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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7:29~8:3 게헨나 -지옥 2013. 8. 28

 

29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라 3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33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8: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3 이 악한 민족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전을 도적의 소굴을 만들어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판의 말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도적질을 하기 위한 든든한 근거로 삼기 위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일상의 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면서 단지 종교적인 의무와 의식을 행함으로 자기들은 구원을 얻었고 또한 복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성전을 도적의 소굴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세 번이나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망에 돌이키지 않고 이런 선지자를 오히려 핍박합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이 성전과 성전이 있은 예루살렘도 함께 멸망하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입니다. 너의 머리털을 베어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란 여성명사입니다. 예루살렘을 여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그 머리카락을 베어버린다면 것은 얼마나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당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베어 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하라고 합니다. 벗은 산은 개역한글에서는 자산(赭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우상숭배의 장소로 재난이 닥치는 곳으로 행음의 장소로 언급됩니다. 우상숭배는 자산위에서도 하지만 푸른 나무 아래서 많이 합니다. 이런 곳이 자산이 되었다는 것은 여호와의 노로 인하여 심판을 받아 황폐하게 되었기에 머리를 베고 통곡하라는 말씀입니다.

 

30절입니다. 유다 자손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는데 그 악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으로 받는 여호와의 집인 성전에서 가증한 우상을 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명령한 것도 아니며 여호와의 마음에 생각한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악한 우상숭배에 빠진 것을 한 왕을 통하여 봅니다.

 

열왕기하 21:1~16절입니다. “봉독” 본문이 길지만 전체를 읽은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책망이 이렇게 구체적인 죄악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악들은 반드시 언약의 저주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레미야 7:31~32절입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 에 사당을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고 되어 있는 이곳은 여호수아 때에 유다 지파가 차지한 땅입니다. 그 당시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여부스 족속의 한 사람의 이름이 힌놈인데 그 힌놈이라는 사람의 아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으로 봅니다. 여호수아 15:8절입니다.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쪽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쪽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쪽 끝이며” 이곳에 자기 아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 우상의 이름이 몰렉입니다. 자식을 몰렉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이미 율법에서 금지하고(레18:21, 20:1~5)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우상을 받아들여 자기 자식을 몰렉에게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도벳이라고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하지 않고 죽임의 골짜기라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죽임 당한 자들이 더 이상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매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이 힌놈의 골짜기란 심판과 저주의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성전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고서는 대대적인 개혁을 합니다. 개혁중의 하나가 힌놈의 골짜기를 부정한 것을 태우는 쓰레기 처리장을 만들어 버립니다.

 

열왕기하 23:10절입니다.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힌놈의 골짜기 도벳을 더럽게 하였다는 것은 온갖 우상들과 부정한 것들을 요시야 왕이 개혁하면서 불에 태워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 배경을 위하여 열왕기하 23:1~27절까지 보겠습니다. “봉독” 어느 정도의 우상숭배가 만연하였는지 이스라엘 온 땅과 성전에까지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기는 곳이 되었습니다. 요시야가 엄청난 종교개혁을 하였지만 므낫세의 그 범죄를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힌놈의 골짜기를 히브리어로 ‘게힌놈’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이 말이 헬라어에서 ‘게헨나’나로 불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힌놈의 골짜기가 바로 지옥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레미야서와 열왕기하 21장과 23장을 보면 힌놈의 골짜기만 자식을 우상에게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와 예루살렘 성전이 바로 지옥이 된 현실입니다.

 

요즈음 월화 드라마 황금의 제국을 가끔 봅니다. 중간에 보지 않아도 이야기가 연결이 되는 것은 인터넷에서 요약줄거리가 나옵니다. 그 내용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70년대 경제개발시기에 재벌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제국을 형성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족들이 아니라 서로가 이용 대상물일 뿐입니다. 자기 남편을 죽게 만들고 자기를 아내로 삼은 회장을 복수하기 위하여 27년을 완벽하게 속이고서는 마지막 3일 동안 그 회장에게 지옥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회장의 딸이 다른 곳이 지옥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 지옥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드라마란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며 비판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이 세상이 바로 지옥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지옥에서 승리하면 천국이 될 것이라고 여기며 모두들 황금의 제국의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달려가지만 그 제국의 끝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나방이 불을 향하여 달려가듯이 멈출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7:33~34절입니다. 그렇게 우상을 섬겼지만 그 우상들이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시체가 제대로 매장되지도 못하고 새와 짐승의 밥이 됩니다. 그 때에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쁘고 즐거운 소리와 신랑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황폐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면 이렇게 된다는 언약의 조문이 있기 때문입니다(신28:26).

