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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1:1~4 솔로몬의 아가(雅歌) 2019. 11. 6

 

1 솔로몬의 아가라 2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솔로몬의 아가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잠언과 전도서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오늘부터 볼 아가서는 솔로몬의 아가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가란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하면 노래들 중의 노래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잠언 3000가지를 말하고 노래 1005편을 지은 사람입니다(왕상4:32). 솔로몬의 잠언은 잠언서와 전도서에 이미 보았습니다. 그러면 노래란 시를 말하는데 솔로몬의 시는 시편에 72편과 127편만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있습니다. 시편은 다윗의 시편이 가장 많고 그 외에 찬양인도자들의 시편들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노래 1005편중에 두 편만 시편에 있어도 충분한 것은 노래들 중의 노래인 아가서가 있기 때문으로 봐도 됩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찾기 위하여 노력한 것을 잠언과 전도서에서 보았습니다. 참된 지혜를 찾기 위하여 애쓴 결론은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해 아래 행하는 일들이 다 허무한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음에서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고 피곤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의 결국은 여호와 경외가 사람됨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됨이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에 그 십자가 사랑 안에 있는 것이 여호와 경외임을 보았습니다.

 

솔로몬이 사랑한 여인이 술람미입니다. 솔로몬의 이름과 술람미의 이름의 어원이 같습니다. 두 이름이 다 샬람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온전하다. 안전하다. 완전하다. 끝마치다 는 뜻으로 사용되는 어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모든 지혜의 완성이며 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항상 있을 것이지만 제일은 사랑이라고 고전13:13절의 말씀처럼 사랑이 완성입니다. 이 역사 속에서 믿음과 소망이 필요하지만 그 완성된 나라는 사랑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서는 이 아가서를 성경 안의 지성소라고 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아가서를 잘못 읽으면 안 되기에 성인식을 행하지 않은 아이들은 읽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아가서는 사랑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관계를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녀가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그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지만 저는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기에 아가서 역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 최고의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한글 개역성경은 화자(話者)를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 번역과 공동번역은 히브리어 단어의 성()과 수()를 따라 구별하였습니다. 그래서 새 번역은 남자, 여자, 친구들로 구별하였는데 공동번역은 신랑, 신부, 합창단으로 구별하였습니다. 저는 성경의 사랑이야기의 궁극적인 완성이 구약에서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아내로 표현하였듯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이야기로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짐으로(15:38) 새로운 살 길이 열린 것처럼 십자가로 그 사랑의 완성으로 들어갑니다(10:20).

 

오늘 본문 2절을 봅니다.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이 말은 남자가 하는 것으로 보입니까? 여자가 하는 말로 보입니까? 새 번역이나 공동번역은 성과 수를 따라 번역하여 구분을 합니다. 그래서 2~4절을 여자가 부르는 노래이며 4절의 끝 부분은 복수이기에 친구들 또는 합창단이 부르는 것으로 표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2절은 여자가 남자를 향하여, 술람미가 솔로몬을 향하여, 신부가 신랑을 향하여 부르는 노래입니다. 나에게 입을 맞추어 달라고 합니다. 입을 맞추는 사랑을 하려면 상대방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혼자서 도를 닦거나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빠져 들어갑니다.

 

창세기 2:20~25절입니다. “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어떤 사람은 아가서는 창세기의 이 말씀의 주석이라고 합니다. 모든 피조물의 짝이 있는데 아담이 짝이 없는 것을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아담에게 짝을 만들어 주십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내십니다. 아담이 여자를 보고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이면 살 중의 살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떠나 두 사람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내용입니다. 타락 이전에는 두 사람이지만 한 뜻입니다. 그런데 타락 이후에는 서로 핑계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락한 세상에서 참된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하여도 자기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사랑입니다. 이런 상태로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폭력이 되는지 스토킹도 나오고 데이트 폭력도 나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 아담의 갈빗대를 적출하여 여자를 만들 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교회를 만들어 내시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옆구리가 창에 찔려 물과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찬송가 4941절에서는 이렇게 찬송합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한 천지창조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사랑을 모르면 천지 창조의 뜻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였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씀하십니다(1:1~2).

