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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0:1~19 목자와 농부이신 주님 2021. 12. 8

 

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편 80편의 표제어입니다.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둣에 맞춘 노래소산님에둣은 곡조의 이름인데 소산님이란 백합화를 복수로 말하는 것이며 에둣은 언약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백합화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곡조입니다. 지난주에 본 79편도 아삽의 시인데 주의 기업, 주의 백성, 주의 목장의 양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저주와 비방 거리가 되었을지라도 주의 것이기에 주께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목자와 농부이신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봉독 1절입니다.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에게 귀를 기울여 달라고 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11번째이지만, 야곱과 그 아들들의 목자 역할을 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 갔지만, 그 길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끌려갔지만 그렇게 끌려감이 말씀의 연단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그의 가족을 구원하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분께 빛을 비추어 달라고 합니다. 그룹은 천사를 말하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이 언약궤입니다. 그러므로 그룹 위에 좌정하여 빛을 비추어 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달라는 간구입니다.

 

2~3절입니다. 요셉의 두 아들과 베냐민이 나옵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라헬의 자녀입니다. 라헬이 베냐민을 출산할 때 죽어가면서 슬픔의 아들이라고 베노니라고 하자 야곱이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베냐민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진을 치거나 행진할 때 한 깃발에 모이는 지파들입니다. 특히 행진할 때는 바로 앞에 언약궤가 갑니다(10:21~24). 그러므로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와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부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요셉과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주신 것처럼 지금 이 어려움에서 우리를 돌이켜 주셔서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셔서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4~7절입니다.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1절에서는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부릅니다. 그 목자를 3절에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4절에서는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만군의 하나님은 적들을 물리치고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 호칭입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합니다. 여호와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호칭입니다. 이렇게 점층적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여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다. 기도에 응답이 없으니 언제까지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분노하시겠느냐고 합니다. 지금 고난으로 눈물의 양식을 먹고 있습니다.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고 원수들이 비웃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께서 주의 얼굴 광채를 비추어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심이 은혜와 평강이기에 제사장의 축복입니다(6:25~26). 그러나 구원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8~15절입니다.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1)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2)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합니다. 오늘 본문만이 아니라 성경 다른 곳에서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옮겨 심은 포도나무라고 합니다(5:1~7, 2:21). 그러므로 하나님이 농부가 되십니다. 극상품 포도를 심었는데 들 포도를 맺었다고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바라셨는데 오히려 포악만 가득하게 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오늘 본문도 애굽에서 포도나무를 가져다가 가나안 땅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무성하게 되어 지중해 바다와 유프라테스강까지 미쳤는데 지금은 주께서 그 포도원을 헐어서 들짐승이 먹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군의 하나님께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아 달라고 합니다.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이며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줄기이며 가지인데 지금은 주의 면책(面責)으로 불타고 베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이사야 5:1~7절을 봅니다. 봉독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이며 농부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공의의 열매인데 맺힌 열매가 포학과 부르짖음이기에 오늘 본문처럼 불에 타고 베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포도나무라고 하면서 구원하여 달라고 하지만 아무런 구원의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런 간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을 기르시듯이 농부가 포도나무를 기르시듯이 우리를 돌보아 달라고 합니다. 양들은 목자 없이 살 수가 없으며 포도나무도 농부가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여도 응답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목자와 농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이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그런 거짓 목자와 농부를 믿고 있기에 하나님은 그대로 두십니다. 결국은 지도자도 그들을 믿는 자들도 함께 망해야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미가 3:1~4절입니다. “1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3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4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이스라엘의 목자가 이런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5~8절입니다. “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7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릴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이거니와 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우리가 말씀을 보면 미가 시대나 이 시대나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9~12절입니다. “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과 통치자들을 목자로 세웠습니다. 그들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은 양을 돌보고 포도원을 돌보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양을 잡아먹고 포도원을 망치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양들끼리도 힘센 양이 약한 양을 괴롭히는 지경입니다(34:17~22). 이러한 목자들과 양을 심판하시는 주님께서 다윗과 같은 목자를 세우겠다고 합니다. 다윗도 살인과 간음한 왕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과 같은 목자라고 합니까? 그것은 다윗이 목동일 때 왕으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 언약을 따라 참 목자를 주신다고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목자와 농부이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제목만 해도 한 시간이 부족한 내용이지만 시편 한편을 한 시간에 다 보려고 요약하여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를 백성의 목자로 백성을 잘 돌보는 농부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목자 노릇이나 농부 노릇을 제대로 못 합니다. 제대로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들을 잡아먹고 헤치며 하나님의 경작지를 망치기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런 심판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영이 임한 자들이 구원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 구원을 간청하는 근거는 지난주에 본 대로 우리가 주의 백성이며 주의 목장에 기르는 양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 약속에 관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7~19절입니다. “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가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한 인자에게 손을 얹어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그렇게 하면 우리가 소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주께로 돌아갈 능력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오직 주의 오른쪽에 있는 인자를 통하여 소생시켜 달라고 합니다. 소생이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가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구원을 위하여 주의 오른쪽에 계신 분이 오셨습니다.

 

시편 110: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주의 오른쪽에 주님이 또 계십니다. 이 내용의 성취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혈통으로 다윗의 후손임을 부인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윗의 주가 되심을 말씀합니다(12:36). 베드로가 성령이 임한 후에 주님을 증거 하면서 시편 110:1절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오른편에 계신 주님께서 목자로 포도나무로 오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어 주심이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10:10~12절입니다.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하시면서(10:7) 도둑과 목자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미가서와 에스겔서를 보면 양을 잘 돌보라고 세운 목자들이 다 도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선한 목자로 오셨습니다. 도둑은 양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만 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목숨을 버리신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목자이며 농부이신 하나님께 구원하여 달라고 간구한 그 간구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이루어내십니다.

 

요한복음 15:1~6절입니다.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이 농부이시고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라고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붙어 있는다는 말은 어떤 방법론이 아닙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어떻게 스스로 예수님께 가서 붙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한복음 10장에서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과 다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떠나심이 유익하다고 하십니다. 그 떠나심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성령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한다고 합니다(14:26).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도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심과 하나님 아버지가 농부가 되시는데 그 농부가 심으신 참 포도나무 역시 예수님임을 알고 믿게 됩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로 목숨을 버리셔서 자기 양들을 구원하시고 포도나무이신 자기에게 접붙여서 그 진액을 받아먹고 살아가게 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 은혜의 열매가 나오게 되면 이것이 자기가 맺은 것이 아니기에 오직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바쳐도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고 함이 당연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생명을 얻은 자가 누리는 풍성함입니다.

 

히브리서 13:20~21절입니다.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베드로전서 2:24~25절입니다.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주의 오른편에 계신 주께서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되시고 포도나무가 되셔서 자기희생으로 자기 양들과 가지들을 살리십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언약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와 포도나무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생명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 영원한 영광의 즐거움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기서부터 맛보아 가는 자들이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