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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7:19~27 안식(安息)하십니까? 2014. 1. 22


19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이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20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인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2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22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23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순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아니하면 25 다윗의 왕위에 앉아 있는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원히 있을 것이며 26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네겝으로부터 와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오려니와 2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안식일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내용은 종교의 형식적인 면에 치우친 것을 책망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예레미야 7장에서 보았습니다만 안식일에 성전으로 올라오는 자들을 향하여 이것이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면서 그들의 삶에서 공의를 실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안식일의 뜻과 의미를 말하기보다 안식일을 지키는 외형적인 면으로 말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안식의 원 뜻을 알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날 것입니다. 그 뜻을 알면 날자 지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선 본문을 본 후에 성경 전체에서 안식의 의미를 보겠습니다.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출입하는 모든 문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의 백성들은 안식일에 짐을 지고 성으로 들어오고 집에서 짐을 내어 가기도 하면서 장사를 합니다. 이러한 일을 하지 말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 성을 영원히 보호하셔서 왕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성문으로 들어오며 모든 백성도 그렇게 되며 또한 하나님 앞에 각종 제사와 감사의 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올 수 있겠지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예루살렘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의 궁전을 삼키게 하여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유다의 예루살렘 성이 어떻게 됩니까? 바벨론에 의하여 성문이 불타고 성이 파괴되고 성전까지 파괴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말씀을 들은 예루살렘 백성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간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옵니다.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그들의 결론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자기반성이 일어납니다. 그 결과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안식일도 철저하게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수많은 세칙들이 붙습니다.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에 대한 성경의 여러 가지 규례는 당연히 지킬 뿐 아니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특징은 일하지 않는 것이기에 무엇이 일인지 일이 아닌지 규정을 정하여 둡니다.


그런 규정 중에 몇 가지 예만 말씀드립니다. 웃을 만드는 사람이 안식일이 가까이 되었을 때에 바늘을 가지고 먼 길을 가지 못하게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안식일이 되면 바늘을 들고 가는 것이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옷에 잇는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에 대한 성경의 여러 가지 규례는 당연히 지킬 뿐 아니라 빈대를 털어내지도 못합니다. 옷을 터는 행위가 일이기 때문입니다. 손을 베이면 지혈은 하되 약을 바르지 못하게 하는 등의 규칙들을 지킨 것입니다. 심지어 안식일에 전쟁이 일어나 적이 쳐들어오면 무기를 들지 못하였기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법을 조금 바꾸어 안식일에 적이 쳐들어오면 방어는 할 수 있도록 개정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던 사람들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은 당연하듯이 보입니다. 그러면 안식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최초로 사용된 안식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일이 힘들어서 쉬신 것이 아니라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하셨고 더 이상 손을 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완성이 되었기에 안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을 복 주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만들어진 날이 6일째입니다. 인간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날이 안식일인 7일 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원래 살아가야 할 자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완성하신 그 안식 속에 살아야합니다. 이러한 안식을 목표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이미 완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5절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태초의 그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지만 그 생명이며 빛이신 분을 알지 못한 것은 이 세상이 어두움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어두운 세상마저 다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1:16~18절입니다.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창조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교회만 압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머리 곧 그 영혼을 교회에 넘겨주신 것입니다.


디도서 1:1~3절입니다.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영생의 소망은 영원 전부터 약속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전도란 곧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영원 전에 이미 약속하신 것을 이 역사 속에서 펼쳐내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이 이미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안식은 이미 완료된 하늘의 안식을 보여주는 예표가 됨을 이 역사 속에서 보여주시는 것이 십자가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8~11절입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은 일하지 아니함입니다. 그런데 왜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선물을 값없이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지킴의 뜻입니다.


