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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1:1~13 언약을 깨뜨렸도다! 2013. 10. 23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이르시되 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말하라 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4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5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이 그것을 증언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오늘 본문에 언약이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성경에서 언약이라는 말이 최초로 나타나는 곳은 노아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 노아 언약부터 말합니다. 그런데 아담도 언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선악과의 금령입니다. 그리고 호세아서 6:7절에서도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순서로 말한다면 영원 전 언약이 제일 먼저입니다(디도서1:1~3). 이런 순서로 보자면 영원 전 언약,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으로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는 언약은 무슨 언약일까요?

 

본문 1~4절을 보시면 오늘 본문의 언약이 모세 언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언약의 말이란 복수입니다. 언약의 말들이기에 하나의 말이 아니라 언약의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명령과 규례들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이 언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벌써 언약의 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4절에서 구체적으로 이 언약이 너희 조상들을 쇠 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고 그 명령을 따르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체결 장면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4:3~8절입니다.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에 동의하여 피로 언약을 체결합니다. 언약서와 백성들 양편에 피를 뿌립니다. 피는 생명이기에 생명을 건 언약을 체결합니다. 그 언약을 이행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언약을 배반하면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그 저주에 내용에 대하여는 신명기 28장에서 상세하게 나옵니다. 그 중에 예레미야 시대와 연관된 저주를 몇 가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 28:30~33,36~37절입니다. “30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같이 동침할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열매를 따지 못할 것이며 31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겨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원수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며 32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 33 네 토지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36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이러한 저주는 언제 일어나는 상황입니까? 전쟁이 일어나 적에게 패배하면 이런 저주가 일어납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미 이런 저주를 받아서 멸망하였고 이제는 남 유다의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도 이러한 저주를 받는 지경입니다. 이러할 때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와 언약을 맺었는데 나는 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켰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너희는 나의 언약을 깨뜨렸다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증거는 5절입니다.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이 그것을 증언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 언약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이루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열 번이나 반역하였지만 여호와께서 자기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셔서 이루어내신 결과가 너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아멘이라고 화답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내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본문 6~8절입니다. “6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지키라 7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끊임없이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라 하였으나 8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령하였어도 그들이 행하지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규정대로 그들에게 이루게 하였느니라 하라”

 

여호와께서 유다의 멸망 바로 직전까지 언약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지금까지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냈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지자를 보냈습니까? 문서를 기록한 문서 예언자도 있지만 문서를 기록하지 않는 예언자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서선지자의 이름만 열거하여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12명의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이런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는 언약의 모든 규정대로 그들에게 저주가 임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9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10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중에 반역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반역하였지만 오래 참으시고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 이 반역자들을 향하여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반역은 그 선조의 죄악을 따라 다른 신들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린 것입니다. 이미 멸망한 이스라엘집도 언급함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이유도 언약을 배반하여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임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조상들이 맺은 언약인데 왜 이들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까?

 

신명기 29:13~15절입니다. “13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14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15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체결한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앞으로 오고 오는 후손들까지 다 언약에 참여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유다 백성들도 여호와를 반역하여 그 언약을 깨뜨렸기에 저주를 받습니다. 언약을 깨뜨리는 모습과 그 저주를 봅니다.

 

본문 11~13절입니다. “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12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13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

 

언약을 깨뜨렸기에 재앙이 옵니다. 이런 재앙 속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평소에 분향하는 신들에게 부르짖어도 그들은 헛된 우상들이기에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재앙을 받는 이유는 여호와를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섬긴 그 우상의 수가 네 성읍의 수와 같고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바알을 섬긴다는 말은 자신의 정성을 신에게 바쳐 자기의 뜻대로 신을 조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신에게 정성을 바치는 모든 신들이 다 탐심이 만들어낸 우상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교회당이라는 곳에 모여서 무엇을 기도합니까? 바알에게 비는 그 풍요와 다산을 빌고 있다면 교회가 바알의 신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교회의 수만큼 바알의 신전이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수만큼이 아니라 교인의 수만큼 바알의 신전이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일본에서 설교를 할 때에 일본의 신이 팔백만이라는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번역한 추정숙씨가 팔백만이라는 수가 우상의 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우상이라는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추정숙씨는 일본 문학을 전공하였기에 그 팔백만이라는 수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팔백만의 신이 있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말입니다. 팔백만으로 우상을 제한한다면 다른 것은 우상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하다는 의미에게 천이나 만을 사용하듯이 팔백만이란 온통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우상이 있을까요?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라서 그렇습니다. 이것을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을 받은 자들이기에 모두가 자신을 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의 우상의 수란 인구의 수만큼이나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를 신으로 자기를 진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정말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까? 우선 급하면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만 돌아서면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마음이 샘처럼 솟아나는 우상들이 우리들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의 수만큼, 그 거리의 수만큼 많았던 바알의 신전이 여호와의 언약을 깨뜨린 증거입니다. 도시의 밤을 붉은 십자가 네온사인으로 밝혀놓았지만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이루어진 새 언약은 사라지고 인간의 종교성에 의한 바알을 숭배하는 곳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 곳이 우상의 전임을 알고 그런 곳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자는 부르심을 외면하고 자기 살기 위하여 달려가는 무리들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로 도망가야 합니까?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로 도망가야 합니다. 이 세상과 세상이 되어버린 교회가 말하는 성공과 번영이라는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이 세상과 세상이 되어버린 교회가 바로 바벨론입니다. 그런데도 안전하다고 평안하다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속아서 안주하시겠습니까?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피해를 알리는 카톡이 왔습니다. 그런 것에서 피한다고 안전하게 살 수가 없는 곳이 지구입니다. 날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나는 이런 곳에서 안주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깨어버린 언약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십자가만이 우리가 피할 유일한 곳입니다. 자기라는 우상 섬김에서 자기 죽음이라는 십자가로 피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