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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7:9~10 포도주로 하나 됨 2020. 4. 15        (246장)

 

9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투표 잘하고 왔습니까? 저의 설교를 듣는 분들 중에 여당 지지자도 있고 야당 지지자도 있습니다. 물론 다른 당 지지자도 있습니다. ‘언약을 따라서를 보내 달라고 해서 보냈는데 그런 분들도 기독당을 찍으라는 문자와 영상을 보냅니다. 그래서 잠시 이 부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오늘 본문에 들어가겠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이 사랑으로 하나 됨에 대한 내용입니다. 평소에도 다툼이 많은 나라인데 특히 선거철이 되면 상대방을 적으로 몰아놓고 다 죽여야 산다는 식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자기가 속한 환경에 따라 정치 지향성이 극렬히 달라지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지난주 오전에도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판단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옳음이 자기 외부의 환경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지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하면 화를 냅니다. 제가 세상의 다른 가치관을 주장하면서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말을 한다면 화를 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통일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위한 예수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에베소서 1:10절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를 중심으로 통일하고 싶은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오셨을 때에 여러 당파들이 있었지만 단 한 당파도 예수님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한마음으로 살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가치체계가 부인되어져야 합니다. 지금 선거개표를 보는 분이 있을 겁니다. 자기가 지지한 자가 표가 많아지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낼 겁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옆에서 그런 우리를 보고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이 세상의 원리나 가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월요일에 일과 성령이라는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일에 대하여 사회경제학적으로 살피면서 성경적인 신학이론을 제시하려고 볼프 교수가 약 30년 전에 쓴 책입니다. 일을 말하려고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와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를 비교하면서 성경의 일 개념을 정리한 책입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자들의 직업에 대한 소명설도 비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웨버의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언급도 합니다. 저도 자본주의의 발달이 종교개혁자들의 직업 소명설로 인한 것이라는 말씀을 오래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볼프 교수는 이런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성령의 은사로서의 일 개념을 말합니다. 성령의 은사로서의 일 개념은 새 창조의 세계를 말합니다. 새 창조의 세계는 사랑의 장소이기에 일의 개념이 은사와 은혜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성령의 역사로 믿는 자들이라면 세상의 어떤 주의가 아니라 은혜를 말하는 자들입니다.

 

이 책에서 각주의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우리의 세계를... 안전하지 않게 만드는 것 중의 많은 부분은 경제와 인종적 불평등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평등을 위한 싸움은 우리의 세계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평등이 개인의 내재적인 속성만이 아닌 만큼(자유주의에서처럼), 또한 사회 정의의 속성만도 될 수 없다(사회주의에서처럼), 평등한 대우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소유의 평등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은혜.] 볼프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장단점을 말하면서 제 삼의 길을 제시하는 데 그것을 은혜라도 봅니다. 그래서 은혜라는 글자를 굵게 표현하였는데 이 은혜를 사람들이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이 성경과 역사가 증언합니다. 이 세상을 보면 전 세계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서 어떤 곳은 굶주리고 헐벗는 것이 아니라 나눔이라는 은혜가 없어서 이렇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봅니다. “봉독지난주에 구절 상반 절까지 보았습니다. 9절 상 반절 까지는 신랑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하 반절부터 신부의 노래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신부가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한다고 합니다. 잠자는 자에게 포도주가 주어집니다. 이 내용을 문자대로 보면 남자가 여자를 향하여 그대는 입는 맛있는 포도주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이 포도주를 임에게 드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달콤한 입맞춤을 말합니다. 이렇게 입을 맞추는 것을 포도주를 마시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합환주(合歡酒)입니다. 우리나라 전통혼례식에는 이 합환주를 나누는 것이 의식입니다. 같은 잔을 가지고 신랑과 신부가 마십니다. 아가서에서도 신랑과 신부가 서로 포도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합환주를 마시면 곧 이어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준다고 합니다.

 

아가 1:2절입니다.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히브리어의 대명사를 보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였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여자가 남자에게 입을 맞추어 달라고 하면서 너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다고 합니다. 아가 4:10절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향하여 내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다고 합니다. 5:1절에는 남자가 말하기를 나의 동산에서 포도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포도주는 서로 사랑의 입맞춤을 포도주가 흘러내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마심으로 인하여 한 몸이 되는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성경전체에서 포도주가 사용된 문맥을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보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보려고 하는가 하면 오늘 본문이 서로가 하나 됨을 포도주를 마심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성경전체에서 의미를 살펴보지 않으면 부부의 합환주로만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왜 성경에 이런 아가서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남녀의 성적인 결합의 표현들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내용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과 전도서의 결론이 아가서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포도주를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마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도 문자적인 먹고 마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로마서14:17).

 

성경전체에서 대명사를 빼고 포도주라는 단어만 검색하면 185회가 나옵니다. 이 내용을 다 살펴보면 좋겠습니다만 크게 구별하면 심판과 진노의 포도주라는 내용이 약 절반이나 나옵니다. 약 절반은 구원과 축복의 내용으로 나옵니다. 성경 제일 처음에 포도주가 나오는 곳은 노아 홍수 이후입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노아가 포도농사를 짓고 그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고 잡니다. 이런 노아를 조롱한 함이 저주를 받고 덮어준 셈과 야벳이 축복을 받는 내용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주심을 알게 하십니다. 노아 홍수에서 자기들의 의로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모독하는 모습이 함의 모습입니다.

