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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1~7 다니엘 2015. 6. 24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우리는 어려서부터 위인전기들을 읽으면서 자랐습니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그런 전기들을 읽으라고 하신 이유는 우리도 그러한 위인들처럼 세상을 빛내는 사람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위인과 빛을 남긴 사람들이라는 책들을 보면 인류를 이롭게 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한 교육을 받으면서 교회로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교회에서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위인전기집의 빛을 남긴 사람들과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저 인류에 도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성경의 인물을 봅니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들을 마치 위인전기의 인물처럼 세워놓고 우리도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본받자고 합니다. 그런 인물 중에 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라고 하면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를 먹지 않았지만 얼굴이 더 빛났고 지혜는 모든 박사들보다 열배나 뛰어났다는 것과 사자굴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도 나왔고 다니엘 임팩트라는 책도 있습니다. 다니엘 학습법은 여러 교회에서 초정집회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목사인데 서울대 종교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철저히 하면서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하고 공부하면 학습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다니엘 임팩트도 다니엘 같은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자고 하는 설교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영향력으로 끼치자는 말을 다니엘의 경우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지금 어디에 가 있습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습니다. 왜 포로로 잡혀가 있는 것입니까? 에스겔과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애가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여 포로로 잡혀간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일입니다. 그런 바벨론에서 하나님은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여 내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배반하실 수 없기에 그 언약을 한 자기 이름 때문에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대단한 신앙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이 나타나는 도구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되는 것은 다니엘의 훌륭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 1~2절을 봅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 삼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쌉니다. 이 배경은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충분히 보았습니다. 2절을 보시면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고 합니다. 바벨론 왕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넘기셨기에 바벨론이 취하여 간 것입니다. 이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면 바벨론이라는 신흥제국이 등장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왕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야김도 성전의 그릇도 넘겨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 성전의 그릇을 시날 땅 자기들의 신전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본문 3~5절입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중에 쓸 만한 자들을 데려와서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은 식민지를 통치하는 일에 유용하기에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일본에 유학을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군정 시절에도 미국에 유학을 간 사람이 많습니다. 이 당시에 유학을 가는 사람은 보통사람들이 가기 힘듭니다. 고관의 자녀들이나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장학금을 주면서 공부를 시키는 이유는 자기들 나라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바벨론도 그러한 방식으로 왕의 식사에 사용하는 진미와 포도주를 교육생들에게 하사합니다. 그렇게 삼년간 교육시켜 바벨론 왕궁에서 왕을 위한 일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본문 6~7절입니다. 바벨론 왕궁에 세우기 위하여 바벨론의 학문을 삼년간 배우게 하는 소년들 중에 유다 자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습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칩니다. 일제 강점기에 창씨 개명을 하듯이 바벨론 식 이름을 붙이는데 그 이름이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유다식 이름의 뜻만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의 유다식 이름들은 그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붙이 이름들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들조차 우연히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이름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이 다니엘입니다만 그 이름의 뜻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보려고 합니다.

 

먼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라는 두 단어가 합하여졌습니다. ‘의 어원을 찾아가면 히브리어의 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단어는 통치하다. 판결하다. 신원하다. 심판을 내리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뜻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신원하여 주신다는 뜻이 다 들어갑니다. 그런데 지금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원수 갚아주심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만 보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서 전체와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하여 보시면 하나님의 통치와 신원하심이 어떠한지 보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친구 이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하나냐입니다. 하나냐는 하난야후의 합성어입니다. ‘하난은 은혜를 베풀다. 긍휼히 여긴다는 뜻이며 야후여호와의 단축 형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 하나냐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여화의 심판과 통치를 말하지만 하나냐는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것이 여호와의 심판임을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통치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의 하나님이 바벨론을 다스리신다는 것이 다니엘서에서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지만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온 자들에게 여전히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심판을 하지 않고 버려두심이 진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1:24,26,28).

 

미사엘의 합쳐진 이름입니다. ‘는 의문 대명사로 누구?’의 뜻입니다. 그러면 과 합하여 누가 하나님이냐는 뜻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금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제 24세 된 아가씨와 상담을 하였습니다. 저의 집사람과 어른 두 분도 함께 했습니다만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믿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천지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 왔습니다만 나라가 망하여 아무른 도움이 없을 때에 누가 하나님인가? 이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강대국 바벨론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가? 아니면 망해 버린 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진짜 하나님인가? 이런 질문의 답도 다니엘서에서 나옵니다.

