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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1:14~23 내 집에서 무엇을 하려느냐? 2013. 10. 30

 

14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15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은 악한 음모를 꾸미더니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려느냐 거룩한 제물 고기로 네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 때에 네가 기뻐하겠느냐 16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 17 바알에게 분향함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셨느니라,,,,,,,,,,,,,,,,

 

지난주에 언약을 깨뜨렸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여놓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언약에 신실하신 증거는 현재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약속의 땅이기에 가장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에서부터 광야를 지나고 약속에 땅에 들어와서도 언약에 신실하지 못하였습니다. 모세 언약에 의하여 이들을 즉각 심판하셔야 하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기에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어 끊임없이 경계하였지만 오히려 우상을 그들의 성읍수와 거리의 수만큼 섬김으로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늘본문 14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하여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심판을 받아 고난을 당하여도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전달만 하는 자가 아닙니다. 백성들을 대신하여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때로는 항의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지자로 하여금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제 심판이 확정되었기에 그대로 시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짓을 하였기에 선지자가 용서 하여 달라는 기도도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15절을 봅니다. 각주가 달려있는 구절인데 각주가 이렇습니다. “본문의 뜻은 분명하지 아니하고 칠십인역에는 내 사랑하는 자가 가증한 일을 행하였거늘 내 집에 있음은 어찜이뇨 서원이나 거룩한 고기가 죄악을 없게 하겠으며 혹 이것으로 피하겠느냐” 히브리어 본문이 해석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70인 역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한글번역으로도 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런 짓을 하기에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어 헛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였는데도 그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헛된 제사나 드린 것입니다.

 

새 번역으로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유다가 악한 음모나 꾸미더니, 내 성전에 들어와서 어쩌자는 것이냐? 살진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고 해서,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유다인데 이들이 평소에도 늘 악한 음모를 꾸미며 살던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살진 짐승을 제물을 바쳐서 재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제물을 바치고 그 제물을 먹음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제물을 바치고 분향하는 모든 것들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7:8~11절을 봅니다.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미 앞에서 본 말씀입니다만 하나님의 집에 들어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온갖 가증한 일을 행하면서 그 가증한 일들이 잘 되게 하여 달라고 성전에까지 와서 제물을 바치고 구원의 확신까지 챙겨가려고 하는 짓이 하나님의 집을 도적을 소굴로 만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습만입니까? 아니면 오늘 이 땅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까?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당으로 몰려와서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지만 여전히 성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평소의 삶은 온갖 불법과 부정과 가증한 짓을 행하면서 헌금만 듬뿍하면 그런 것들이 덮어지고 더 잘되게 하여 주는 그런 신을 만들어 섬기는 이방의 신전이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가증한 마음으로 찾아온 자들을 향하여 목사들이 회개하라고 외쳐야 하는데 오히려 고객을 환대하듯이 온갖 감언이설로 세상에서 복도 받게 하고 구원도 받게 하여 준다는 것이 오늘 이 땅의 현실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고소영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그 세 글자 중에 하나가 소망교회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서울의 나들목 교회당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한다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지경입니다. 죽은 자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짓을 합니까? 그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럽니까? 목사들이 권력에 기대어 무엇을 얻으려고 합니까? 이런 모습이 남 유다의 모습이었습니다. 애굽이 강하면 애굽을 의지하고 바벨론이 강하면 바벨론에 의지하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언약을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이런 짓을 바알의 신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내 집이라고 하시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짓들을 하고 있습니다.

 

16~17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이름입니까? 이런 이름을 주셨는데 이들이 행한 일이라고는 온갖 가증한 일들뿐입니다. 그러므로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유다만이 아니라 북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알에게 분향함으로 여호와의 노여움을 일으킨 그 악으로 말미암아 재앙을 선언하셨습니다. 바알 숭배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온 땅에 가득하였지만 이러한 바알의 정신으로 여호와의 집에까지 와서 술수를 부린 것입니다.

 

호세아 8:11~14절입니다. “11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 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13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 내용이 남 유다도 마찬가지이며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브라임이 제단을 많이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단이란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제물을 태우는 제단인데 그런 제단을 많이 만들수록 오히려 죄를 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인데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고 마치 이방신들처럼 제물을 바쳐 신을 달래려고 한 것이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만 가지나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씀에는 관심도 없이 거저 제물을 드리고 그 고기를 먹으면서 용서 받았다고 기뻐하는 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지으신 여호와를 잊어버린 모습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하여 왕궁을 짓고 견고한 성읍들을 만들었지만 여호와께서 이것들을 불 태워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이러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정신으로 우리가 교회당으로 모이고 교회당을 마치 성전처럼 여기면서 온갖 제물을 바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세상의 것들을 탐하면서 나옵니다. 이런 곳이 과연 교회입니까? 바알의 신전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런 말씀들을 주셨습니까? 단지 그 시대만 이러한 우상숭배를 하였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도 이러한 우상숭배로 빠져들어 간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처럼 형상물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온갖 꿈과 비전이라는 것을 제시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종교생활 한 모든 것이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임을 깨닫고 회개하여야 할 텐데 오히려 인간의 탐심을 하나님의 일과 영광으로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단을 쌓을수록 죄를 더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어 경고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18~21절입니다. “18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19 나는 끌려서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20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통함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복을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21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예레미야의 고향사람들이 예레미야를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예언하면 죽이겠다고 합니다. 이것을 자신은 몰랐는데 여호와께서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를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을 죽이듯이 죽이고자 하면서 하는 말이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고 합니다. 예레미야라는 나무를 제거함으로 그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인 여호와의 말씀도 제거하여 버림으로 살아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렇게 싫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자의 땅의 아니라 죽은 자의 땅입니다. 죽은 자의 땅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참으로 산 자의 실상입니다.

 

이사야 53:7~8절입니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이사야 53장이 고난 받는 종의 노래 곧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고 있습니다만 예레미야가 당하는 모습이 7절과 8절에 나옵니다.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의 모습과 살아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내자고 합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받게 됩니다.

 

예레미야 11:20절입니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상황을 알고 나서 예레미야가 자신의 원통함을 여호와께 아룁니다.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통함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복을 내가 보리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이 22~23절입니다. “22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23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 이 말씀대로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주전 586년에 멸망합니다.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셨다면 이미 이 세상은 끝장이 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에 심판을 집행하지 아니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묵시 속에서는 이미 끝장난 세상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미 도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묵시를 받아들인 자라면 이 세상을 어떻게 보게 됩니까? 이미 심판 받은 세상이며 죽은 자들의 세상입니다. 그러함에도 아직 이 역사가 유지되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다 찾아내시기 까지 유예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18절을 봅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정말로 믿는 교회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아주 자명하여집니다. 반드시 종말론적인 자세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라는 곳에 모여서 우리가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오늘 제목처럼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려느냐고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오늘날의 성전은 성도가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전인 우리 안의 생각들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밝게 비추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주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