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2:16~44    영원한 언약      2014. 7. 23

36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7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4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43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44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저지대의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천만 원을 호가하는 이태리 명품 점퍼를 입어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그 말씀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원리와 세상의 말에 홀려서 땅의 티끌인 겉 사람 치장에 평생을 허덕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것이 지옥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지옥에서 별세시키시기 위하여 날마다 죽음으로 넘겨버리십니다. 이 죽음이란 우리가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는 그 노선에서 이탈시켜 하나님의 약속의 노선에 편입시켜 넣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인데 우리는 죽음으로 보입니다. 

고린도후서 4:7~11절입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영원한 언약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33장까지는 새 언약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합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땅을 사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와 전혀 상관없는 기업 무를 권리를 이행하는 것임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업 무를 의무와 권리가 예레미야에게 있다고 하여도 나라가 망하는데 왜 그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의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기에 순종하였지만 그 의문에 대하여 오늘 기도형식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16~25절까지의 내용이고 하나님의 응답이 26~4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본문 16~17절입니다. “16 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 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기도의 첫 내용이 슬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은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신 분이신데 현재 나라가 망하게 된 이 일로 인하여 슬프다고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나라가 망하게 되는가 하는 슬픔입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하는 사도신경의 첫 구절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전능하셔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는 얼마나 불가능하고 슬픈 일이 많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면서 슬픈 일이 없었습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나에게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가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성경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이루어내시는 일에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어떠한지를 기도로 아뢰고 있습니다. 

18~19절입니다. “18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 베푸시고 그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에게 갚으신다고 하는데 이 말씀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주께서는, 은혜는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베풀어 주시지만, 조상의 죄는 반드시 자손이 치루게 하시는 분이시며,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만군의 주로 이름을 떨치시는 분이십니다.” 개역은 천만인으로 새 번역은 천대로 번역합니다. 

출애굽기 20:4~6절입니다.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기서는 삼사 대와 천대를 비교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이 하나님께 잘하면 자식이 천 대로 복을 받고 잘 못하면 삼사 대 저주를 받는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이 말씀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을 하면 단 한 사람도 복을 받을 자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킨다는 사람들도 정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이 로마서 3:23절의 증거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시편 30:5절입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노여움과 은총의 대비입니다. 노염은 잠깐이지만 은총은 평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천대이지만 그 심판은 잠깐 삼사 대라는 대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지만 그 심판은 주께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은총의 다른 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대로 보응하신다면 우리는 다 진멸당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심판이 구원이 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지금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는 것임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압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라는 자들은 알지 못하기에 오히려 예레미야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기에 순순히 심판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러하지 못한 현실을 보면서 슬퍼합니다. 

본문 20~23절입니다. “20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21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2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23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16~19절까지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푸시고 심판을 행하시는지를 말씀합니다. 20~2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그 강한 손과 편 팔로 기사와 표적을 행하셔서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기에 들어가서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어떠하였습니까? 

23~25절입니다.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24 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바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대로 출애굽 시키셔서 약속의 땅에 심어 놓으셨지만 이들이 한 일은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긴 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이 일어나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이 현실을 주께서 보시고 계시면서 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라고 하셨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밭을 사라고 하여 사두기는 하였지만 이 성은 갈대인의 손에 넘겨졌다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의 답변이 주어집니다.  
 
본문 26~29절입니다. “26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2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길 것인즉 그가 차지할 것이라 29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하게 한 집들을 사르리니”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 전능하신 능력이란 하나님의 자기 약속에 전능하시기에 예루살렘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신다고 합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약속에 전능하시기에 이렇게 하십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온 이유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신지 우상숭배를 하면 심판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지금 심판을 집행하시니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만약에 심판을 하시지 않으시면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이루실 능력이 없는 하나님이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였는지 봅니다. 

30~35절입니다. "30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눈 앞에 악을 행하였을 뿐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하게 한 것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키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32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으켰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 33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34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 3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 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지금까지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보았습니다만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이 여호와의 눈앞에 행한 일이라고는 악만 행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는 창세기 6장과 8장의 사실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여실히 드러내고 계십니다. 이러한 죄악은 남녀노소 신분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온갖 우상숭배가 나왔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아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합니다. 자식들을 우상 앞에 인신공양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이런 일이 없습니까? 

오늘날 이 땅의 부모들이 자기들의 자녀들을 어디에 바치고 있습니까? 바알의 제단에 바치고 있습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을 섬기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누가 더 바알을 잘 섬기는지를 경쟁시키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대 기업에 정사원으로 취직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을 복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야 그런 것이 성공이라고 하더라도 교회에서는 그런 것을 성공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그런 일을 축하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자식을 바알의 신전에 바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탐심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고 그 탐심을 더 키우도록 말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골로새서 3: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예레미야서와 바울서신이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는다고 합니까? 탐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합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이 탐심에 대하여 자세히 풀어놓은 내용이 예레미야서이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우상을 섬겼기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십니다. 오늘 신약의 성도들도 탐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따라 그 우상들을 부수어 버리십니다. 만약 그 우상들이 부수어지지 않고 그대로 안고 간다면 이것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는 반드시 징계를 하셔서 우상을 버리게 하시고 주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십니다. 

36~41절입니다. “36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7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40절 말씀대로 여호와의 영원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42~44절입니다. "4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43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44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저지대의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망하는 나라에 밭을 사게 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셔서라고 자기 백성을 연단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때문입니다. 이것을 실물로 보여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예레미야가 슬퍼하며 기도하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들었듯이 오늘날 성도가 탄식 할 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이 영원한 약속들을 보증하여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