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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9:1~20 모두 들으라 2021. 4. 28

 

1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표제어는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앞으로 반복되는 표제어는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성경에 기록된 이런 노래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읽고 받아들이면 생명의 양식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잔소리로만 들리고 외면하여 버릴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합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이런 말씀이 마음에 받아들여집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고 합니다. 뭇 백성이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백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 곧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으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는 이유는 지혜와 명철을 말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유에 내 귀를 기울였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노래로 들려주는 겁니다.

 

5절을 봅니다.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이 말을 시편 저자가 한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인들이 이 말을 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악인들이 이 말을 한다고 보는 사람은 나는 부자이기에 또는 지혜로운 자이기에 어떤 환난도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치는 내용으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기에 죄가 나를 에워싸고 비방하여도 두렵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소개하는 이유는 악인들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감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의 모든 사상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6~8절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속량할 수 있는 값은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이란 중의적입니다. 근본적인 뜻은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을 말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목숨이라는 생명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이방 사람도 들으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목숨이란 순우리말인데 목에 숨이 붙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생물학적인 목숨이라는 생명도 사람이 영원히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지만 어떤 재벌 회장은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젊고 건강한 사람의 피를 수혈하였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조직에 젊고 새로운 사람을 투입하는 것을 젊은 피를 수혈한다는 말도 합니다. 이 사람이 자기의 목숨을 연장해주면 자기의 재산 절반을 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돈은 벌면 되지만 목숨은 연장하지 못하니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재벌이든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이든 다 죽어갔을 뿐입니다.

 

6~10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과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7 아무리 갑부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 하나님께 속전을 지불하고 생명을 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8 생명을 속량하는 값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아무리 벌어도 마련할 수 없는 것, 9 무덤에도 들어가지 않고 영원히 살지 않고서야 어찌 속전을 마련할 수 있으랴? 10 누구나 볼 수 있다.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나 우둔한 자도 모두 다 죽는 것을! 평생 모은 재산마저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가지 않는가!”

 

이 말씀을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도 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자도 죽습니다. 죽음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죽고 나면 평생 모은 모든 재산을 남에게 주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무덤을 잘 꾸밀 수는 있겠지만 그 안의 시신은 썩고 구더기에 먹힐 뿐입니다(14:11). 또한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은 자도 죽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살아갑니까?

 

11~13절입니다. 봉독 사람들이 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 죽는다고 말도 합니다. 어떤 인문학자의 강의를 들어보니 한 시간 정도의 강의에 디진다는 말을 수십 번을 말하였습니다. 죽을 인생이 무엇이 중요하냐는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만 이런 자를 지식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도 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속 생각에는 자기들의 집과 토지는 영원하다고 생각하여 자기 이름으로 등기하여 둡니다. 지식도 재산이라서 지적 재산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재산권을 자기 이름으로 등록하여 자기 수익으로 삼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복음성가 작곡자가 어떤 장애인의 시를 인용하여 작곡하였습니다. 그 장애인의 이름을 작사자로 하였지만, 그 수익을 돌려주지 않았다가 이번에 사건이 일어나서 돌려주었다는 말도 합니다. 자기 이름으로 재산을 등기하여 두고 영원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14절입니다. 봉독생명을 살릴 수도 없는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평생 산 사람이나, 생명을 줄 수 없는 세상의 온갖 지혜라는 것을 말하는 자들도 결국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 되었다고 합니다. 양 같다는 말은 세상의 어떤 부자이든 권력자이든 지혜롭다는 자이든 죽음을 방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양에게 목자가 있듯이 그들에게는 사망이 목자가 됩니다. 사망이 목자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주지 못할 것을 평생 추구하다가 스올 곧 지옥이 그들의 영원한 거처가 되는 겁니다.

 

15절입니다. 봉독 모든 사람이 멸망하는 짐승처럼 살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나에 해당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오늘 보는 이런 말씀이 마음에 담아집니다. 마음에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의 허무함을 알게 하십니다. 자기 지혜의 헛됨도 알게 됩니다. 그런 과정이 환난이지만 믿음의 길이 이러합니다.

 

16~20절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더라도, 그 집의 재산이 늘어나더라도, 너는 스스로 초라해지지 말아라. 그도 죽을 때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그의 재산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비록 사람이 이 세상에서 흡족하게 살고 성공하여 칭송을 받는다고 하여도, 그도 마침내 자기 조상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멸망할 짐승과 같다.”

 

세상 모든 사람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살리지도 못할 재물에 목숨을 걸고 더 가지려고 하는 겁니까? 그 이유는 생존 세상에서 자기를 좋게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살아있을 때 자기를 축하합니다. 또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 죽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존귀하다고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세상의 수많은 지식 중의 하나로 들리면 그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죽는데 살아있는 나를 좋게 하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가난의 힘듦을 아는 사람들은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실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돈돈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이 말씀이 실제임을 알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과정이 고난이나 환난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고난과 환난을 통하여 섞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낡아지지 아니할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하시는 겁니다. 그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6:26절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사람이 온 천하를 얻었다고 합시다. 세상에 있는 것을 다 얻은 사람이지만 그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그 얻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은 들리지도 않았는지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도록 버려두지 않고 목숨을 걸고 막아내겠다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일이 곧 사탄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인데 사람의 일은 죽지 않고 영광 얻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16:24~25절입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자기 목숨이란 자기의 전 존재를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무엇을 하든지 자기 존재가 우선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간다고 하는 말도 자기 존재의 확장과 영원을 꿈꾸고 따라갑니다. 이렇게 자기 목숨을 얻으려고 하는 일이 오히려 목숨을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찾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방금 본 26절의 말씀을 하신 겁니다. 봉독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속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면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면 한자리할 생각을 하고 따라간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악인들의 속 생각과 같습니다. 그들의 속 생각으로는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나의 이름과 나의 거처가 대대에 이를 것으로 생각한 겁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이 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갈 자가 한 명도 없기에 예수님은 십자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시고 그 완성된 복음을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시면 그때부터 이 길로 끌려갑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입니다. “봉독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자기 형에게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유산 문제로 찾아온 겁니다. 예수님은 다른 재판관들과 다르게 정당하게 자기의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생각하고 요청하였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이게 왜 탐심이냐고 항의할 사람들이 있기에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 부자가 밭의 소출이 너무 많아서 곡식을 쌓아 둘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고 자기 영혼에 하는 말이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합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영혼까지 팔아서 건물주가 된 겁니다. 한 달에 임대료만 수천만 원을 받는다면 어리석은 부자처럼 말을 할 겁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어리석은 자여 하나님이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인색한 자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또 헌금 많이 하라는 결론을 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인색하지 않다는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웃을 사랑하면 재물을 쌓아 둘 틈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에 대하여도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날마다 먹고 마시며 잔치하는데 그 집 앞의 거지는 음식쓰레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영원한 생명의 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린 나사로입니다.

 

야고보서 4:1~5절입니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이렇게 말씀이 분명한데 자본주의 만세를 외치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6:6~10절입니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바른 말씀을 받았다면, 예수님이 전부임을 믿었다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합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도 자족이 안 되고 계속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이것이 자기 마음의 욕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살아서 우리 안에 새겨지며 일하시도록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응답은 예수님으로 자족하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