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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7:16~28 기도하지 말라 2013. 8. 21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를 이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16절 말씀을 보시면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기도하지 말라,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간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에 기도하라고 해야 할 텐데 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앞에서 보았던 말씀에서 성전이 도둑의 소굴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아주 중요한 기능이 제사와 기도하는 집입니다.

 

이사야 56:4~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여호와의 언약을 붙들고 여호와께 연합이 된 자는 고자나 이방인이라도 그들의 제사를 받아주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집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일컬음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구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통하여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세워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자나 이방인이 성전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방인이 개종하면 성전 가까이 나아갈 수는 있지만 이방인의 뜰이라는 한정된 구역까지만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언약을 붙드는 자는 고자와 이방인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1:12~13절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히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사야서 56장의 말씀과 예레미야 7장의 말씀을 함께 언급하셨습니다. 성전이 도둑의 소굴이 되어 있는데 그런 곳에서 제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도둑의 심보임을 보았습니다.

 

이런 성전은 심판을 받아 파괴되어야 하기에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도둑의 소굴 된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이란 당연한 자기들의 탐심을 위한 기도이기에 하나님께서 듣지도 아니하시겠지만 오늘 말씀에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하여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기계적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항의도 하고 그 뜻을 돌이켜 달라고 간구도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심판이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사역 중에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을 한 곳만 보겠습니다. 아모스 7:1~3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죄악을 강력하게 지적하면서 선포합니다. 그러면서도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설수 있겠느냐며 하나님의 심판의 환상을 보고 중보적인 기도를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켜 주십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환상이 또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불의 환상입니다. 이것도 심판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다시 기도하기를 야곱이 미약하니 어떻게 설 수 있겠느냐는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세 번째 환상은 다림줄을 보았습니다. 다림줄이란 건물이 바른지 아닌지 추가 달린 측량 자와 같은 것입니다. 이 환상 앞에서 더 이상 아모스의 기도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다는 말은 더 이상 아모스의 기도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도 중보자적인 기도를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고 오늘 한국교회도 중보기도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예수님만이 중보하실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5절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자는 한 분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중보자는 없습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의 중보적인 기도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모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부로 중보기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사용하면 자신이 마치 중보자가 된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모퉁이 돌 선교회에서 발행하는 선교지에서 중보(中保) 기도한 죄를 회개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중보 기도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 하여 주셔야 하시는데 이것을 모르고 마치 우리가 중보자가 되는 양 착각하였다는 회개의 기도를 한다는 글이었습니다. 합동교단에서도 몇 변이나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규모가 큰 교회들이 하고 있으니 유야무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중보기도 팀이 없는 교회가 이상한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중보기도의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런 기도 속에 과연 나의 뜻은 무너지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왜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왜 일까요? 이제는 심판이 확정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 놓고 그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며 기도하는 것이 다시 더 큰 도둑질을 하기 위한 기도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자들을 가만히 두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둑의 소굴을 폭파 시켜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7:10절입니다. 평소에 바알을 섬기면서 성전에까지 나아와서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은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 자체도 바알숭배의 연장선상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들은 심판받아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모스 8:4~6절입니다. “4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아모스 시대나 이사야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지런히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며 제물을 드리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속마음은 무엇으로 가득합니까? 언제 월삭과 안식일이 끝나서 속임으로 장사하여 돈을 많이 벌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7:17~18절을 봅니다. 예레미야에게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는 이유가 나옵니다.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이 온통 우상숭배입니다.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고 부녀들은 가루로 반죽을 합니다. 누구에게 바치는 것입니까?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붓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이방의 신들을 향하여 온 백성들이 다 섬기는 것입니다. 이들이 여호와를 격노케 하기에 이들을 위하여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9~20절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여호와를 격노케 하는 것이며 또한 자기들의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진노와 분노를 이곳과 사람과 짐승들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붓겠다고 하십니다. 범죄는 사람들이 하였는데 왜 짐승들과 들의 나무들과 땅의 소산에까지 진노를 부으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려야 하는데 사람의 죄로 인하여 다른 피조물까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이런 피조물들을 우상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고 또 피조물들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기에 이런 것들을 함께 심판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18~25절입니다. “봉독”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심판을 받았는지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 이 시대는 신약 시대입니다. 옛 언약의 한계를 알려주셨고 이제 새 언약으로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종교성이란 구약의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잘 드려서 인생에 성공하자는 이야기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드리는 희생과 번제물은 너희나 먹으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7:21~26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입니다(삼상15:22).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호6: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심령입니다(시51:17). 그런데 여호와의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냈지만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27~28절입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에게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여도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들의 입에서 진실이 사라진 것입니다. 진실이란 진리, 믿음, 성실과 같은 말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이 없고 우상만 가득한 자들의 입에서 거짓된 것만 나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우상들이 파괴되어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심으로 탐심의 말이 아니라 진실과 진리의 말이 나오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지금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십니다. 그 결과로 인하여 나오는 기도는 탐심이 아니라 진리를 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