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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3:1~11 쓸모없게 된 띠 2013. 11. 20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하시기로 2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니라 6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령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가져오라 하시기로 7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가져오니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더라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은 여러 가지 상징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베띠를 가지고 상징행위를 하고 그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기 전에 먼저 성경에서 이 띠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전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띠에 대한 말은 출애굽기 12:11절입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유월절 밤에 식사하는 장면입니다. 식사란 띠를 풀고 평안히 앉아서 해야 하는데 곧 떠날 것처럼 신을 신고 허리에 띠를 띠고 식사를 하는 것이 유월절 식사입니다. 여기서의 띠란 말 그대로 베로 짜서 만든 허리띠입니다.


다르게 띠로 사용되는 내용을 봅니다. 제사장의 에봇을 묶는 것(출28:8)과 성막의 기둥을 연결하는 조각목에 금으로 싼 막대기도 띠라고 합니다(출35:11). 이러한 구체적인 띠의 역할만이 아니라 기쁨의 띠(시30:11), 권능의 띠(시65:6), 공의와 진리의 띠(사11:5), 슬픔의 띠(사22:12)를 표하기도 합니다. 이 처럼 띠란 허리에 묶는 기능적인 역할도 있지만 기쁨이나 공의와 진리도 함께 한다는 표현입니다. 신약에서도 봅니다.


누가복음 12:35~38절입니다.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주인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종의 자세를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는 모습으로 말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인이 띠를 띠로 수종들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천국은 이렇게 예수님의 섬김을 받는 나라입니다.


에베소서 6:14절에서는 띠를 진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4절에서는 사랑이 온전하게 하는 띠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13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가슴에 금띠를 묶은 것과 같이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계시는 모습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띠는 결국 사람의 옷의 마무리 단속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과 공의와 진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사랑과 공의라는 띠를 띤다는 것은 이 띠에 매인 사람이 이러한 띠에 이끌려 가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18절입니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젊어서는 자기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이 네게 띠를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은 자기 스스로 띠를 띠고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하여 띠를 띠고 끌려가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베드로를 대적하는 자들이 그렇게 끌고 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1~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베띠를 사서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예레미야가 순종합니다. 이러한 것은 아무른 상징적인 행동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베로 만든 허리띠를 사서 허리에 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행동이 의문을 품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허리에 띤 그 띠를 가지로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물가에 감추라고 합니다. 그렇게 감추고 왔을 때에 여러 날 후에 그 감추게 한 띠를 가져오라고 해서 그 감추었던 것을 파서 띠를 가져오니 그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봅니다.


8~10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데 이렇게 한 상징적인 행동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교만을 이 같이 썩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띠란 바로 유다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이란 여호와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한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인데 이 교만을 하나님께서 썩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심판을 통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을 썩은 띠처럼 쓸모없게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띠를 허리에 띠게 하신 것과 강가에 묻어 두었다가 썩게 하신 것들을 설명하십니다.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띠란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만하여져서 여호와께 속하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띠란 그 용도대로 사람의 허리에 속하여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속하기를 거절한 것은 자기들 스스로 띠를 띠고 가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본 베드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위하여 일한다고 나설 때에는 자기가 띠를 띠고 죽는 자리까지 따라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단과 결심도 십자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저주 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하여 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이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다고 나선 그 일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교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셔야 하신다는 예수님을 말리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허리띠가 매는 자에게 매여 있어야 하는데 허리띠가 사람을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10:15절입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몽둥이로 사용된 앗수르가 주변나라와 사마리아를 공격하면서 승승장구할 때에 자기들이 잘 나서 그렇게 되는 줄 알고 교만하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북 이스라엘을 앗수르에 부쳐 심판하신 후에 앗스르의 교만도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도끼와 톱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유다의 교만이란 여호와께 속하여 있어야 하는 허리띠와 같은 나라인데 허리 띠 주제에 주인을 움직이려고 한 것입니다. 모든 우상숭배란 다 이와 같습니다. 인간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신에게 정성을 바침으로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을 섬기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천지를 만드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섬기려고 하는 것이 허리띠가 주인을 움직이려는 것과 같고 도끼가 찍는 자에게 자랑하며 톱이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평소의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게 하시면서 회개하고 주께로 속하라는 말씀입니다.


11절에서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한 것 같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속하게 하심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여 여호와의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명예와 영광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싫어하여 자기들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교만이며 이것이 썩어서 쓸모없게 된 허리띠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는 바벨탑의 사건들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여기서 속하다는 말이 창세기 2:24절에 나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기서 ‘합하여’와 같은 말이 ‘속하여’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합하여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여호와께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하여 나선 것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속하여 있지 않고 교만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는 것은 아담의 타락한 본성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여호와와 연합하라는 말씀을 주심으로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과 연합되기를 싫어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 썩은 띠의 상징입니다.


신명기 13:1~5절입니다.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4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5 그런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여기서 연합이라는 말씀은 4절의 ‘의지하며’라는 말입니다. 한글개역에서는 부종(附從)이라고 합니다.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연합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무엇으로 알 수가 있습니까? 선지자나 꿈꾸는 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보이고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게 하는 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연 여호와를 사랑하는지 아니하는지 시험하기 위하여 표적과 기사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적과 표적을 보고서 따라가는 자가 썩은 띠가 된 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과 붙어 있는지 아닌지 무엇으로 알 수가 있겠습니까? 꿈과 비전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능력이라고 따르게 하고 그런 것을 좋아하면서 따르는 자들은 여호와께 연합되어 있는 자가 아닙니다. 방금 신명기에서 말씀을 보았습니다만 이 마지막 시대도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적과 이사를 보고 따라가는 자는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심판을 받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이들이 쓸모없는 띠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면 오늘 이 시대에 여호와께 연합되어 있는 자는 어떤 자들입니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듯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꼭 붙어 있는 자들이 여호와께 연합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무능해 보이는 것 같아서 쓸모없는 자들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속하여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쓸모 있는 띠들입니다. 이 띠는 띠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띠의 주인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연합되어 한 몸을 이룬 성전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