 

8:1~3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 분토 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까지 세워 섬겼던 해와 달과 별들이 아무른 보호 장치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해와 달과 별들 아래서 그 뼈들이 분토 같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분토란 거름더미를 말합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보면 왕의 진노를 표할 때 왕의 대적이 죽었는데도 그 죽은 자들을 부관참시(剖棺斬屍) 시킵니다. 관을 쪼개어 시체를 다시 베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무덤도 열어야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무덤이 적들의 손에 훼손당하여 왕으로부터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그 뼈들이 거름더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형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를 지옥이라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남아 있는 자, 무릇 여호와께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낮다고 할까요?

 

그러므로 힌놈의 골짜기가 지옥의 대명사가 됩니다. 이러한 힌놈이 골짜기 즉 히브리어로 ‘게힌놈’인데 이것이 헬라어로 수용되면서 ‘게헨나’가 됩니다. 이 게헨나의 단어가 구약의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지옥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후기 유대 민중 신앙에 의하면 여기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는 곳으로 말하며, 복음서에서는 내세의 형벌을 받는 장소를 상징하는 말이 ‘게헨나’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5:21~22절입니다. “21 ㄱ)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출 20:13; 신 5:17)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 정도가 아니라 형제에게 노하고 욕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으로도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 지옥 불이라는 것이 힌놈의 골짜기의 쓰레기 더미에 불이 더하여 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5:29~30절입니다.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여기서 지옥이라는 말도 다 ‘게헨나’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에게 자기 자녀를 불로 태워 바친 곳을 요시야 왕이 쓰레기 더미로 만든 곳을 연상하면 지옥이 어떠한 곳인지를 상상이 됩니다.

 

이런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눈과 손이 범죄 할 때 그것을 잘라서라도 가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 눈과 손을 말합니까?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따 먹은 것입니다. 이러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그 걸음들이 결국 ‘게헨나’로 향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멸망의 길인 줄도 모르고 축복이라고 말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죽을 수도 없게 만들고 꺼지지 않는 불을 더하면 이곳이 지옥(地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지옥에서 탈출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옥에서 행복한 삶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살라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마태복음 10:28~29절입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누구를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헨나에서 불에 태워질 것 없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참새 한 마리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3:1~39절입니다. “봉독” 이런 말씀이 구약의 선지서와 연결하여 보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행하는 모습과 그 결과를 15절과 33절에서 봅니다. “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 지옥들이 다 게헨나입니다.

 

이러한 지옥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 세상이 지옥이기도 하지만 그 지옥이란 바로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우상을 성전에 세우고 그것들을 섬긴 것은 자신들의 탐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안의 탐심이 곧 우상숭배입니다(골3:5). 그러므로 이러한 탐심으로 온갖 우상을 끌어당기는 그 지옥의 불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0~23절입니다. “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예수님을 향하여 고발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답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옥입니다.

 

야고보서 3:5절을 봅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혀가 지옥불이라고 합니다. 이 혀는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지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지옥불이 혀에서 나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하나라도 갚아내지 않으면 지옥에서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23~26절입니다.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지금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이런 고발을 받고 있습니다. 한 푼이라고 남김없이 갚지 않으면 감옥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개역한글에서는 한 푼을 호리라고 하였습니다. 호리(毫釐)란 자를 잴 때에 짐승의 털 하나의 간격정도의 차이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까? 어느 인간도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3:10).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죄가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을 죄로 삼으시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완벽하게 죄가 용서 받습니다. 물론 이렇게 믿는 자들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만이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우리의 죄의 깊이와 길이와 높이와 넓이 보다 측량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길이와 높이와 넓이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2:5~18절입니다. “봉독”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에게 죄의 삯인 사망을 받으심으로 오히려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려 하신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여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죽기를 무서워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우리들의 눈을 뽑고, 손을 자르고, 발을 잘라서라도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11절에 보시면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한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한 근원에서 나왔기에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고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에게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5:21).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지옥의 고통을 맛보신 것이 성육신이며 십자가입니다. 그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과 영광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여 끌어가십니다. 여기에 끌려가는 자가 지옥을 벗어난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