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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19~29 지혜를 찾아서! 2019. 5. 15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27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세상만사를 자기중심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를 나오면 교회가 자기를 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교회를 찾아오는 고객들을 많이 확보하려면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에서 사람을 좋게 하려는 온갖 프로그램이 전도라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거리끼고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할 내용을 복음으로 소개합니다. 바울사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1:10, 살전 2:4). 그러므로 내가 복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나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아니라 복음이 주체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지혜가 지혜 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지혜를 추구하거나 소유하여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주체가 되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약한 여인이라도 성을 구하게 됩니다. 사무엘하 20장을 보면 세바가 다윗을 반역하여 무리를 끌고 아벨성에 들어갑니다. 요압장군이 성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아서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이때 한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에게 말한 후에 성읍의 사람들에게 지혜로 말을 하여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지게 함으로 성을 구합니다. 이 여인이 지혜로운 여인이라고 하지만 지혜가 이 여인을 지혜롭게 하여 성을 구하게 한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다고 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의 모든 인간은 그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합니다(6:5, 8:21). 다윗은 자신이 죄악 가운데 태어났다고 합니다(51:7). 바울사도는 구약의 모든 성경을 인용하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3: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만 죄가 없으시고 죄를 짓지 않으시기에(벧전2:22. 4:15) 구속중보자가 됩니다.

 

21~22절입니다. 22절에서 가끔이라고 되어 있는 히브리어 단어는 가끔이 아니라 자주, 빈번하게, 여러 번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입니다. 자기 칭찬의 말을 좋아하지만 자기를 욕하는 말은 얼마나 기분나빠하는지 악성댓글로 인하여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너의 종이 너를 욕하는 것도 듣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하면서 너도 남을 욕한 일이 많다는 것을 너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기억을 하는지 자기가 남을 많이 욕한 것은 생각도 안하고 남이 자기 욕한 것만 기억하여 분노하며 살아가는 자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23~24절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보다 지혜로운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로 지혜를 찾아 나섰지만 그 지혜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설교제목을 지혜를 찾아서라고 하였지만 인간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지혜는 사람의 손에 잡히는 지혜가 됩니다. 그런 지혜는 지혜가 주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지혜를 내 손에 장악한 지혜가 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지혜 자가 되려고 지혜를 찾아보니 지혜가 자기를 멀리한다고 합니다.

 

23~24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23 나는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해 보았다. 내가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결심해 보았지만, 지혜가 나를 멀리하더라. 24 지혜라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멀고 깊으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지혜를 찾아볼수록 지혜가 더욱 멀어지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혜는 너무도 멀고 깊어서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지혜를 찾아나섭니다.

 

25절 새 번역입니다. 그래도 나는 한 곳으로만 정신을 쏟아 보았다. 지혜가 무엇인지, 사물의 이치가 어떤 것인지를, 연구하고 조사하고 이해하려고 하였다. 사악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우매가 얼마나 미친 일인지를 깨닫는 데에 정신을 쏟아 보았다.” 지혜가 멀고 깊지만 포기하지 않고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혜를 밝히 안 것이 아니라 겨우 조금 알았다고 합니다. 그 안 것이 두세 가지입니다.

 

첫째, 26절 새 번역입니다. 나는 또, 올가미와 같은 여자 마음이 덫과 같고, 손이 쇠사슬과 같은 여자는 죽음보다 더 쓰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남자는 그런 여자를 피할 수 있지만, 죄인은 그런 여자에게 걸려들고 말 것이다.” 공동번역입니다. 나는 또 여자란 죽음보다도 신물 나는 것임을 알았다. 여자는 새 잡는 그물이다. 그 마음은 올가미요, 그 팔은 사슬이다. 하느님께 좋게 보이는 사람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죄인은 잡히고 만다.”

 

이런 글을 읽는 여인들은 화가 날 내용이지만 솔로몬의 자기 이야기입니다. 솔로몬 왕의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입니다. 그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여 우상숭배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여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지혜인데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도 여호와의 책망을 두 번이나 듣고도 이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보다 연애가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여인들에게 걸려 들어가지 않는 것이 지혜인데 이것이 여호와 경외입니다.

 

둘째, 27절 새 번역입니다. “27 보아라, 2)전도자가 말한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씩 찾아가는데, 28 아직도 얻지 못하였지만, 다만 찾으면서 깨달은 것은 오로지, 천 명 가운데서 남자 하나는 찾을 수 있어도, 천 명 가운데서 여자 하나는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동번역입니다. “27 설교자는 말한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해답을 얻으려고 하나하나 더듬어 찾아보았지만, 28 아무리 애타게 찾아도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답을 찾는 남자는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지만 여자들 가운데는 하나도 없다.”

 

이 말씀도 여자 분들에게 화가 날 내용입니다. 그러나 잠언서의 결론은 현숙한 여인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므로 남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혜에 대하여 찾아본 솔로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지혜에 대하여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솔로몬은 아직 지혜를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천명의 사람가운데 남자 하나는 지혜를 찾는 자가 있었지만 여자 하나는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사도도 선악과의 유혹에 먼저 넘어간 자가 여자라고 합니다(딤전2:14).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고 합니다(고전11:11). 여자도 남자에게서 나왔고 여자도 남자에게서 나왔다고 하면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난 것이라고 합니다(고전11:12).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들 가운에 지혜에 관심이 있는 자는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 기도의 표현대로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셋째, 29절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새 번역입니다. 그렇다. 다만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살이가 복잡다단(複雜多端)한 것은 원래 사람의 자리에서 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아무리 찾아봐도 제대로 알지 못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물론 결론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 경외가 지혜입니다. 지난주에도 여호와 경외가 극단을 피하는 길이듯이 지혜서인 잠언이나 전도서의 결론이 다 여호와 경외입니다. 신약에서도 지혜의 깊음을 말합니다.

 

로마서 11:32~36절입니다.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3)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풍성하고 큽니다. 솔로몬의 지혜로도 다 찾을 수 없었던 지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의 풍성함을 율법과 복음으로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복음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주께 무엇을 드려서 갚음을 받을 수 없고 그분이 먼저 찾아오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셔야 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주에게 달린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내가 지혜를 찾아서 찾은 것이 아니고 내가 복음을 찾아서 찾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2:7~14절입니다. “7 오직 3)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1장과 2장이 십자가의 도를 전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는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한 바울이 복음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성령이 임하게 되니 복음이 하나님의 지혜임을 알고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로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는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대로 전해질 것입니다. 세상의 영은 인과율이기에 은혜로 주신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들을 알아가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11:18~19절입니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2)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조차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질문한 배경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이 자주 금식하니 귀신들렸다고 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은 먹고 마시니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도무지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지혜가 옳은지 아닌지는 그 행한 일을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지혜의 일입니다. 잠언 8장에서 보았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천지가 있기도 전에 지혜가 선재하였으며 그 지혜로 창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를 알아보는 사람은 예수님의 모든 일을 옳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행한 일이라는 각주를 보면 어떤 사본에 그 자녀들로 되어 있습니다. 즉 지혜는 지혜가 낳은 지혜의 자녀들이 알아보고 옳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임을 아는 자들은 내가 지혜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그 지혜가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능력이며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