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아가서 4:12~16 잠근 동산 2020. 2. 19             (245장)

 

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지난주에 내 누이 내 신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12절도 내 누이, 내 신부라고 합니다. 이 말은 부부이전에 원래 한 몸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내용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근원에서 나온 내용도 신약에서 살펴보았습니다(2:11). 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내 누이라고 부르는데 신부도 신랑을 어떻게 부르는지 아가서 8:1절을 봅니다.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술람미가 솔로몬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도 한 근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봅니다.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고 합니다. 신부란 신랑에게만 열려야 한다는 은유로 볼 수 있는 표현들입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는 것은 신부의 순결에 대한 은유이지만 덮은 우물은 목축업자들이 우물을 큰 돌로 덮어둡니다. 양떼에게 물을 먹일 때는 열고, 먹고 나면 덮어둡니다(29:2,3). 오늘 본문에서 잠근 동산이며 덮은 우물이며 봉한 샘이라고 하는 것은 신부가 누구에게도 열려지지 않고 신랑에게만 독점되어 있다는 표현입니다.

 

잠근 동산이라고 하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용이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의 원형은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 아담에게서 하와가 나왔으며 그들이 원래 한 몸이었습니다. 그 에덴의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에덴동산에서 강이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에덴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사탄의 유혹으로 인하여 먹고 난 후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에덴 동쪽에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잠근 동산이 됩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술람미를 향하여 잠근 동산이라고 하는 것도 신랑 외에는 아무도 접근 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봐야합니다. 그래서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합니다.

 

13~14절입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여기서 언급되는 아름다운 과일나무와 향기로운 나무와 꽃들은 팔레스타인 땅의 것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나오는 진귀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과일과 향기로운 나무와 꽃들의 근원도 어디에 있었습니까? 에덴동산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은 신부에게 잠근 동산이며 덮은 우물이며 봉한 샘이라고 한 후에 네가 그 아름다운 과일과 나무와 향기로운 꽃이라고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원래 하나였던 그 관계, 내 뼈 중의 뼈이며 살 중의 살의 관계로 회복이 되었기에 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12절에서는 잠근 동산인데 이제는 그 샘이 열려서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동산의 샘이며 생수의 우물이며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라고 합니다. 12절과 15절과 16절의 동산이라는 단어가 다 같은 단어입니다. 에덴동산이라고 할 때 그 동산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잠근 동산이며 덮인 우물이며 봉한 샘이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그 샘과 생수의 우물이 흘러나오는 시내가 됩니다. 특히 레바논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끊어지지 않고 흘러내리는 시내입니다(18:14). 예레미야서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악이 끊어지지 않음을 말하는 내용이지만 레바논 시내는 끊어지지 않고 흘러내리기에 아가서는 인용한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 신랑으로 인하여 열렸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각종 과일과 꽃이 가득한 동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16절은 신부가 신랑에게 하는 말입니다. 북풍과 남풍이 불어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동산의 향기가 날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먹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신랑에게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신랑이 아닌 다른 자들에게는 잠겨야하고 신랑에게만 열리는 것입니다.

 

잠언 5:15~20절입니다. “15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16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17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여기서도 우물을 아내로 말합니다. 그 우물 외에 다른 것을 마시면 그것이 음행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잠근 동산의 덮여진 우물이며 봉한 샘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이러한 신부는 신랑 외에 그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겉으로만 보면 신부의 순결과 동정(童貞)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신부나 수녀의 독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신부나 수녀가 되기 이전에야 어떠한지 몰라도 신부와 수녀로 서약하면 평생 동정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라면 신부가 신랑에게만 마음을 여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4:3~6절입니다.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가지 않는 사마리아 동네에 일부러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 사마리아 우물가에 한 여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7~9절입니다. “봉독 아무도 물을 긷기 위하여 오지 않은 낮 열두시에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겁니다. 물을 좀 달라고 합니다. 여인이 당신이 유대인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지배를 받을 때 피가 섞였다고 유대인들이 개같이 취급하는 마을이 사마리아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은 유대인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기다린 것입니다.

