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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5:1~17 왕을 위한 노래 2021. 3. 31

 

1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2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3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4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5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6 3)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7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8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9 왕이 가까이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14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6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17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표제어는 고라 자손의 1)마스길, 사랑의 노래, 인도자를 따라 2)소산님에 맞춘 것입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은 앞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랑의 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노래라고 붙인 이유는 왕에 대한 사랑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 맞춘 것이라고 합니다. 각주를 보면 백합화 곡조입니다. 아가서를 볼 때 살펴본 내용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가시밭의 백합화라고 합니다(2:2). 그러므로 왕만이 아니라 왕과 결혼하는 신부에 관한 내용도 나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시의 제목을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함이라고도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시인의 말입니다.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 겁니다. 그 마음에 좋은 말을 하는 혀가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다고 합니다.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은 머뭇거림이 없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나갑니다. 붓이라고 번역하지만,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갈대 팬과 같은 것으로 먹을 찍어서 쓰는 겁니다. 이런 표현은 왕에 대한 노래가 마음에서 우러나서 멋지게 글을 쓰듯이 노래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2절입니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안치환 씨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데 여기서 왕은 사람보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도 왕과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혜를 입술에 머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한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복을 받았기에 은혜를 입술에 머금고 있다고 합니다. 이 왕은 누구입니까? 구약에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으로 볼 수 있고, 묘사하는 내용을 보면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러하듯이 성경은 기름 부음 받은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모든 말씀은 다 은혜의 말씀입니다. 지금 그 은혜의 말씀을 다 말할 수 없기에 몇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20:28).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나는 죄인을 부르려고 오셨다는(2:17) 말씀 때문에 나 같은 죄인도 소망이 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려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치라고 합니다. 그러자 모두 돌아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8:11).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으면 그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압니다(고전2:12).

 

누가복음 4:20~22절입니다. “20 책을 덮어 그 1)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 회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당장이 이사야 두루마리를 예수님께 드렸고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의 희년에 관한 내용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너희에게 응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 입으로 나오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엘리야 시대 때 이방인 과부가 은혜를 입고, 엘리사 시대 때 이방인 나아만이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이 모습이 인간의 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유는 왜 이방인이 구원을 받느냐는 겁니다. 유대인들 그중에서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가르친다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과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죄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싫은 겁니다. 더구나 세리와 죄인과 창기와 함께 먹고 마시는 은혜로운 예수님을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면 요나처럼 분노하여 죽어도 마땅하다고 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현장에 그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이 바로 심판의 대상입니다.

 

본문 3~7절을 봅니다. 봉독 용사이신 임금님이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세우신 승리입니다. 그래서 그 보좌는 영원하며 그 공의로운 왕권의 홀은 영원합니다. 이 보좌에 앉으신 이를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왕이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왕입니다. 이 전쟁은 앞에서 본 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을 거절함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8~9절입니다. “8 아들에 관하여는 ㅁ)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일차적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으로 십자가에 죽은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증거 합니다(1:1~3). 그중에 오늘 본문 6~7절을 여기서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된다면 영원토록 그를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8~11절입니다. “봉독 십자가로 승리한 왕의 결혼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신부를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멋진 모습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 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한다고 합니다. 왕을 가까이하는 여인들 가운데 왕들의 딸이 있습니다. 왕과 결혼하면 왕후가 됩니다. 왕의 여인들을 딸이라고 부르면서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신다고 합니다. 그러하지 않아도 왕이 주인이기에 그를 경배해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신랑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를 신부라고 합니다. 신부는 신랑의 신분에 참여합니다. 신부가 왕과 결혼하면 왕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시집을 왔는데 아직도 친정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그 왕의 영원한 영광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유는 하나님의 아내가 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모르기에 조금만 힘이 들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광야에서도 그렇게 하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합니다. 종살이하던 그 애굽을 친정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을 미약하게 하여 다시는 의지가 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에스겔 29:14~16절입니다. “14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에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15 나라 가운데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나라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16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하나님께서 애굽을 망하게 하신 후에 49년 만에 조금 회복시켜 주시지만, 미약한 나라가 되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을 받았다면 친정을 잊어야 합니다. 그래서 네 아버지의 집과 네 백성을 잊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너희의 아비가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 아래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 땅은 멸망할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 땅의 것을 잊지 못하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길이 힘이 드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17:32).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천사의 손에 이끌려 나오다가 뒤를 돌아보았기에 소금기둥이 됩니다. 이 말씀을 정말로 믿는다면 세상의 그 어떤 가치라는 것도 다 불에 태워질 쓰레기로 보여야 합니다. 롯의 처를 기억합시다.

 

12~15절입니다. 두로의 딸이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두로는 이 당시에 무역으로 부유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도 그 왕의 아름다움을 보기를 원하는 겁니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립니다. 그 옷은 금으로 수를 놓았다고 합니다. 최고의 옷입니다. 그런 옷을 입고 왕께로 인도함을 받아 갑니다. 여기서 왕께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신부가 알아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그러면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갑니다. 영원한 왕의 신부가 되는 길로 이끌려 가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이지만 세상과는 멀어지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15:21~28절입니다.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오늘 본문은 왕의 승리와 왕의 결혼식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이 역사 속에서 그 왕에게로 인도함을 받는 길은 고난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이곳으로 가신 겁니다. 그래서 그 여인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계시하여 주시며 동시에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 여인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님 앞에 엎드려 자신이 개와 같다는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떡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 네 믿음이 크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여인과 같은 처지에 있을지라도 예수님께 인도된다면 그것은 영원한 왕에게 인도함을 받는 길이기에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의 길입니다.

 

요한계시록 7:9~17절입니다.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저는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의 왕의 결혼식과 겹쳐서 보입니다.

 

이어지는 13~17절입니다.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이들은 영원히 찬송합니다.

 

오늘 본문 16~27절입니다. “봉독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시기에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합니다. 이 찬송의 내용이 보좌에 계신이와 어린 양께 영원토록 찬송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흰옷을 입은 자들이 환난에서 나옵니다. 마치 두로지역에서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오듯이 환난 중에 나옵니다. 그렇게 환난을 통하여 예수님께로 인도를 받는 겁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요한계시록 19:7~10절입니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시편 45편의 해석으로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환난을 겪으나 그 환난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 그 피로 흰옷을 입게 되면 영원한 왕의 신부로 부름을 받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19:16). 오늘도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따라 이끌려 간다면 비록 환난 중이라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적인 삶이 마치는 그날, 이 역사의 끝 날,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환난이 없습니다. 그날에는 온전히 어린 양의 신부가 되어 영원토록 크게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