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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2:1~16 두 눈이 뽑힌 왕 2015. 5. 6

 

8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9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 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39장과 열왕기하 24장에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51:64절에서 예레미야의 말이 끝났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52장은 부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부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두 번에 나누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논이 뽑힌 왕이고 두 번째는 여호야긴 왕의 머리가 들리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눈이 뽑힌 왕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란 세상 나라들의 왕과 전혀 다릅니다. 세상 나라의 왕이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이미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왕이 아니시기에 믿음이 없이는 인정할 수 없지만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기록한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시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법대로 다스리는 왕이어야 합니다.

 

신명기 17:14~20절입니다.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지난주일 오후에도 본 말씀입니다만 세상의 왕과 정 반대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왕은 말과 병거가 많아야하고 아내가 많아야 하고 은금이 많아야 크고 강한 나라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이와 정 반대로 해야 합니다. 그 중에 가장 특별한 내용은 스스로 법을 만들 수 없는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의 법은 국민이 나 국민의 대표가 만듭니다. 물론 독재국가는 통치자가 곧 법이 되는 나라도 있습니다만 이스라엘의 법은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율법을 왕의 옆에 두고 읽고 지킴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야 하는 왕입니다. 이것이 그 왕과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들이 이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두 눈이 뽑히게 됩니다.

 

예레미야 52:1~6절입니다. “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4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5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6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7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시드기야가 21세에 왕이 된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닙니다.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가면서 그의 숙부인 맛다디야를 대신 왕으로 삼고 그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습니다. 이름을 바꾸어 버리는 것은 바벨론의 속국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왕이 된 시드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여호야김 왕처럼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여호야김의 평가를 열왕기하 23:37절에서 봅니다.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예로 들었지만 이스라엘의 왕들이여호야김처럼 시드기야도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시드기야만 이런 모습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과 그 조상들이 행한 악이라는 것은 구약 성경 전체가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하는데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16개월 동안 포위하고 있습니다. 성안에 양식이 떨어집니다. 옛날 전쟁은 성을 포위하여 성 안에 양식이 떨어지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양식이 떨어지면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드기야는 항복하지 않습니다. 양식이 떨어질 때에 바벨론이 그 성벽을 공격하여 파괴합니다. 이때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로 갑니다.

 

8~11절입니다. “8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9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 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왕이 도망가다가 사로잡히자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져 버립니다. 왕의 친위대마저 도망가 버립니다. 바벨론 군인들이 왕을 사로잡아 바벨론 왕에게 끌고 가서 심문을 합니다. 그리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입니다. 유다의 고관들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모든 고관들도 죽여 버립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망합니다.

 

12~16절입니다. “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과 모든 집들과 고관의 집들까지 불살라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사로잡아 가고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합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보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온갖 우상숭배를 다한 왕들입니다. 그 중에 몇몇 왕들이 개혁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개혁도 악을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심판을 할 때에 다윗의 예를 많이 듭니다. 지난 주 오후에도 보았습니다만 다윗도 간음과 살인을 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법을 지켜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왕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의 군주들을 본 받아 자기의 욕망을 따라 백성을 다스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도 나라도 망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왕들이 말씀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7:18~20절을 다시 봅니다.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이스라엘의 왕이 평생 할 일이 바로 여호와의 말씀을 옆에 두고 읽어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은 간곳이 없고 왕들이 다른 이방나라들만 본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눈을 열어 말씀을 보지 못하는 이런 눈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버리는 것은 전쟁의 잔인한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마지막 왕의 눈이 뽑히는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들의 눈이 여호와의 말씀을 보지 않았다는 고발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사야 6:8~10절입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장면에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자신의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알았을 때에 천사가 제단 숯불을 그 입에 대면서 네 죄가 사하여 졌다고 합니다. 그 때에 하늘에 음성이 들려서 우리가 누구를 보낼까 하는 주의 목소리에 이사야 선지자가 응답하여 소명을 받은 내용입니다. 이때 받은 소명이 이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스스로 보고 듣고 돌아오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가 언제 까지 그렇게 되느냐고 물으니 주께서 대답하십니다.