신명기 5:13~15절입니다.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똑 같은 십계명을 말씀하는데 그 내용이 달라집니다. 출애굽기는 창조를 기억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명하시는데 신명기에서는 출애굽의 구원을 기억하도록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노동금지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와 구원이란 인간의 노동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물임을 안식일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아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왜 계속하여 안식일에 일을 하게 됩니까? 광야에서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간 자들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들어오면서 만나가 그치고 가나안의 소산물로 먹고 살게 됩니다. 이곳에서도 안식일에 노동하지 않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과 구원의 선물을 값없이 받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도 일을 하였습니다. 또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억지로 지키는 흉내는 내지만 그 마음은 언제 안식일이 끝나서 장사하여 이익을 볼까 하는 마음으로 안식일을 지킨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레미야 2:13절에서 보았듯이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라서 물을 채울 수가 없는 웅덩이입니다. 이런 인생들이기에 안식일에도 일을 해서 자기의 웅덩이를 채우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가 스스로 판 웅덩이를 채운다고 자기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버린 모습이 드러날 뿐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이 멸망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철저하게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킬 뿐만 아니라 세칙까지 수십 가지로 만들어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29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란 율법의 멍에를 말합니다. 율법의 멍에에서 허덕거리면서도 예수님께로 오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 특히 바벨론포로에 돌아온 자들의 율법지킴은 대단한 열심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없는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짐에서 해방되어 예수님을 믿는 일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야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이란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아들의 소원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마태복음 12:1~8절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가를 지나다가 밀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은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겁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다윗이 진설병을 시장할 때에 진설병을 먹은 일과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일해도 죄가 되지 않음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알았다면 너희가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것은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베푸셔서 안식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9~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그곳에 한쪽 손 마른 자가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지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답변은 너희 중에 양이 한 마리 있는 사람의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안식일이지만 양이나 짐승을 풀어서 물을 먹이려고 끌고 가고 그러다가 구덩이에 빠지면 끌어내는 것을 그들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양보다 더 귀한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해야 할 텐데 도리어 예수님을 어떻게 하여 죽일까를 의논합니다. 이런 모습이 참된 안식이 없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자들의 한계입니다.


밀 이삭 잘라 먹은 사건의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2:27~28절입니다.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이라는 한 날의 주인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날을 쉬게 하신 이유는 천지 창조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하신 것이며 출애굽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창조와 구원이 다 값없이 주시는 선물임을 안식일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안식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지난 월요일 저녁에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복음의 교제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저녁에 차가 없어서 어느 교회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고 아침에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가는데 교회당에서 나오는 것을 기사가 보고서는 말을 거는 것입니다. 잠시 이야기를 하는데 한기총에서 일어나는 이단논쟁을 말하며 성경이 언약임을 말하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전한 내용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룬 것이 새 언약이라고 요한복음 19:30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천지 느낌이 와서 신천지냐고 물어보니 정명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천지나 정명석이 다 그 계통들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새 언약을 말하지만 과연 안식이 있습니까? 그들의 교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새로운 교리에 묶여 죽도록 종노릇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새 언약을 다시 전하였습니다. 눈이 와서 택시는 천천히 가고 택시 요금이 만 원이 나오는 시간동안 예수님의 십자가 완성이 무엇임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따라서’라는 책을 광주의 집사님 전화를 알려주면서 하나 받아서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안식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안식을 자기 백성들에 넣어주시는 것이 안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영혼이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넘겨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혼이란 단어가 헬라어로 ‘프뉴마’입니다. 이 단어는 성령, 바람, 심령, 마음, 말씀, 영 등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 곧 하나님의 말씀을 십자가로 완성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시면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는 것은 곧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곧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이 곧 영이라고 하셨습니다(요6:63). 그 말이 영이라고 한 그 단어 역시 ‘프뉴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을 우리 에게 넘겨주시면 우리가 그 다 이루심의 안식을 맛보게 되기에 마음에 쉼이 있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이 역사 속에서 이미 완성된 그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며 사는 사람이 그 영이 임한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2:14~19절입니다.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에 쓴 증서를 제하여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십자가의 승리를 자기 몸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이런 자들은 이제 날과 달과 절기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그 넘겨주신 머리를 붙들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미완성이라는 욕망의 열차에서 탈출하여 이미 완성된 그 머리를 붙들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