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열왕기하 6:13-20 보게 하옵소서! 2010. 6. 16

 

13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20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북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잦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가면 항상 먼저 알고 방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람의 왕이 우리 가운데 적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때 신하 중에 한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왕의 침소에서 하는 말까지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왕이 그 엘리사부터 제거하기 위하여 말과 병거로 무장한 특별군대를 엘리사가 사는 도단성에 보내어 포위하게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엘리사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싸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포위된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놀라서 선지자에게 말합니다. 아아, 내 주여 어찌하여야 합니까? 엘리사가 대답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고 하면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환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방금 아아, 어찌해야 합니까? 다 죽게 되었다는 탄식이 나왔는데 눈이 열리는 순간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적들보다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불 말과 불 병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적들의 말과 병거는 혈과 육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와 함께 있는 말과 병거는 불 말과 불 병거입니다. 불 말과 불 병거가 한 대만 있어도 아무리 많은 적들의 말과 병거를 넉넉하게 이기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적들의 말들과 병거는 육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20:1절에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이렇게 증거 하였습니다.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과 병거를 보고서 두려워하였고 또 말과 병거를 수입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을 때에 말과 병거의 수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말과 병거를 구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가려는 자들을 향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책망합니다.

 

이사야 31:1-3절입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하나님 외에 다른 도움을 구하면 도움을 구하는 자도 도움을 주는 자도 다 망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서 어떤 도움을 요청합니까? 적들이 말과 병거가 많이 있으면 우리도 말과 병거가 저들보다 더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혈과 육에 속한 싸움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군사력 대결을 합니다. 냉전시대 때는 소련과 미국이 군비전쟁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중국과 미국이 서로 덩치 싸움을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다릴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영적인 눈이 뜨인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고백을 시편에서 보게 됩니다.

 

시편 20:7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편 68:17절입니다.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시 76:6절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 엘리사의 사환이 눈이 열리기 전에는 사람의 병거와 말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눈이 열리니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며 만만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꾸짖으시면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엘리사가 기도하여 사환의 눈이 열린 결과입니다.

 

이뿐 아니라 엘리사가 다시 기도합니다. 쳐들어 온 적의 눈이 멀도록 기도하지 이들이 도단 성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엘리사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서 사마리아 성 안에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포위하였던 자가 오히려 완전히 포위당한 것입니다. 이때 엘리사가 다시 기도하여 그들의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완전히 포위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들을 칠까요? 칠까요? 하면서 엘리사에게 간청합니다. 엘리사가 무기로 사로잡았다고 해도 어떻게 치겠느냐며 먹고 마시게 하여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돌아가서 쳐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이 경험한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선지자란 이렇게 먼저 보는 사람입니다. 먼저 보는 선지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보지 못하는 사환은 적을 보고서 두려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환처럼 아아, 어찌해야 하느냐고 탄식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엘리사처럼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불 말과 불 병거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 성경의 말씀을 기억나게 되고 말씀이 믿어지게 되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이 두려운 것입니까? 엘리사가 사환에게 두려워말라고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단 성을 말과 병거가 둘러싸듯이 온갖 두려운 문제들이 우리의 주변을 둘러싼다고 하여도 우리의 영적인 시각이 열려지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두려움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혈과 육에 속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8절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 있다가 사라질 이런 것들만 눈에 보이는 사람은 아직 영적인 눈이 뜨여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눈이 뜨인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믿는 자에게 이런 약속이 이루어지지 위하여 환난을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4:16-17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영적인 시각이 열려지지 않는 사람은 겉 사람만 관심을 가집니다.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지만 그러나 결국 낡아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시각이 열린 사람은 속사람에 관심을 가집니다. 관심이 달라지게 하기 위하여 환난을 주시는데 환난은 잠시 받는 가벼운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환난을 통하여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사람이 눈이 뜨여진 사람입니다. 이런 시각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연결하여 고린도전서 15:47-50절을 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은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바울사도에게서 보게 됩니다. 그가 율법에 속하여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을 가지고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합니다. 바울이 성경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행전9:1-19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니 갑자기 장님이 되었습니다.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흠이 없다고 하는 자가 장님인 것입니다. 장님 정도가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 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바울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바울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안수하여 기도하니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바울사도가 증거 한 내용이 바로 고린도 전후에서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눈에서도 이런 비늘과 같은 것이 벗겨져야 합니다. 혈과 육으로 보던 시각이 벗겨져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구하던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구하는 눈이 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우리가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3-24절입니다.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어떤 기쁨의 충만 입니까? 에베소서 1:15-23절입니다.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우리를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풀어진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잠간 있다가 사라질 것들로 인하여 울고불고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눈이 열려져서 하늘의 신령한 약속들로 인하여 기뻐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