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사무엘하 24:17-19,25 다윗의 기도 2010. 4. 14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18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19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다윗의 기도는 아주 많습니다. 다윗의 시편이 다 기도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평소에 하는 기도와 다릅니다. 다윗의 간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언이 되고 찬양이 됩니다. 주일 오후에 시편을 차례대로 보고 있기에 다윗의 기도는 한 곳만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배경은 다윗이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내고 이제는 대적을 거의 다 물리치고 평안한 때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을 거의 다 차지하였습니다.

 

24:1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십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만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치시기 위하여 다윗을 격동시키십니다. 박윤선 주석에서는 압살롬의 반역과 세바의 반역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만 죄를 특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치셔도 아무른 할 말이 없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고 우리의 죄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무엇이 그리 죄가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셔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을 사탄에게 자랑하심으로 고난을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을 우리가 시비를 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피조물은 아멘 할 뿐입니다.

 

여기에 수긍이 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말씀에 수긍이 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아무른 한 것도 없이 은혜로 죄가 용서받는 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용서 받지 않으면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시켜서 인구를 조사하게 하고 인구를 조사하였다고 하나님을 벌을 주신다는 것이 합당하여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역대 상 21:1절을 봅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여기서는 사탄이 충동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탄의 충동을 허용하였다고 봅니다. 좀 수동적인 면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탄을 사용하셔서 다윗을 충동하여 인구를 조사하게 하였다고 해도 우리가 무어라고 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의 마음 안에 인구조사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의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입니까? 구약에서 출애굽 하였을 때에 지파를 따라 계수하게 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편제할 때도 지파별로 수를 헤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수를 헤아림은 대속을 위하여 헤아리고 또 여호와의 허락으로 수를 헤아려 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만 오늘 다윗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심에 있어서 자기의 공로를 계수해보고자 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을 다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수를 다윗이 계수하여 자기 손에 쥐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를 다 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를 명하는 다윗이 시험에 들었다는 것은 요압장군은 압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탄을 통하여 격동시키시니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인구조사를 하게 합니다.

 

2-3절을 봅니다. 왕이 요압에게 명령합니다. 그러자 요압이 왕께 이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느냐고 합니다. 백배나 더 많게 하실 것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실 것을 믿으시지 왜 당신의 눈으로 확인을 하려고 하며 당신의 손안에 넣고자 하느냐는 책망입니다. 그러나 왕이 명령을 내리니 하는 수 없이 조사를 합니다.

 

4-9절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조사하는데 9개월 20일이 걸립니다. 그리하여 보고를 하는데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 십만이며 유다 사람이 오 십만이라고 합니다. 역대 상에 보시면 레위와 베냐민을 빼고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숫자도 좀 많이 나옵니다. 이렇게 보고를 하자말자 다윗이 자기 죄를 알게 됩니다. 죄를 깨닫는 것은 죄를 짓는 순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짓고 나서도 모르기에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만 죄를 짓고 나서 죄를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란 군대의 수나 병거의 수에 달린 것이 아닌 것을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이미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말년에 대적을 다 물리치고 하나님이 언약하신 땅을 다 차지하게 되고 나니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여야 하는 다윗인데 군대를 헤아려 자기의 손아귀에 넣어보겠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왕임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를 살해할 때도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왕이 아니라 세상의 왕으로 착각한 것이기에 왕국 안에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줄 아는 것입니다. 옛날 왕들이 다 그러하였습니다.

 

그런데 왕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각자의 자기 자리와 영역에서 다 이렇게 왕으로 살아갑니다. 누가 감히 나의 영역을 넘보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는 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면 그저 죄의 본성이 터져 나오는 것이 다윗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늘 자기를 점검해 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나의 월급은 얼마인지, 우리 집은 얼마인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수하여 자기 손에 쥐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숫자는 얼마인지 예산을 얼마를 세워야할지 늘 계산하여 키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을 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것이 왜 큰 범죄가 되는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고 자기 힘으로 계수하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 모습이 이렇게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구합니다. 이제 간구 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신이 종인 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11-13절입니다. 이런 다윗의 간구에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해서 용서할 것이 못 되는 중한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 기근, 석 달 동안 대적에게 쫓김, 3일 전염병이 돌 것인데 이 중에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두 가지는 백성들에게 임하는 벌이며 한 가지는 자기만 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정말 회개하였다면 자기가 대적에게 쫓기는 것을 택하여야 죄인이 회개한 모습답지 않습니까?

 

그런데 압살롬의 반역과 세바의 반역을 경험한 다윗이 석 달 동안 대적에게 쫓겨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 드는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니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대적에게 쫓겨 다니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에도 이런 계산이 머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보내시는데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제 제대로 죄를 깨닫게 됩니다.

 

17절을 봅시다. 곧 여호와께 아룁니다.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역대 상 21:16-17절입니다. “봉독”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칼을 빼들고 예루살렘과 하늘을 향하여 펴고 있습니다. 다윗이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 나와 내 아버지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소서! 그리고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값을 주고 사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역대상 21:26-27절입니다. “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다윗의 회개의 정점이 어디에 이르게 됩니까? 번제와 화목제에 이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분노와 심판이 제물에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제가 드려지는 것입니다. 속죄가 되어야 화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의 칼이 칼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제사가 드려진 장소가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되어 있는데 사무엘하에서는 아라우나라고 합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가 드려진 장소가 바로 성전이 세워지는 곳이 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곳이 모리아 산인데 바로 이 산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곳이 됩니다. 그러면 다윗이 마지막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뜻을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다윗 안에 있는 속성이 우리에게도 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 이루어지는 일조차 자기의 행위와 공로를 개입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모든 사람들이 속성이 다 이러합니다. 심지어 회개하는 순간까지 자기가 유리한 쪽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 가정의 문제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무엇이 문제입니까?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회개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회개의 기도만으로 끝이 아닙니다. 번제와 화목제 위에 내려진 불의 심판을 보아야 합니다. 번제와 화목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위에 부어진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와 심판을 보는 사람이 회개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 저주와 심판을 받으심이 바로 내가 받아야 할 저주요 심판임을 아는 사람이 회개의 사람이며 믿음의 사람이며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마주대하는 것입니다.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26절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또는 그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9-10절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런 화목제물의 능력이 우리 안에도 나타나기를 소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