 

11~13절입니다.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모두가 심판을 당하고 십분의 일이 남아졌을 때에 이것마저 다 베임을 당하고 나서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다 듣지도 보지고 못한 상태임을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두 눈이 뽑힘을 통하여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망하고 나서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열심히 율법을 문자대로 지키며 살아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조차 여전이 눈이 감겨 있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보고 필사하면서 지키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장로들의 유전까지 지키는 자들이지만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3:13~17절입니다.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천국백성과 천국백성 아닌 자를 구별하지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해서 오늘날도 신천지처럼 비유풀이를 하거나 원어를 말하는 사람들처럼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로 말씀하셔도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물었을 때에 비유를 풀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풀어주신 이 말씀도 아직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어떤 인간도 스스로는 좋은 밭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밭이 스스로 길처럼 단단하게 된 것을 갈아엎고, 돌을 파내고, 가시밭을 갈아엎을 수가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애를 쓰도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9:15~18절입니다.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바울사도가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 핍박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처럼 율법으로 아무리 애를 쓰고 달려간다고 하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을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바로 왕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긍휼로입니다.

 

어제 임직식 때 권면하는 목사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직분을 받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손톱 만큼이라고 무언가 선한 것이 있어서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질문했습니다. 이런 질문은 우리에게서 선한 어떤 것이 있어서 예수님을 믿고 직분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 분이 요즈음 저와 함께 복음의 교제를 하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는 긍휼을 입게 하시지만 그렇지 않는 자는 바로처럼 끝까지 완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이 사도들로 인하여 전파됩니다.

 

사도행전 28:23~28절입니다.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이 말씀이 사도행전의 끝입니다. 복음을 알아듣고 못 듣고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만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정말 복음을 알아들었습니까? 말씀을 보는 눈이 있습니까? 시드기야 왕처럼 눈은 있지만 말씀을 보지 못하는 자들은 아닙니까? 그런 눈이 뽑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시드기야가 자기 눈앞에서 아들들의 죽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두 눈이 뽑히고 놋 사슬에 묶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곳에서 감옥에 갇혀 있다가 죽었습니다. 이 시드가야는 지옥에 갔을까요? 천국에 갔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눈이 뽑혀서 감옥에 가서 죽기까지 얼마나 많은 원망을 했을까요?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면 그 감옥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본다고 한 것이 엉터리이며 눈이 뽑히고 나서 제대로 보게 되었다면 그것이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9:35~41절입니다.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소경은 자기를 고쳐준 분이 누구신지도 모릅니다. 이로 인하여 유대 사회에 대단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이 사람을 쫓아 내어버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서 자신을 증거 하심으로 그 사람이 믿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신은 심판을 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 되게 하려고 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우리도 맹인인가 합니다. 자신들이 맹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본다고 하는 너희가 지금 맹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이렇게 연결하면서 저 자신에게도 물어봅니다. 나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가 아닌가 하고 물어봅니다.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잘 모릅니다. 거저 주님께서 보게 하시면 두 이레 강아지 눈만큼 뜨고 볼 뿐입니다. 두 이레 강아지 눈 만큼이라는 표현은 구상 시인의 시구입니다만 아마 강아지가 14일 정도 지나야 겨우 눈을 조금 뜨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는 몇 가지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식이든 복음이든 알면 알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설득도 아니고 논쟁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증거하고 선포할 뿐입니다.

 

끝으로 바울 사도의 기도를 봅니다. 에베소서 1:17~19절입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 강해 때에 자세히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과 연결하여 우리가 다 소경임을 알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도합시다. 그렇게 마음이 눈이 밝아지면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 알게 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며 성도도 여기에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안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소경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적인 눈이 뽑히고 영적인 눈이 열리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