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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0:12~22 야곱의 분깃 2013. 10. 9

 

12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13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14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15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16  야곱의 분깃은 이 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25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였나이다 하니라

 

지난주에 본 11절 말씀을 봅니다.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결론이 이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고 합니다. 망하는 신이란 신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하시면서 야곱의 분깃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상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언약하신 내용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생사화복을 다 주관하십니다.

 

12~1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권능과 지혜로 천지를 지으셨고 그가 목소리를 내시면 많은 구름이 생기고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여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는 것은 그런 우상은 거짓 것이며 그 속에 생기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헛것이며 망령되이 만든 것이라서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분깃은 이 같지 않으니 그는 만물의 조성 자며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고 합니다.

 

16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그러나 야곱의 유산이신 주님은,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다르시다. 그분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요,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인 지파로 삼으신 분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이시다.” 야곱의 분깃이란 야곱이 받을 유산을 말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우상자체가 허무하기에 그가 받을 유산도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유산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여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인 지파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가 야곱의 분깃 일뿐 아니라 야곱이 또한 여호와의 분깃이기도 합니다(신32:9).

 

그러므로 언약의 목표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분깃 즉 유산이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 또한 그들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5: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와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의 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하신 땅과 씨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상이며 기업니다(요8:56). 또한 모든 믿는 자의 상이며 기업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갈1:14). 또한 그 기업은 아들의 나라입니다(골1: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기에 이들이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은 그 우상들을 부수어버리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분깃인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십니다. 이것은 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분깃으로 여겨야할 자들이 썩어질 우상들을 자기의 영원한 기업인양 붙들고 있다면 그 우상들을 부수어버리십니다. 그 우상들이 주변의 강대국이라면 강대국도 미약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에스겔 29:14~16절입니다. “14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에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15 나라 가운데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나라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16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애굽을 심판하시고 40년 만에 돌이켜 주시지만 미약한 나라가 되어서 다시는 나라들 사이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16절에서 다시는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애굽을 바라보지도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미약한 나라로 만들어버리십니다. 모진 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 다는 말이 있는데 애굽은 이스라엘 때문에 나라가 미약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강대국만이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면 여호와께서 부수어버리시고 미약하게 하셔서 다시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우상을 붙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예레미야 10:17~18절입니다. “17 에워싸인 가운데에 앉은 자여 네 짐 꾸러미를 이 땅에서 꾸리라 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사는 자를 이번에는 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너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포위가 된 상황이기에 네 짐을 꾸리라고 합니다. 피난 가는 짐을 말합니다. 내가 이 땅에 사는 자를 이번에는 내 던진다고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른 어려움이 없을 때 깨닫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이 있을 때 깨닫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지자 혼자 깨닫고 그 슬픔을 노래합니다.

 

19~22절입니다. “19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20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휘장을 칠자가 다시없도다 21 목자들은 어리석어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하지 못하며 그 모든 양 떼는 흩어졌도다 22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 유다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승냥이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선지자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미리 내다보기에 이렇게 슬퍼하며 탄식합니다. 자신의 장막이 무너지고 장막을 붙드는 줄들이 다 끊어지며 그 장막을 세우고 휘장을 칠자가 다시없다고 탄식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목자들이 어리석어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하지 못하며 그 모든 양 떼가 흩어졌다고 합니다. 목자란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여호와를 찾지 않았다는 말은 여호와께 물어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찾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마음의 생각대로 즉 그들의 탐심으로 백성을 다스렸기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어렵게 되는 이유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들의 꿈과 야망을 설정해 놓고서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만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상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목숨을 버리려고 하는 자는 얻을 것이며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는 마태복음 16:24~25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고 나섰을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후에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큰 목표를 세우지만 이것이 자기 부인이 되지 않는 자의 모습입니다.

 

시편 131편입니다.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눈이 오만하지 않는 다는 말은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전 뗀 아이가 그 어머니의 품에 있음 같이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도 영원까지!

 

오늘날도 많은 지도자들이 꿈과 비전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백성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도자들을 사람들이 따르게 하려면 사람들을 좋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뜻을 찾고 구하기보다는 백성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여론조사해서 그들의 마음을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이렇게 함으로 인하여 그 모든 양떼들을 흩어지게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찾습니까?

 

갈라디아서 1:9~10절입니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 사도는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깃은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분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 어떻게 그 분의 나라가 우리의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도 십자가를 지고가려고 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는 십자가를 지워주십니다. 그래야만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분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하심으로 깨닫게 하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면 그것들을 부수시고 미약하게 하십니다. 그 일들을 통하여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사는지 돌아보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분깃을 받은 자가 받는 사랑입니다.

 

23~24절입니다. “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24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예레미야는 벌써 징계를 온 몸으로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길은 예레미야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으로 부름을 받은 모든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아는 것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뜻하고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갔다면 오늘 이 보잘 것 없는 자리에 앉아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었다면 높고 높은 회전의자에 앉아있을 분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내가 걸음을 걷는다고 걷지만 그 지도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의 주변의 모든 사람을 만남과 환경들이 다 주님께서 나를 부수시기 위한 인도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렇게 부수실 때에 그 징계를 너그럽게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심하게 다루시면 내가 없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분깃으로 삼은 모든 자의 길입니다.

 

25절입니다.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였나이다 하니라”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 족속들은 여호와의 연단을 받는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려 하고 거처를 황폐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시도록 간구합니다. 우리의 분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나라입니다. 이 분깃을 받도록 우리의 모든 환경이 허락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