전이 아니라 도둑의 소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합니다.

 

7:8절입니다. 무익한 거짓말이란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기에 여호와께 예배만 잘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을 무당종교라고 합니다. 무당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저 복채만 많이 가져오면 화를 복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로 나올 때에 어떤 마음으로 오십니까?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든지 그런 것을 지적하지 말라는 마음이 아닙니까? 세상에서 사는 것이 힘들지만 그 나마 교회로 오고 헌금까지 하는 나에게 종교적인 서비스를 해달라고 교회에 오셨다면 잘못 오신 것입니다. 교회란 종교 서비스 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그러한 죄가 하나님을 살해하였다는 책망을 받는 곳입니다.

 

7:9~10절입니다. 평소에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하느냐는 책망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평소의 삶은 가증한 우상을 숭배하고 삽니다. 바알에게 분향하고 다른 신들을 따른다는 것은 그들이 양다리를 걸친 면도 있지만 그들의 일상적인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함이 아니라 풍요와 다산이라는 우상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성전을 찾고 교회를 찾아도 역시 우상숭배입니다.

 

에스겔 14:1~11절입니다. “봉독” 에스겔서는 예레미야보다 역사적으로 더 뒤에 일어난 일이기에 이미 유다가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도 그들의 마음에 우상을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태로 선지자에게 묻기 위하여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선지자의 책망은 어떠합니까? 역시 그들의 마음에 우상을 품고 있으면서 성전에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도적의 소굴이 되어버린 이런 성전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예레미야 7:12~15절을 봅니다.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여호수아 때 여호와의 이름을 가나안 땅에 처음 두신 곳이 실로입니다. 이곳에 언약궤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언약궤를 메고 나갔다가 그 둘은 언약궤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언약궤는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언약궤를 주술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언약궤를 메고 나간 것이 우상을 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실로가 폐허가 된 것처럼 지금 성전과 언약궤가 있다는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시대 때 성전이 도둑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기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70년의 때가 되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이 재건됩니다. 그 성전을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받은 스룹바벨이 주도하여 재건하였다고 스룹바벨 성전 이라고 합니다. 이 성전을 헤롯 왕 때에 46년간이나 증축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상당히 웅장한 건물이 되었습니다. 이때 성전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봅니다.

 

마가복음 11:15~18절입니다.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ㄱ)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ㄴ)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사 56:7렘 7:11)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십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시대 때 그들의 마음에는 바알을 섬기면서 겉으로는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책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향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를 의논합니다.

 

예레미야 당시나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의 구원과 안전은 그들의 성전유지와 제사에 달려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전과 제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거저 건물로 된 성전의 유지와 제사만 잘 드려지면 그들은 구원도 받고 적들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시대 때는 바벨론에 의하여 그 성전이 파괴가 되듯이 예수님의 성전을 헐라는 그 말씀을 하시고 나서 약 40년 만에 로마에 의하여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18~22절입니다.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 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며 그의 성령이 임하여 그의 몸이 된 성도가 성전입니다(고전3:16, 6:19).

 

그런데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지 모릅니다. 허물어버린 건물 성전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됨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당 건물이란 성도의 모임을 위하여 필요한 정도로 말하면 과도한 헌신을 하지 않는 것을 우려하여 건물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그런 식의 헌금을 강조할 명목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성전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강도의 소굴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대 제사장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의 죄목이 성전을 허는 자라는 고발이었습니다(마26:61). 스데반 집사가 설교하고 순교한 이유도 성전을 공격하였기 때문입니다(행7장). 그러므로 오늘날 성전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성도가 성전임을 알지 못하면 우리도 무익한 거짓말에 속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그런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도적과 강도의 소굴임을 아시고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여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