 

오늘은 2절의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한다는 이 내용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새 번역이나 공동번역을 보면 이 말은 여자가 하는 말입니다. 이 여자는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남자를 향하여 입을 맞추어주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배경은 다르지만 내게 입을 맞추라고 한 사람은 이삭이 야곱에게 한 말입니다(27:26). 이삭이 늙어서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죽을 때가 다 된 줄 알고 자식을 축복하기 위하여 에서에게 별미를 만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에게 가야하는데 이삭은 장남인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혀서 아버지에게 보냅니다. 저주는 자기가 받겠다고 하면서 야곱이 음식을 들고 아버지께 가니 아버지가 그 옷의 향기를 맡고 에서인줄 알고 축복합니다. 인간의 욕망들이 다 드러나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내게 입을 맞추라는 것은 축복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인사는 입맞춤인데 존경과 사랑과 축복의 내용을 다 담고 있는 것이 입맞춤입니다.

 

잠언 27:6절입니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친구가 아프게 책망하는 것은 충직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의 잦은 입맞춤으로 거짓에서 난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 입맞춤이란 존경과 사랑과 축복이 다 담긴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자주 입 맞추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속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은 축복을 남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는 바른 말을 함으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타락한 인생들은 아픈 책망의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귀에 좋은 소리만 좋아합니다.

 

누가복음 22:48절입니다.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잠언 27:6절의 성취와 같은 내용입니다. 입맞춤은 존경과 사랑과 감사와 축복이 다 담기는 인사인데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파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이야기 하는 곳이 많지만 정말 그 예수님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근원부터 책망하는 예수님입니까?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팔아넘기지 않습니까?

 

디모데후서 4:3~4절입니다.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제가 종종 복음을 듣는 것도 취향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한 때는 같은 방향이라고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자존심을 조금만 건드리는 일이 발생하면 갑자기 원수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사는 것이 됩니다. 자기 귀에 좋은 이야기는 듣고 좋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배척하는 그 기준이 진리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시편 2:11~12절입니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전도서의 결론이 여호와 경외였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하고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노하시믕로 길에게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진노가 급하십니다.

 

시편 2:1~10절까지 봅니다. “봉독 세상의 나라들이 요란합니다. 민족들마다 헛된 일을 꾸밉니다.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이 서로 꾀하는 일이라는 것이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이런 세상을 보시면서 하늘에 계신이가 비웃으시면서 진노로 말하십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합니다. 다윗의 시편이지만 이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을 맞추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을 맞추지 않을까요? 바로 앞에서 가룟유다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열심당원으로 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로마를 물리치고 독립왕국을 이룰 것으로 믿었는데 도무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팔아넘겼다고 봅니다. 물론 그가 도독이라서 헌금을 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자의 입맞춤이 거짓된 입맞춤입니다.

 

이사야 52~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노래를 아실 것입니다. 타인보다 상한 모습,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분, 멸시 받아 버림받은 분, 간고를 많이 격고 질고를 아시는 분, 징벌 받는 모습, 찔림, 징계, 채찍에 맞음, 도수장에 끌려가는 양, 곤욕과 심문을 당하는 이런 분에게 누가 입을 맞추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까? 입을 맞추기는커녕 침을 뱉고 조롱하고 고개를 도리질 하면서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께 입을 맞추어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예수님께 입을 맞춘 여인이 있습니다. 입이 아니라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누가복음 7:36~38절입니다.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3)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3)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려고 합니다. 이때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가서 그 발 곁에 서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 옥합을 깨뜨립니다.

 

39~43절입니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4)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4)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바리새인의 답변을 들은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돌아보며 말씀하십니다.

 

44~50절입니다.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3)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입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자기 의를 가지고 이 땅의 섞어질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도 바알에게 입을 맞추는 자들입니다(왕상19:8).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에 입을 맞추지 않는 자들이며 입을 맞추어도 가룟 유다와 같은 입맞춤입니다. 이들은 시편 2편에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들이 받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 많은 한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에게 입맞춤을 허락받은 결과는 향기가 가득합니다. 이것이 사랑만 가득한 자리입니다. 이미 용서 받았기에 세상의 눈이 전혀 두렵지 않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많이 용서 받았기에 많이 사랑하는 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