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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1:7~10 빛과 어두움 2019. 9. 25

 

7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본문 7절을 봅니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며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제일먼저 대중가요 가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고 조동진 가수의 행복한 사람이라는 노랫말 중에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두 눈 있으니, 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 있으니이런 가사입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울고 있지만 그래도 별을 볼 수 있고 바람결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가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7절도 문자대로 보면 빛과 해, 곧 밝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아름답고 좋다는 말로 보입니다.

 

8절입니다. 사람이 밝고 즐겁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것으로 7절을 본다면 8절은 사람이 여러 해 살아가기에 그렇게 계속하여 항상 즐겁게 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지금 빛을 보면서 사는 것은 즐거운 삶의 전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라고 하고서는 어둡고 캄캄한 날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면서 다가올 일은 다 헛되다고 합니다. 7절에서는 즐겁게 살라고 하고서는 8절에서 앞으로 캄캄한 날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면서 다가올 모든 일이 다 헛되다고 합니다. 즐겁게 살라는 분위기를 갑자기 급전시켜 버립니다.

 

9절입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9절은 7절과 8절을 요약적으로 반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청년이녀 네 어린 때와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며 원하는 대로 눈이 보는 대로 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것을 알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너의 어릴 때와 젊을 때에 마음껏 살고 계속하여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즐겁고 기쁘게 살라고 하다가 갑자기 심판의 이야기로 분위기가 바뀝니다.

 

10절입니다.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다고 합니다. 사람이 어린 시기와 젊은이 시기를 지나 늙고 병들어 죽어갑니다. 그러므로 밝은 빛의 삶처럼 보이는 어릴 때와 젊은 시절을 즐겁게 살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만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앞으로 다가올 일이 헛된 것이기에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고 악이 네 몸에서 떠나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어릴 때와 젊은 시절과 다가올 헛된 날들을 빛과 어두움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과 어두움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1:1~5절입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내용을 전체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빛과 어두움을 보려고 합니다. 처음 창조 시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은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십니다. 이런 배경으로 빛이 있으라고 하십니다. 이 빛의 등장으로 어둠이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빛을 낮이라고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제 사일 째에 두 광명체로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십니다(1:14~19). 두 광명체가 해와 달입니다. 그러면 첫째 날의 빛과 넷째 날의 태양의 빛은 다른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양은 첫째 날의 빛을 보여주는 그림자 역할입니다. 그 근거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햇볕이 쓸데없습니다(22:5).

 

그러므로 오늘 보문 7절에서도 빛은 실로 아름답다고 한 이 빛과 해는 다른 단어입니다. 문맥상으로는 빛과 해를 같이 볼 수 있어도 해는 처음 빛을 반영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해 아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헛되다고 전도서에서 그렇게 자주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후에 타락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은 해 아래 살아가지만 그 애씀과 수고들이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해 아래 살아가는 것이 헛됨을 알고 참되고 영원한 빛을 보는 것이 영원한 즐거움 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신이 속이고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을 성경의 관점이 아니라 세상의 관점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세상 가치관으로 평가하는 빛과 어두움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법무부 장관사태로 젊은이들이 실망합니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만이 아니라 그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치고 그만한 특권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권력과 금력이 있는 집안에 태어났기에 예사로 행합니다. 이러한 자들의 불법과 악행들이 드러나면 잠시 욕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워합니다. 신월고등학교 학교 벽에 대학진학자 명단을 현수막에 적어 놓았습니다. 학교를 빛낸 것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람은 어둠의 자식들입니까?

본문 9절을 다시 봅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여기서 청년이 단지 청년만이 아니라 다음 주에 볼 늙어서 더 이상 힘이 없다고 하기 전의 사람들이 다 청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청년의 때를 즐거워하고 마음에 기뻐하며 마음의 원하는 길들과 네 눈에 보는 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심판을 하신다고 합니다. 마음에 기뻐하고 원하는 일을 하는데 왜 심판을 받습니까?

 

이사야 5:20절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오늘 본문은 빛이 좋은 것이며 그 빛을 즐거워하면서 어린 시절과 젊은이 시절을 즐거워하면 살라고 하는데도 심판을 말씀하신 것은 그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원하는 것이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리 자기의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본질상 진노 받을 일이 됩니다. 빛과 흑암을 구별 못하도록 이 세상신이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3절입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1)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어릴 때와 청년의 때에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면서 심판을 기억하라고 한 것은 빛이 좋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타락한 인간들은 그 빛조차 자신들의 시각으로 재편집하여 살아가기에 심판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빛과 어두움에 대한 내용도 다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8~9절입니다.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빛과 어두움을 구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악을 선으로 선을 악으로, 흑암을 광명으로 광명을 흑암으로, 쓴 것을 단 것으로 단 것을 쓴 것으로 삼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이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절대적인 다수이며 이러한 자들의 말을 추종하는 자들 역시 다수입니다. 이들의 배후는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기에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3~6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하게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합동으로 살해하였습니다. 그 영광의 주님을 빛으로 본 것이 아니라 어두움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신들의 민족이 로마에서 멸망하면 안 된다고 여기면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결의하였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며 심지어 전염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발생한 지역을 차단하고 그 농장 전체의 돼지를 죽여서 땅에 묻어 버립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도 세상은 이렇게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그 복음을 빛으로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빛이 있으라고 하신 그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임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보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1~5절입니다. “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하나님이시며 빛이시며 생명입니다. 이 빛이 어둠에 비치지만 어둠이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빛에 대하여 세례요한이 증거를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친 것은 자기가 증거 하는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빛인지 무엇이 어두임인지도 알게 됩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것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의 자랑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세상의 빛과 어두움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야만 합니다.

 

요한복음 1:9~14절입니다.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참 빛과 생명이 예수님인줄 알고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의 혈통이나 육정으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가려놓았기에 하나님께서 빛이라고 하는 것은 어둠으로 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은 배척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유대인에게 거리끼고 저주받아 죽은 십자가, 헬라인들에는 로마를 반역한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구원의 능력이 됨을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봉독빛을 보는 것을 심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빛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 믿는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빛으로 보지 않고 타락한 인간의 시각으로 세상에 빛을 남긴 자들이라는 세상의 영광스러운 빛을 말한다면 이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즐겁고 기쁘게 살라고 하면서도 심판을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은 빛과 어둠을 구별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을 전한 사도들이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참된 빛을 발견한 자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환난은 잠시입니다. 잠시 받는 환난, 한 칠 팔십년 잠시 환난을 통하여 겉 사람이 낡아짐을 배우며 동시에 속사람이 새로워짐을 압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전체가 다 낡아집니다. 흔들리고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주님의 약속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이 나라만이 영원한 빛과 생명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