 

시편 32:1절에서 허물의 사함의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창세기 9장의 덮어줌이라는 단어가 가려진이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가려짐을 받는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 죄가 드러나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2:5절에서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죄악을 숨기지 않았다는 말이 덮어두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우리가 스스로 덮어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이라면 그 죄악을 토설하여 내도록 누르십니다. 다윗의 간음과 살인죄를 들추어내심으로 죄악을 고백하게 하시고 덮어주십니다. 이것이 다윗이 받은 복이라고 바울사도가 로마서 4장에서 말합니다. 최초의 포도주 사건으로 복과 저주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가지고 진노의 심판이 무엇인지 구원의 복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4:6~8절입니다.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이 내용은 신약의 마가복음이 끝나고 요한계시록을 다시 볼 때에 상세히 말씀드리기로 하고 간략하게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포도주를 마심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기도 하고 구원과 축복의 잔이기도 하다는 내용만 보려고 합니다. 이 배경의 일차적인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약의 모든 자들이 심판을 받고 구원을 받는 내용입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만 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 곧 세상과 연합하여 세상의 것을 전부로 여기며 살았던 자들이 심판을 받는 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을 세상의 음녀로 보면서 성도를 미혹하는 세력으로 봅니다. 잠언에서도 음녀가 이런 식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혜가 소리를 지르며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내용도 잠언에서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4:17~20절입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1)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2)스다디온에 퍼졌더라십자가로 두 가지 추수가 일어납니다. 14~16절은 구원의 추수이지만 이 본문은 심판의 추수입니다. 그러면 왜 심판의 추수를 당하는 자들입니까? 이 세상이 주는 포도주에 취하여 그들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7:1~2절입니다.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물위에 앉은 큰 음녀가 심판을 받습니다. 땅의 임금들이 이 음녀와 음행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십자가에서 일어난 심판입니다. 이미 구약의 완성을 십자가로 이루시고 묵시적으로 지금도 이 심판을 행하고 계십니다. 이 음녀와 미혹을 하는 세상의 임금들이란 오늘 이 시대에도 세상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을 전부라고 말합니다. 이런 모습이 음녀가 주는 포도주에 취하여 음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18:1~24절입니다. “봉독 전체의 내용이 십자가로 일어난 심판입니다. 동시에 지금도 이러한 심판이 집행이 되고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 십자가로 심판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며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내용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복음이라고 하면서 썩어질 세상의 영광을 말한다면 그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지금 코로나 19사태로 온 세상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망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 18장의 내용을 알고 믿는 자라면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모든 세상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확증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 재림 직전의 사건이 아니라 십자가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들은 세상의 이런 모습을 보며 세상에서 빠져 나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심지어 세상의 멸망을 기뻐하라고 합니다(20). 이런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참된 복음은 세상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심판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자들이 아니라 구원과 축복의 포도주를 마시는 내용을 봅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면서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합니다(27:28).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히 주신다고 합니다(7:13,11:1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당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못하게 됩니다. 포도주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양식도 끊어지고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다시 구원을 말씀하실 때에 포도주를 말씀합니다.

 

이사야 25:6~8절입니다.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심판 후에 구원을 잔치를 열어놓은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것도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한 포도주와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한 맑은 포도주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의 용서를 받은 자들은 그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면 됩니다.

 

이사야 55:1~3절입니다.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입니다. 다윗 언약의 혜택을 솔로몬이 받습니다. 참된 양식은 값없이 은혜로 받습니다. 목마른 자도 돈 없는 자도 받을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은혜로 받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들은 값없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썩어질 양식, 영원히 배부르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것에 함몰되어 세상의 음녀와 먹고 마시면서 복을 받았다고 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과 사치를 그들은 복이라고 먹고 마시지만 이들이 음녀가 주는 포도주에 취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의 모습을 세상이 아니라 교회가 복이라고 한다면 그 교회도 세상의 음녀의 포도주에 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은혜로 주어집니다.

 

호세아 14:4~8절입니다. “4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 호세아와 음란한 여인 고멜의 결혼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시는데 이 내용이 마치 아가서의 내용과 비슷한 표현들로 구원을 노래합니다. 이슬, 백합화, 백향목, 아름다운 감람나무, 백향목 그늘, 곡식의 풍성함, 포도나무의 꽃, 푸른 잣나무의 열매들을 말함으로 구원을 노래합니다. 저 음란한 고멜의 바람기를 막으시고 직접 찾아가서 값을 주고 구하여 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구원을 잔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다른 선지서에도 많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포도주의 내용으로 어떤 곳은 심판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곳을 구원을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9~10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우리가 앞에서 아가서 전체에서 찾아본 대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포도주라고 합니다. 이것을 입맞춤이라고도 봅니다. 입맞춤에 대하여서도 이미 보았습니다. 가룟 유다 같은 배반의 입맞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는 여인도 있습니다. 이처럼 포도주로 하나 된다는 말씀은 10절에서 이어집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나를 사모한다고 합니다. 이 내용도 이미 앞에서 나왔습니다. 서로 간에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포도주라고 하면서 마심으로 하나가 된다는 이런 내용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시는지 봅니다.

 

마태복음 26:26~28절입니다.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떡을 주시면서 자신의 몸이라고 합니다. 잔을 주시면서 많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자신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누가 복음은 새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합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린도전서 12:12~13절입니다.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1)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하나이듯이 그 십자가로 우리에게 자신을 부어주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이것을 한 성령을 마셨다고 합니다. 마치 포도주를 마시듯이 성령을 마시게 됨으로 유대인이나 헬라인나 종이나 자유인의 한 몸이 됩니다. 이것이 새 창조로 이루어지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한 몸입니다. 이런 자들은 서로의 지체를 돌보며 서로 섬기며 사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두 달 동안 만나지 않아도 거뜬하게 잘 사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가서에서 포도주를 마심으로 둘이 하나가 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만드실 겁니다. 이 과정은 자기주장이 부인됨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자가 한 성령을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는 과정이 구원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세상만사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이유는 내 몸의 확장이 아니라 내 몸이 부인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한 성령을 받아 마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