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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0:1~11 멍에를 꺾어 버리며 2014. 5. 14


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9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1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지난주에 29:11절의 말씀을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는 말씀을 가지고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을 합니까? 지금 당하는 재앙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봅니다. 물론 이 본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이런 재앙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재앙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이기에 바벨론에 항복하여 70년 동안 메라고 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재앙은 2년 정도이며 곧 멍에를 꺾어 버리고 돌아온다는 말을 합니다. 이 두 말에 대하여 사람들은 후자를 선호합니다.


지난주 새벽기도회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에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목회한다는 목사가 이 본문을 말씀하였습니다. 물론 성경 여러 구절을 인용하는 중의 하나였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평안이며 재앙이 아니라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재앙이 오면 그것은 마귀가 주는 것이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목사는 본문과 정 반대로 인용하였습니다. 모든 설교가 사람들이 원하는 소원성취에 맞추어 설교하니 어떤 성경도 사람하기 나름대로 복을 준다는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말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8:10~17절을 보시면 하나냐 선지자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목에 메고 있는 나무 멍에를 꺾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나무 멍에를 꺾었기에 쇠 멍에들을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재앙이 얼마나 큰 재앙입니까? 그런데 이런 재앙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그렇게 재앙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이것을 정 반대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였다고 하시면서 그 하나냐를 그해 죽이셨습니다.


지난주에 본 29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이 차야 돌아올 것이기에 그곳에서 농사도 짓고 집도 짓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라고 하는 편지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선지자 중에 스마야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감독에게 미친 선지자 노릇하는 예레미야를 왜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쇠고랑에 채워서 감금하지 않느냐고 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스마야에게 하신 말씀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돌아올 때에 그의 자손은 하나도 그 돌이켜 주심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부터 보는 본문 30장에서 33장까지는 구원의 소식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70년의 때가 차면 돌이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원은 유다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앗수르에 멸망한 북 이스라엘도 함께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의 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이 어떠한지를 함께 계시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구원의 말씀 단락에 새 언약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옛 언약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감을 통하여 밝히 보여주신 후에 하나님은 새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30:1~2절입니다. “1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는데 이 모든 말씀을 책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책에 기록하라는 것은 그 기록하신 말씀대로 이루어내시겠다는 자기 약속입니다. 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신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가능성도 다 차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도 심판도 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무엇이든지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구원이나 심판조차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장로교 전통을 가진 교회들은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 그 이후에 자기하기 나름대로 복도 받고 하늘의 상도 받는다는 말로 사람들을 독려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여호수아 8:30~35절입니다. “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기록하였습니다. 그 기록된 대로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에서 낭독합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을 받을 일을 하였습니까? 아니면 저주 받을 일을 하였습니까? 저주 받을 일만 했습니다. 단 하나만 어겨도 저주를 받는데 아예 대 놓고 저주 받을 짓만 한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남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되는 일입니다. 즉 책에 기록된 대로 되는 일입니다. 이러한 책이란 모세 오경만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말씀입니다.


시편 139:12~16절입니다.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주님은 흑암과 빛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책에 다 기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책에 기록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완료되었기에 그대로 진행하십니다.


다니엘 12:1절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구원받는 자는 책에 기록이 된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에서도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은 복음에 함께 동역하게 됩니다(빌4:3).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못한 자는 짐승에게 경배하게 됩니다(계13:8). 생명책(단수)에 기록이 된 자는 심판을 받지 않지만 다른 책들(복수) 곧 행위를 따라 기록된 책들에 있는 자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계20:12).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집니다(계 20:15).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갑니다(계21:17). 그러므로 사람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0:35~40절입니다.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의 마시는 잔과 받으시는 세례가 십자가의 저주임을 알지도 못하면서 거저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하는 제자들입니다. 높은 자리 차지하기 위하여 고진감래를 하겠다고 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 잔을 마시고 그 세례를 받는 것은 너희가 한다고 하니 그렇게 해도 되지만 그러나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대로 하면 책에 기록된 사람이 그 좌우편에 앉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행위로 그 책에 기록된 것을 변개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여러분에게 기쁘게 들립니까? 기분 나쁘게 들립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하기 나름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마음먹기대로 행동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육체의 일들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섞어진 것들을 거두지만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그런데 성령을 위하여 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이 임하여야 되는 일입니다. 지금 삼성그룹 회장이 오락가란 하는 모양입니다. 그가 평생에 경제인으로 큰일을 이루었지만 그가 영원히 받을 것은 섞어진 것들뿐입니다. 결국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대로 가게 됩니다.