 

10~15절입니다.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예수님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임을 말씀하시는데 이 여인은 동문서답입니다.

 

16~26절입니다. “봉독 동문서답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여인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고 하십니다. 처음 만난 유대인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바람기가 많은 여인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고대사회에서 여인 혼자 살기 힘들어 기둥서방을 두고 산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든 온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여인입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선지자로 알아봅니다. 그러면서 예배의 장소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라고 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라고 하는데 어디서 예배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 하시면서 사마리아도 예루살렘도 아니고 너희의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합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옴을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합니다. 이런 예배는 영과 진리가 임하여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예배를 잘 준비하고 드린다고 해서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셔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라고 하니 자꾸만 하나님께 무엇을 올려드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도를 올려드리고, 찬양을 올려드리고, 헌금을 올려드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예배는 진리와 영이신 예수님이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마리아 우물가에 영과 진리의 예수님이 계시니 예배의 현장이 됩니다.

 

여자가 말하기를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자신이 안다고 합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여인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고 하십니다. 유명한 에고 에이미입니다. 이후에 제자들이 음식을 구하여 오고 예수님의 음식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여인은 물을 뜨려고 가지고 온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내려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몰려오고 예수님을 초청하여 더 머무시기를 원합니다. 그 동네에서 이틀을 머물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니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저는 여기서 오늘 본문과 초점을 맞추어 보려는 내용은 잠근 동산, 덮인 우물, 봉한 샘이라는 표현과 이제 그 샘이 열려서 바벨론의 시내처럼 마르지 않는 샘이 됨을 보려고 합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 남편이 다섯이 바뀌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지만 그 남자도 자신의 정식 남편이 아니기에 남편이 없다고 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옳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은 다섯 남자를 거쳐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지만 잠근 동산이며 덮은 우물이며 봉한 샘입니다. 참 남편인 예수님께 열리기 전에는 닫힌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으로 인하여 열려졌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며 영원한 생명수 샘물임을 알고 믿게 되었고 전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 샘물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의 과거가 어떠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열어주셨기에 순결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1~3절입니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예수님과 제자들의 일행을 자기들의 소유로 섬긴 자 중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이 들려 무슨 짓을 했는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창녀로 봅니다. 예수 영화 같은 곳에서도 그렇게 설정이 되어 나옵니다. 창녀가 아니라고 하여도 일곱 귀신이 들렸다면 그 형편이 어떠한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의 소유로 다른 여인들과 함께 섬긴 것입니다.

 

마가복음 16:9~11절입니다. “9 2)[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예수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 두었다가 안식일이 지나 이른 아침에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열려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신랑이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이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남의 남편과 여섯 번째로 사는 여인이나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나 이들이 다 예수님을 맞이한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예수님을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기 전까지 그들은 잠겨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신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잠근 동산이나 덮인 우물이나 봉한 샘이라는 것이 단지 순결과 동정만을 말한다면 아무도 그리스도의 신부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랑이 오셔서 그 잠그진 것을 풀어 주셔야 합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열어주시고 풀어주시는 일을 예수님은 십자가로 이루신 것입니다.

 

이사야 22:22절입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다윗 왕궁의 열쇠를 맡은 셉나를 폐하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불러 다윗의 열쇠를 맡기는 장면입니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열쇠가 천국의 열쇠와 연결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으로 성경이 증거 합니다(16:9).

 

요한계시록 3:7~8절입니다.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22장의 다윗의 열쇠와 마태복음 16:9 의 천국의 열쇠라는 것이 다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열쇠가 되십니다.

 

계시록 22:1~5절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잠겼던 에덴동산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는 그 옛날의 동산이 아닙니다. 여기는 선악과과 없이 생명나무만 있는 동산입니다. 이 동산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옵니다. 그 생명수 강가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 참여되는 자들은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의 보혈로 씻음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로 잠근 동산을 여시고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을 열어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을 받은 신부들은 지금 여기서부터 생명을 주신 그 신랑과 더불어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