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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0:1~11 두려워하지 말라 2013. 10. 2

 

1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3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4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5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11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1절에서 이스라엘 집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집이 아닌데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이지 않는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이스라엘이 무엇인지 먼저 정리하고 말씀을 보겠습니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택하신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이 완성이 되면 이스라엘의 임무는 다 한 것입니다. 그 언약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에는 육적인 이스라엘이냐 이방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로마서 9:6~8절입니다.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이스라엘은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바꾸셔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바뀌는 자리가 야곱의 환도 뼈가 위골되는 얍복 강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침을 받아서 자신의 능력이 깨어진 자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고 하였습니다. 이 약속의 자녀란 그 씨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로 지음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 사람으로 지으신 나라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에베소서 2:12~13절입니다.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사람을 지어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육적인 이스라엘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의 백성입니다.

 

빌립보서 3:5~9절입니다.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새 언약 이후에도 자신의 혈통을 자랑하는 자들을 향하여 바울사도는 자신도 그러한 자랑거리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본문 1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 할 자는 물론 예레미야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것도 겨우 남은 유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새 사람이 된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영적이라는 말은 지리적이며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새로 지음을 받은 자들이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신 내용은 오늘날 교회를 향하여 경계하는 말씀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0:11절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들에게 일어난 일 즉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일어난 일이 말세를 만난 우리들에게 본보기기 되며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말세를 만난 우리란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 지으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와 이 시대라는 두 지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석이 필요합니다. 문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뜻과 의미에서 어떠한 경고를 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 나라란 열방(개역한글), 이방 사람(새번역), 다른 민족들(공동번역)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여러 나라의 길이란 바로 이방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이방 사람들이란 누구 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 지으심을 받지 않은 모든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한 새사람으로 지어진 것을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의 길들을 배우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의 길들이란 2절에서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하늘의 징조란 천둥 번개도 두려움이었습니다. 일식과 월식과 태풍들과 메뚜기 떼들도 두려움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일어난 10가지 재앙들도 다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이 되는 것들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이방 나라들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기에 여호와 외에 어떤 다른 형상들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두려움이 대상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방의 길들을 배워서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면서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의 신상을 만들어서 성전에까지 가득 채운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역대하 33:1~7절입니다. “1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3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5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6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여호와의 이름을 두어야 할 성전과 예루살렘에 온갖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것을 본받아 그 우상들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의 길들을 배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이방의 길을 배운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일들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방의 나라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함께 두려워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불신앙이며 죄악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입니다.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즉 이방나라들이 풍습과 풍속과 관습들은 다 헛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우상입니다. 산에서 벤 나무를 기술자들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나무로 만든 우상들에게 은과 금으로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세웠습니다. 그것은 나무를 잘라 세운 것이라서 말도 못하고 걸어 다니지도 못하기에 사람이 메고 다녀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람에게 복과 화를 내릴 수 없기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러한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나 이방 나라들의 우상들을 모셔놓고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형상물을 만들어놓고 섬기지는 않지만 이방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이 역시 동일한 우상숭배자라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이 두려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복과 화를 말할 때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그들과 동일하게 복과 화를 말한다면 몸은 교회당에 다녀도 그 마음은 이방인의 마음입니다. 그 이방인들의 마음은 자기를 신으로 세워놓고 다른 신들에게 정성을 바쳐 그 신들의 도움으로 자기의 힘을 계속 키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다곤 신전에 하나님의 궤를 들여 놓은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이방의 길들을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방의 길이란 세상이 복과 성공이라는 것들을 추구하는 길을 교회는 배우지 말마야 합니다. 오늘 어느 교회에서 전도 집회를 하루 종일 무료로 하며 점심도 제공한다는 광고지가 왔습니다. 광고문구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2013년 행복한 전도세미나, 폭발적인 전도와 교회부흥을 전수할 현장에 초대합니다.” 강사를 네 명이나 초대하는데 그 강의 제목만 봅니다. 안될 수 없는 교회부흥, 전도는 어명이다, 전도에는 방학이 없다, 모유 전도 법 이렇게 네 가지 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한국에 수 백 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도의 내용들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하고 어리석고 실패하고 저주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이방의 길들을 배우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무엇이 두렵습니까? 한국의 기업들 부채가 600조라는 소식이 두렵습니까? 동양그룹에 혹 투자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은 동양그룹의 위기가 두려울 것입니다. 핵이 두렵습니까? 늙고 병드는 것이 두렵습니까? 이런 것들은 세상의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물론 예수 믿는다고 해서 이런 문제들에서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염려와 근심과 걱정들이 하나님보다 앞서면 이방인이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에 빠져서 우상숭배를 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7:9~10절입니다.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책망의 편지를 보내고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디도로부터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룬다고 합니다.

 

세상 근심이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근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근심이란 앞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만 한 마디로 말하면 내일에 대한 염려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염려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와 근심들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염려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들이 하는 염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염려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내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두려우신 분인지 보시면 됩니다.

 

마태복음 10:28~31절입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하도록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정말 두려운 분이 누구신지 알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참새 이야기도 하시고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란 그 참새 보다 귀한 자들이기에 염려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6~9절입니다. “6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 7 이방 사람들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하지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들의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음이니이다 8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 9 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기술공과 은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옷을 입었나니 이는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이거니와”

 

우상의 헛됨과 여호와의 권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의 왕들을 다 다스리시는 주 여호와와 같으신 분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주님만 경외할 분이라고 합니다. 우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존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만든 우상들에게 정성을 바침으로 자기들의 두려움을 없애보려고 합니다. 환난과 실패와 죽음과 같은 것들의 두려움을 이겨보기 위하여 우상들에게 비싼 수입품인 은박과 금으로 우상을 만들로 청색 자색 옷을 입혀놓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동일하게 두려워하면서 교회에 정성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우상숭배자입니다.

 

10~11절입니다. “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11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우상들을 만들어 섬기는 자들을 향하여 진노하십니다. 천지를 짓지 이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합니다.

 

그 진노는 땅이 진동합니다. 그 분노하심으로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늘 아래 땅위에 있는 나의 존재를 절대적인 진리로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나의 존재가 이 땅에서 영원하며 영광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기에 사후세계도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사후세계에서도 영광받기를 원하여 힘이 있는 자들은 거대한 무덤을 만듭니다. 힘이 없는 자들은 정성을 바쳐 사후 세계를 대비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자들은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존재가 비참하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광을 취하는 자나 빨리 죽고 싶다고 말하는 자가 다 자신이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하여 정말 세상이 두려워하는 일들이 곧 임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7~14절입니다.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1)드러나리로다(어떤 사본에, 타지리라)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러한 말씀들을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종말의 영이 임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만이 이러한 말씀을 믿고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며 살게 됩니다. 세상이 두려워하는 것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 주님 다시 오심을 담담하게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