책에 기록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전의 언약들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계시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책이 있고 글자가 있어도 이것을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보고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만 이러한 책의 말씀들을 이해하고 믿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만약에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면 우리는 모두가 다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원하신 약속대로 그 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시는 것이 성도에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에 그러면 인간은 뭐냐고 하면서 기분이 나쁜 사람은 아직도 자기의 가능성과 자기 행위에 가치를 두고 있기에 그런 반응이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을 들으면 나는 이제 내 마음대로 산다고 나섭니다. 지금까지는 종교적인 거래였기에 내 하기 나름이라는 식의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사람들이 자기하기 나름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책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내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나섭니다만 이런 것도 사실은 성경책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1~2절을 통하여 책에 기록하라는 말씀을 성경전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책에 기록하라는 말씀의 내용이 3절 이하로 계속됩니다. 이 내용은 33장까지 이어지는 말씀이신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이루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계속하여 “내가”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약속을 주시고 그 마지막은 마치 도장을 찍듯이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하였는데도 함께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나라의 왕이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남북으로 나누어지기 전에 세워진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도 이미 죽은 왕입니다. 그러므로 남 유다가 바벨론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자기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여 내실 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구원이 이루어는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그 어느 백성들도 자기들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보여주시는 내용이 5절과 7절입니다.


5~7절입니다.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무서워 떠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사람의 고통 중에 해산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슬프다 그 날이여 라고 합니다. 그와 같이 엄청난 환난의 날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해산의 고통과 같은 엄청난 환난을 다르게 표현한 말씀을 봅니다.


이사야 37:3절입니다.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의 공격 앞에서 히스기야 선지자가 이사야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납니다. 유다를 공격한 앗수르의 군대 18만 5천명이 그 다음날 다 시체가 되었습니다. 왕 혼자 도망가서 자기들의 신전에 제사하다가 그 아들들의 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야곱의 환난 날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방되어 돌아오는 것을 8절에서 그 날에 네가 그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리시며 네 포박을 끊어 버리신다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70년의 때가 차면 돌아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해방의 말씀이 그 멍에를 꺾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애굽에서 430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듯이 이제 바벨론에서 해방을 시키시면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10~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시면서 다시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의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을 함께 부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의 되었듯이 하나님께서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땅에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두렵게 할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함께 있겠다고 하시는 것은 에스겔서에서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그들의 성소가 되신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다 땅에 남아있는 자들에게 성소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메게 하신 멍에를 메고 바벨론에 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돌아오게 하시는데 이스라엘을 흩었던 모든 이방을 멸망시키시고 야곱은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데려 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법에 따라 징계할 것이며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징계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는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 징계가 없는 자는 사생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십니다. 아들이기에 이렇게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증거입니다.


이러한 구원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70년이 되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것도 온전한 구원은 아니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왕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도 재건하였지만 여전히 왕은 없었습니다. 이때로부터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기까지를 신구약 중간시기 또는 침묵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때에 유대인들이 스스로 독립운동을 하여 잠시 외세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은 적도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아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혈과 육으로 세운 나라이기에 곧 다시 외세에 지배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도 역시 그림자입니다. 그러면 참된 구원이 언제 일어나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30~33절입니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리실 왕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1:28~30절입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율법의 짐을 꺾어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자유이며 구원입니다. 이것을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심으로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멍에를 풀어주실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행전 15:7~11절입니다.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베드로와 그 조상들도 능히 메지 못한 율법이라는 멍에입니다. 이 율법이라는 멍에는 심판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멍에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은혜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제 율법의 멍에를 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메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아무른 짐도 안지고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징계에 들어갑니다.


히브리서 12:1~8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이 징계란 이제 율법의 정죄가 아니라 아들로서의 징계입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30:11절을 말씀대로 온 세상을 멸망시키시는 가운데 너 만은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법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도말하셨습니다. 그 법의 멍에를 예수님께서 단번에 영원히 꺾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법으로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징계하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법에 메이는지 모릅니다. 이런 자들을 징계하셔서 율법이나 자기 스스로 만든 법에 메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재앙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닥칠 때에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율법의 정죄가 아니라 이미 그 정죄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는 사랑의 징계임을 아시고 믿음의 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