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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5:1-17 심판의 이유 2011. 12. 14

 

1 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 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3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고 4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17 내가 기근과 사나운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에 전염병과 살륙이 일어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난주에 에스겔의 상징행위를 통하여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적에게 포위되는 것이지만 포위한 적을 하나님께서 보내셨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는 것임을 철판으로 가리는 것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상징행위의 결론입니다. 5:2절을 봅니다.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예루살렘 성읍을 토판에 그리고 그 성읍을 향하여 왼쪽으로 390일 오른 쪽으로 40일 동안 누워있어야 하였습니다. 그 동안 음식과 물은 저울에 달아서 연명할 정도로만 먹어야 하고 떡을 구울 때에 소똥으로 구워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430일이 차면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상징행위가 오늘 본문입니다.

 

에스겔 5:1-4절입니다. 아마 430일 동안 머리와 수염을 깎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식사는 하루에 한 끼 정도로 버텼으니 몸은 아주 수척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에스겔이 머리카락과 수염을 날카로운 칼로 깎아서 저울로 세 등분으로 나누어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고 합니다. 그 흩어진 뒤를 따라 여호와께서 칼을 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삼분의 일을 나누어 불에 태우고 칼로 치고 바람에 날려버리는 중에 조금 남은 터럭을 옷 자락에 싸고 그 가운데 얼마를 불에 던지라고 합니다.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고 합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출신입니다. 제사장은 머리를 대머리처럼 밀면 안 되며 수염도 함부로 깎지 못합니다(레21:5). 그런데 삭도로 밀어버렸으니 대머리가 되었고 수염도 다 밀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수염이 깎인 것은 아주 굴욕적인 일입니다. 사무엘하 10장을 보시면 다윗이 암몬 왕의 죽음에 사절단을 보냈는데 사절단의 옷을 자르고 수염 절반을 깎아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부끄러워하므로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았다는 것은 극심한 애도와 굴욕을 보여줍니다. 제사장인 에스겔의 이런 행동은 보는 자들로 하여금 충격과 경악에 빠지게 합니다.

 

에스겔 5:5절입니다. 에스겔의 상징행위가 끝나고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토판에 예루살렘의 성읍을 그렸기에 사람들이 다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와 공격과 심판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일말의 기대는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자들이 심판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희망을 이야기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 보았습니다만 적이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다가 쳐들어오니 곧 물러간다고 합니다. 결국 포로로 잡혀가게 되니 이들은 또 2년 만에 돌아온다고 합니다. 지금도 거짓 선지자들이 선동하고 있기 때문에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에스겔의 입을 주목하였는데 이것이 예루살렘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왜 심판을 받는지 계속하여 말씀하십니다. 5절 중반에 보시면 예루살렘을 이방인 가운데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지리적으로든 영적으로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일하신 것입니다. 지리적으로도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와 유럽으로 연결되는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으로 이집트와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가 다 조그마한 예루살렘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내 말을 잘 들으면 제사장 나라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4-6절입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여호와의 이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멘하고 피를 뿌려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 언약의 복과 저주가 지난주에 보았던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제사장의 나라가 되지만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그 언약대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심판을 받습니다. 이런 심판의 이유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에스겔 5:6-7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리는데 그 악이 이방인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율법을 받지도 못하였지만 그들의 윤리와 도덕과 양심의 법으로 살아가는데 이들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지난주 주일 낮에 보았습니다만 율법을 받지 못하여도 그들의 양심과 그들 자신이 법이 되어 율법의 기능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그 큰 구원과 시내산의 강림을 보았고 아주 분명한 언약의 문서를 받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받지도 못한 이방인보다 더 악한 행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정치와 사회경제적인 죄악들이 이방인보다 더 악하였습니다.

 

둘째는 에스겔 5:11절입니다. 종교적인 죄악입니다.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으로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혔다고 합니다. 우상을 성전에 가득채운 것은 에스겔 8장에 상세하게 나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겼다는 것은 언약을 배반한 것입니다. 이방 나라도 자기들의 신을 바꾸지 아니하는데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온갖 우상을 그들의 신으로 섬겼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2:10-13절입니다.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 이 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큰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러함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은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인데도 그들의 신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로 인하여 주어지는 저주가 8-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전무후무한 벌을 내리시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아버지를 잡아먹는 벌을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고 합니다. 에스겔이 머리카락과 수염을 불에 사르고 칼로 치고 바람에 날려버리는 것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고 미약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과 기근으로 삼분의 일은 사방에서 칼에 엎드려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사방에 흩어 버리고 그 뒤를 따라가며 칼을 빼리라고 하십니다.

 

황무하게 하고 이방인들 중에서 또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서 모욕 거리가 되게 하며 하나님의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예루살렘에 벌을 내림으로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수치와 조롱거리가 되고 두려움과 경고가 되리라고 합니다. 연이어 멸망하게 하는 기근과 독한 화살을 보내어 기근을 더하여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버린다고 합니다. 기근만이 아니라 사나운 짐승을 보내어 외롭게 하고 전염병과 살육이 일어나게 하고 칼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엄청난 재앙을 내리는 이유는 이방인보다 더 악하였으며 성전에 우상으로 가득채운 죄로 인한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심판의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13절입니다.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히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열심히 말씀하신 것을 그들이 알리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구약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 중에 마르시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2세기경의 사람인데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잔인한 민족신 이기에 믿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김용옥 교수도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율법이나 양심이나 윤리와 도덕적인 잣대로 보면 성경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거룩하신 성령께서 말씀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시면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성경에 모든 악한 죄인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보았던 레위기 26장의 말씀대로 형벌을 즐겁게 받으라는 말씀을 수용하게 됩니다. 비록 고난 가운데 불평과 원망이 나올지라도 이런 말씀 앞에 마주서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옳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런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당하는 조금의 손해, 자존심 상하는 일, 아주 조금의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어떤 반응이 나옵니까? 되로 받은 것을 말로 갚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마치 방금 본 13절의 말씀처럼 나도 능력만 있다면 모든 세상뿐 아니라 신조차 심판하여 버리고는 이제 분이 풀린다고 하고 싶지 않습니까? 이런 마음들이 다들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 먹을 때에 받은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뱀의 유혹이 우리 안에 들어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느 누가 감히 나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할 수 있느냐는 반항심이 있기에 이런 말씀에 아멘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오지만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허물과 죄로 죽은 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 신에게 정성을 바침으로 더 나은 자아상을 구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수요가 있으니 그런 수요에 맞추어주는 공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였다고 다 교회가 아닙니다. 이들이 모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받는 짓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방인보다 더 악한 이스라엘, 이방인들보다 더 자기의 신을 버리는 행위를 지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박윤선 목사님의 에스겔 주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죄로 인하여 난관에 빠져있다. 이때에 우리 자타가 바로 되는 길은, 어떤 물질적 원조를 확보하거나 교세 확장을 위주로 할 것이 아니라, 자체 안의 부패를 시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이 땅의 교회 형편이 어떻습니까? 본질로 돌아갔습니까? 오히려 30년 전보다 세상으로부터 더욱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몇몇 교회와 목사와 교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는 악행을 범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세상에 속하였기에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더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신은 처음부터 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늘 돈을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세상 사람보다 더 돈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하나님께 돈과 힘을 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남은 것은 에스겔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잘라서 불사르고 칼로 치고 바람에 흩어버리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더 악을 행하는데도 멀쩡하다면 더 무서운 심판입니다. 그것은 버려두심입니다. 그러나 실낱같은 소망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오래 참고 계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하기는 주의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께로 돌이켜 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