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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9:25~26 마음의 할례 2013. 9. 25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1)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할례를 받았어도 마음으로 받지 아니한 자)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자랑하지 말 것과 자랑할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자랑하지 말 것은 지혜와 용맹과 부함을 자랑하지 말고, 자랑할 것은 명철하여 여호와를 아는 것과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분인 줄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추석을 맞으면서 자신과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이 과연 어떤 자랑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자랑하라는 것은 자랑하지 않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게 됩니까?

 

오늘 말씀에서 그 답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다 벌하신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할례에 각주가 달려있습니다. 그 각주를 보면 할례를 받았어도 마음으로 받지 아니한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바로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뒤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은 처음부터 할례가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도 할례를 행한 것이 고대의 그림들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또한 에서의 후손인 에돔과 롯의 후손인 암몬과 모압도 할례를 행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광야에 사는 살쩍을 깎은 자들은 처음부터 할례를 행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다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할례 받은 자나 받지 않는 자나 다 심판을 행하시는 이유는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자랑하고 자랑해야 할 것들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에 할례를 행하지 아니한 자들은 당연히 자기들의 지혜와 용맹과 부함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랑을 하지 말라고 할례를 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고 의지하다가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은 유다는 지금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직전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들의 할례를 근거로 같은 할례를 받은 자들과 동맹을 맺어 바벨론을 대항하여 살아남으려고 하는 이 시도를 하나님께서 벌하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할례는 창세기 17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할례를 명하심으로 할례 전과 할례 후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아브람이 할례를 행할 때 나이가 99세입니다. 이때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내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꾸어주십니다. 할례를 행하기 전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할례를 행하고 나서 이삭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할례의 가장 중요한 뜻은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할례는 사람의 혈육의 능력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생식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라는 말과 언약이라는 말의 공통적인 뜻이 자른다는 말이 들어갑니다. 언약이라는 말이 ‘베리트’인데 할례라는 말은 ‘물’이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하실 때에 짐승을 쪼개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쪼개진 짐승 사이로 언약의 당사자들이 함께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구경만 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타는 횃불의 형상으로 지나가심으로 언약이 체결됩니다. 만약 언약을 어기면 쪼개진 짐승처럼 쪼개어 져야 한다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언약이라는 말에 쪼갠다. 자른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할례 역시 생식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도 ‘베어버리다’, ‘자르다’ 는 뜻입니다.

 

그러면 할례를 받았다는 말은 무엇을 잘라내는 것입니까? 육체의 가능성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육체의 자랑들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기는 하였지만 이방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치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이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나 그들이 자랑하는 것이 똑 같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이 세상의 사람들과 똑 같은 것들이라면 그 사람은 아직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마음의 할례를 받았는지를 성경에서 할례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할례는 언약의 표시가 됩니다. 이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할례가 이미 율법에서조차 육적인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 받은 것의 뜻을 앞에서 보았습니다. 할례란 아브람의 육적인 생식능력으로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이스마엘을 통하여 보여주시고 나서 할례를 행합니다. 그러므로 이 할례란 반드시 마음의 할례가 되어야 제대로 된 할례입니다.

 

신명기 10:1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의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목을 곧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목을 곧게 한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은 이 말씀의 단락이 되는 12~2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너희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목이 곧아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의 할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신명기 30:6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마음에 할례를 누가 행하시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음에 할례를 베푸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셔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에서 마음의 할례를 말씀하시고 이 마음의 할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셔서 그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 마음의 할례를 어떻게 행하시는지 보겠습니다.

 

레위기 26:40~43절입니다. “40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41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43 그들이 내 법도를 싫어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그 땅은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할례를 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도 대항하셔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붙이심으로 여호와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않은 마음이 낮아져서 그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이삭과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자기들은 이렇게 형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더욱더 목을 굳게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하였습니까?

 

예레미야 4:4절입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마음의 가죽을 베고 여호와께 속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마음을 낮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은 모습입니다.

 

예레미야 6:10절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여기서는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 또한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 결과는 여호와의 말씀을 욕으로 듣고 즐겨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에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의 할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은 어떻게 됩니까?

 

예레미야 31:31~33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은 돌판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되는 것이기에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에스겔 36:24~27절입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새 언약으로 이루어 내시는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이것을 에스겔 선지자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주어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이러한 할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어내십니까?

 

누가복음 22:20절입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새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 피를 성령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십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31장과 에스겔 36장에서 말한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됩니다.

 

로마서 2:25~29절입니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할례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쟁 중에 할례를 받지 않는 이방인의 손에 죽기보다는 오히려 자결을 하는 것이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할 정도로 할례는 그들의 대단한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랑거리가 육체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몸의 할례도 율법을 지키는 것과 같이 자기들의 의로 내세우는 자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체의 할례가 그들의 자랑이 되려면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율법을 다 지켜 의롭다 함을 받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할례는 마음에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할례를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그 저주와 고통을 받으심으로 할례의 원 뜻인 잘려지는 그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이제 이 할례를 자기 백성들에게 적용시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12~15절입니다.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육체의 할례란 육체의 모양을 내는 것이며 자기 자랑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내가 세상을 볼 때에 세상이 죽은 것이며 세상이 나를 볼 때 나도 죽은 자로 보입니다. 이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빌립보서 3:1~3절입니다.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육체의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향하여 개들이라고 합니다. 참된 할례 즉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는 자기 육체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뜻이 여기서 다 드러납니다.

 

골로새서 2:11~15절입니다.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마음의 할례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히는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성령이 내주하셔서 날마다 십자가로 이끄시는 삶이 바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의 삶의 내용이 됩니다. 오늘도 이런 마음의 할례는 계속됩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이러한 할례를 받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히브리서 4:14~16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만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됩니다. 날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할례를 받기 원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은혜의 보좌인 그 십자가로 담대하게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