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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3:1~5 어찌하여 2021. 3. 17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3편은 머리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체로 보면 다윗의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혹 다윗의 시가 아니라고 하여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기록되고 성경으로 전달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도 모든 성경과 같이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합니다.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본인의 원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에 이끌려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나타납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판단하여 달라고 합니다. 왜 이런 간구를 하게 됩니까? 한 나라가 자신을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가 한 개인을 송사하는 이유는 그 나라가 경건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이스라엘로 보면 이스라엘 전체가 한 사람을 송사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 송사를 변호하여 주시고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져 달라고 합니다. 한 나라를 한 개인으로 말하면서 간사한 자와 불의한 자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간사하고 불의한 자란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자비와 믿음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들에게서 자신을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2절입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신데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느냐고 합니다. 주님이 나의 힘이 되신다면 나를 변호하여 주시고 적들을 물리쳐 주셔야 하는데 오히려 나를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느냐고 합니다. 주께서 나를 버리신 것같이 아무런 도움을 주시지 않으니 원수의 억압으로 인하여 슬프게 다닌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데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을 때 나는 버림을 받은 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무엇을 간구합니까?

 

3~4절입니다. “봉독간구의 내용은 우리가 평소에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다는 그런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내가 지금 버림받은 것 같다는 말은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어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구약에는 주의 제단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전에 번역은 극락(極樂)의 하나님입니다. 이 말은 기쁨 중의 기쁨 곧 최고의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최고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최고의 기쁨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당신은 그러하냐고 되묻습니다. 네 그 하나님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너무 잠깐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기쁨인 하나님을 더 찬양하며 그 기쁨을 더 누리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요?

 

다시 3~4절을 봅니다.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우리가 갈 수가 없습니다. 주의 빛과 진리가 오셔야 합니다. 빛과 진리가 되신 분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모두 어둠이라서 그 빛과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빛과 진리가 되신 예수님을 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그 십자가로 자기 백성을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빛이며 길이며 진리며 생명입니다. 그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구약의 성도들이며 신약의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 함께 보좌에 계신 이와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을 찬양합니다. 지금 시편 기자는 그 내용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겁니다.

 

5절입니다. 봉독이런 찬양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찬양하지만, 아직도 낙망이 되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자기 영혼을 객관화시켜서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하느냐고 하면서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할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성도나 신약의 성도들이 이 땅에 몸으로 사는 동안 낙심도 되고 불안도 있습니다. 그 불안과 낙심이 성도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 기도의 목표는 가장 큰 기쁨인 하나님께 나아가 그를 영원토록 찬양함이 구약이나 신약의 모든 성도의 소원이 됩니다. 이렇게 본문을 간단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어찌하여라는 제목으로 다시 봅니다.

 

시편 43편의 설교 제목이 어찌하여입니다. 43편에서만 2절과 5절에서 네 번이나 나옵니다. 이 단어가 한글 성경에서 몇 번이나 나오는지 검색을 해보니 339회 나옵니다. 구약에서 235회 신약에서 104회가 나옵니다. 우리는 언제 어찌하여라는 말이 나옵니까?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사태가 이해가 안 될 때 나오는 말입니다. 나의 상식과 경험과 지혜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 나오는 말이 어찌하여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어찌하여라는 단어를 최초로 쓰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먹었습니다. 먹자마자 눈이 밝아져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피합니다. 선악과를 먹고 나니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니 자기가 벗었기에 두려워 숨었다고 합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고 하시니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여자가 자기에게 줘서 먹었다고 하면서 책임을 넘깁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이렇게 하였느냐고 합니다. 여기서 최초로 어찌하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질문에 여자는 뱀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고 뱀은 여자의 후손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찌하여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신 겁니다. 하나님의 어찌하여라는 질문에 우리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가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은 핑계를 댑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한 일에 대하여 왜 그랬느냐고 하면 핑계를 대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에 낯선 자들이 등장합니다. 분명히 자기 죄가 아닌데 고난을 겪습니다. 오늘 본문도 다윗의 시라고 보면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음으로 오는 고난입니다. 다른 소원이 아니라 여호와께 나아가 그를 찬양하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은 마치 버림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느냐고 묻습니다. 이러한 까닭 모를 고난을 욥도 겪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 있는 자입니다. 천상에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한 일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을 욥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 다 날아가고 자식 다 죽고 몸은 전신에 악창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왔을 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합니다. 그러자 욥의 친구들이 죄로 인한 고난이라고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욥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어찌하여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욥은 어찌하여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 내가 숨지자 아니 하였던 가라고 합니다(3:11). 욥기 3장에서만 어찌하여를 여섯 번이나 말하면서 자신의 태어난 날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바다의 괴물입니까? ‘어찌하여나를 지키시느냐고 합니다(7:12). 내가 주께 범죄 하였다고 한들 주께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냐고 묻습니다. 욥이나 다윗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욥의 이런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은 욥기 38장 이후에 나옵니다.

 

욥기 40:1~5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1 주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셨다. 2 전능한 하나님과 다투는 욥아, 네가 나를 꾸짖을 셈이냐? 네가 나를 비난하니,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3 그 때에 욥이 주께 대답하였다. 4 저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주님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손으로 입을 막을 뿐입니다. 5 이미 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하나님께 질문한 욥에게 하나님은 드디어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신 말씀이 욥기 38:1~40:2절까지입니다. 이 내용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면 말해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욥은 손으로 입을 막을 뿐이라고 합니다.

 

욥기 42:1~6절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1 욥이 주께 대답하였다. 2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3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4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5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6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에 대한 욥의 대답입니다. 그동안 어찌하여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께서 답변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데 욥은 그동안 어찌하여이런 일어나느냐고 한 말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한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우리는 욥처럼 경건하게 악에서 떠나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살았습니까? 욥에 비하면 우리는 새 발의 피도 안되는 삶을 살아놓고서는 하나님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따집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찌하여를 곰곰이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모두가 원망의 말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할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항변이 어찌하여입니다.

 

그러므로 어찌하여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요한일서 3:5절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우리의 죄를 없애시려고 오신 분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기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에 넘어가지 않으셨고 시험을 이기셨기에 죄가 없습니다(4:15).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느냐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다윗이나 욥이 어찌하여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성령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최초로 어찌하여를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신약의 처음 성경인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어찌하여를 자주 사용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7:3). 우리는 자기 속에 들보를 보지 못하니 형제의 눈에 티만 보는 겁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십니다(8:26). ‘어찌하여이렇게 하느냐는 책망을 받을 때 회개하면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수님을 오히려 살해하여 버렸기에 그들이 심판을 당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율법의 선생인 서기관들이 속으로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고 합니다(9:4).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또는 죄를 없애시기 위하여 오셨는데 속으로 신성모독이라는 서기관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악한 생각을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죄를 없애시는 일을 어떻게 이루어내십니까?

 

마태복음 27:46~54절입니다.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ㄴ)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유일하게 정당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의 버림받음으로 인하여 죄가 해결됩니다. 오늘 본문 3~4절입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이 간구의 응답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버림받으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서 새로운 살길이 열렸습니다(10:20).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느냐고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분의 버림받음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어 버림받은 우리에게로 버림받아 우리에게 자신을 나누시고 짊어지셔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끌어 들이시는 일을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십자가 지므로 이루어내십니다.

 

고린도후서 5:20~21절입니다.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분의 버림받음은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버림받음입니다. 빛과 진리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가장 큰 기쁨의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그를 찬양하게 합니다.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5: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