 

아사랴 아자르여호와에서 온 단어입니다. ‘아자르는 돕다, 더하다, 도움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의 아들들의 이름들이 이런 뜻으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여호와의 도움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의 통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냐의 은혜를 베푸시는 여호와도 보이지 않습니다. 미사엘의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사랴의 도우시는 하나님도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레미야 애가 5장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완전한 절망 가운데서 전혀 자신들의 힘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때에 예레미야의 간구는 주께서 우리를 돌이켜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주셔야만 돌아갈 수 있는 전적 무능함의 자리에 이르게 하시고 돌이켜 주십니다. 이렇게 돌아오는 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찬양합니다.

 

시편 137편입니다.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바벨론의 강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보니엠이 이 가사로 노래하여 히트한 곡이기도 합니다. 보니엠은 4인조 흑인 가수입니다. 흑인들이 핍박받은 것과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생활이 중첩되어 보입니다만 곡이 너무 흥겨워 춤을 추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을 할 때에도 가사와 곡이 다 중요합니다. 물론 기뻐 뛰며 찬양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의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람들이 너희가 시온의 노래를 노래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방의 땅에서 어떻게 시온의 노래를 부를까 하면서 예루살렘을 잊어버린다면 손의 재주를 잊으라고 합니다.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예루살렘을 더 즐거워하지 않으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라고 자기 저주를 합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지라고 한 바울사도의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고전16:22).

 

그러나 이 바벨론 강가에서 하늘이 열립니다. 에스겔 1:1~3절입니다.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아무른 도움도 없다고 여기며 바벨론 강가에서 울고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름들이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이들의 이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내십니다. 아브라함은 두 번이나 아내를 동생이라고 이방의 왕들에게 넘긴 사람입니다. 이삭도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하여 넘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의 아내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가 죽음의 고통과 같은 고통들을 당하고 나서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생애는 다 그들의 바닥을 치면서 온전히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족장들의 역사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그대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국가로 세워주십니다만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은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들이 믿는 말과 병거와 은과 금과 정략적인 결혼과 외교 정책으로 나라를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배반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나라가 완전히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고 그 완전한 바닥에 이르고 난 후에 주께서 돌이켜 주십니다. 그 뜻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에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 심판 중에 누가 과연 하나님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바벨론의 포로 가운데서도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면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같은 방식으로 불러내십니다. 간단하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간 그 길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보내게 하시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그 부르심이 나의 뜻과 전혀 반대되는 뜻임을 알게 하시려고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에 손을 어긋 맡겨 축복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뜻들이 어긋날 때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의 뜻이 어그러졌기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에 넘어가서 계속하여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우리의 뜻을 무너뜨리심으로 어느 누구도 귀하게 보지 않은 십자가,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모두가 도리질 하면서 돌아설 그 십자가에 마음이 끌리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만 베푸시는 언약을 따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택한 배성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십자가로 다 찾아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내시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입니다. 왜 십자가여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만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죽음입니다. 자기 죽음이 없는 자기 긍정의 복음은 다른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불러내시고 그 영원한 약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지 족장들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이렇게 가난한 심령이 된 자들은 주께서 돌이켜 주시는 기쁨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들의 고백은 아브라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4:17)

 

시편 126편입니다.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온의 포로를 누가 돌아오게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렇게 돌아올 때에 꿈꾸는 것 같고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혀에는 찬양이 가득 찼다고 합니다. 이 일이 여호와의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도할 때 사용하는 구절이 아니라 여호와의 대사를 인하여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그 애통 속에서 이제 주께서 돌이켜 주시니 기쁨이 가득하다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큰일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19~23절입니다.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긔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여기에 하나님의 자기 백성도 함께 연합시키십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큰일입니다.

 

에베소서 2:4~8절입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이 말씀들이 우리 안에 이루어진다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그들의 기쁨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비록 지금 바벨론이라는 이 유배지에 살아도 이미 완료된 하나님의 뜻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과 은혜와 도우심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