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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4:1~15:4 거절하시는 하나님 2012. 12. 4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본문 1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면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거절하시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서라도 우리를 버리지 말라고 간구하는데도 하나님께서 거절하십니다. 21절에서도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의 보좌와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하지만 거절합니다. 왜 거절하시는지 그 이유를 보겠습니다.


세상에서의 종교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로 다 통합니다.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그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말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뒤에 불지사가 있는데 현수막의 광고입니다. ‘동지 복밭 불공법회’라는 현수막에 세 가지 덧붙인 내용이 수명장원, 소원성취, 삼재소멸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동지에 팥죽을 쑤어서 집안 곳곳에 뿌려서 악귀를 물리치는 풍습처럼 이제 절에서 법회를 통하여 이런 소원들을 이루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기도회는 절이나 성당이나 교회나 곳곳의 기도한다는 곳이 동일합니다. 그런데 오늘 보는 성경말씀은 금식을 하고 예물을 바치고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언약을 지켜달라고 해도 거절합니다.


1~6절을 봅니다.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6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


유다 땅에 엄청난 가뭄이 왔습니다. 그래서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위에서 애통하니 그 부르짖음이 위로 올라갑니다. 가난한 자들은 직접 물을 길러 가겠지만 부자들은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어오게 합니다. 그러나 어느 우물에 가도 물을 길어올 수가 없기에 빈 물통을 들고 부끄럽게 머리를 가리고 돌아올 수밖에 없을 정도의 극심한 가뭄입니다. 비가 없으니 밭가는 자들도 기가 막혀 한숨만 쉴 뿐입니다. 도시에서는 가뭄에 대한 감각이 무딜 수 있습니다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가뭄에 민감합니다. 가뭄이 심하면 씨를 뿌릴 수도 없습니다. 가뭄이 심하게 되면 사슴이 새끼를 낳아도 내 버리게 됩니다. 들 나귀들도 풀이 없어 승냥이처럼 헐떡거리면서 눈이 아득해 집니다. 이러한 가뭄이 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오게 되었습니까?


레위기 26:18~20절입니다. “18 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19 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꺾고 너희의 하늘을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 20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언약을 어기면 징계를 하시는데 징계 하여도 돌이키지 않으면 징계가 가중됩니다. 그것을 일곱 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철과 같이 되고 땅이 놋과 같이 되어 땅이 산물을 내지 않는 이 정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고와 책망을 받아도 돌이키지 않기에 이러한 극심한 가뭄이 왔습니다.


7~9절입니다.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백성을 대표하여 우리라고 하면서 죄를 고백하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레미야의 이러한 간구에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10~12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예레미야의 간구에 여호와께서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복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은 용서 하여 달라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말을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금식이나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받지 않으시고 그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금식이나 제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것들로 신을 진노를 풀어보려고 하는 것은 이방 종교에 물든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로 인한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슬픔을 토로합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여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게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칼과 기근과 재앙들이 오지 않을 것이며 이곳에서 확실한 평강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눈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보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금식과 번제와 소제와 같은 것으로 확실한 평강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당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 사람이 어떠하든지 간에 복채만 많이 바치면 화를 복으로 바꾸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봅니다.


14~16절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보내지도 않으셨는데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예언하였기에 그러한 예언자와 그러한 예언을 받은 자들과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다 칼과 기근으로 심판을 당할 것이기에 그들을 장사할 자 조차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이러한 거짓 선지자와 같은 자들이 온 땅에 가득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이 속담은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말이기에 성경의 몇 구절들을 뽑아서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런 말들에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물어보지도 않고 아멘하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찬양대 모임에서 이윤복 집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싱가폴에 가서 예수 믿은 지 십년이 되었는데 사람들의 기도와 목사의 설교가 과연 성경에 있는 내용인지 알아보려고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다 읽어보았는데 12일이 걸렸답니다. 성경을 읽어보는 중에 자신의 인생이 성경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답니다. 그리고 목사의 설교가 성경의 내용이 아님을 알고 그렇게 설교하려면 목사하지 말라고 그랬답니다. 그랬더니 목사가 며칠간 교회당에 나오지도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우리가 세상에서 속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하느냐며 어떻게 영혼의 문제가 달렸는데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가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집사는 어려서부터 목사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왔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의 백성들도 평소에 선지자로 여기는 자들에게서 확실한 평강의 말을 들었기에 그렇게 믿었지만 그것이 바로 심판을 받는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와 백성들과 그의 자녀들까지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17~18절입니다. “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망함이라 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읍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알지 못하는 땅으로 두루 다니도다” 심판으로 인하여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며 성읍에는 기근으로 병들었고 선지자나 제사장은 알지 못하는 땅으로 헤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밤낮으로 눈물을 흘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은 선지자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렇게 눈물과 탄식을 합니다. 선지자의 눈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은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께 용서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19~22절입니다.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이 보다 더한 간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주의 이름과 그 보좌의 영광과 그 언약을 인하여 용서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없는데 오직 여호와만 비를 내릴 수 있는 분이기에 주를 앙망한다고 하면서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말씀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이러한 간구에도 하나님은 응답을 거절하십니다.


15:1~4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두 번이나 여호와의 이름과 그 언약을 따라 기도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절하십니다. 심지어 모세와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 섰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진노하셔서 진멸하려고 하실 때에 모세는 몇 번이나 중보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과 그 언약을 내 세우며 기도하고 자신의 목숨조차 내어 놓고 기도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사무엘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도 모세와 사무엘처럼 기도하였는데도 두 번이나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음 주에도 계속하여 보겠습니다만 15:6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그 뜻을 돌이키시기에 지쳤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반역하고 배신하며 돌아섰는지 성경 전체가 증거 하고 있습니다. 범죄 하여 징계가 임할 때에는 살려달라고 간구하고서는 살려주면 다시 범죄 하는 이러한 모습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며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무엇을 잘못 하였을 때에 이것만 용서 하여주시면 앞으로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아직 죄가 무언지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급하면 늘 이런 모습이 나옵니다. 다시는 안 그렇게 하겠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용서 받았지만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가는 것입니다. 고무줄 잡아 당겼다가 놓아버리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그러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과 칼과 기근과 포로라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멸한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심판이 마땅한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만 한 번 더 정리해 봅니다. 10절에서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13~14절을 보시면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15:4절에서 므낫세의 악으로 인한 것입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여 생명연장을 15년이 받고 나서 낳은 자식입니다. 므낫세의 악이 얼마나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채웠는지 그의 손자 요시야가 엄청난 개혁을 하여도 그 죄를 만회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는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아무리 간구하여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고 나서 다시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거절하시고 다시 살려주심을 통하여 인간에게서는 일체의 가능성이 없음을 보여주시면서 자기 백성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방적은 은혜로만 구원시키심을 보여주십니다.


마가복음 15:33~38절입니다.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부르짖는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면 어떤 인간도 구원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간구를 거절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자기 이름과 언약을 인하여 바벨론에서 돌이켜 주십니다. 그렇게 돌이켜 주시는 것을 에스겔서에서는 마른 뼈다귀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마른 뼈다귀들에게 말씀과 생기를 대언하자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에 의하여 버려짐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분을 죄로 삼아버리신 아버지께 아무리 처절하게 부르짖어도 죄인은 그렇게 버려짐을 당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처절한 부르짖음에 아버지께서 거절하시는 것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길입니다. 그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 것입니다. 이 휘장이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합니다(히10:20).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절 속에 있는 구원의 역설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기도에 다 응답하셨다면 우리는 심판의 자리로 갈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간구하는 것을 거절하시고 아버지께서 그 아들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넘겨주시는 것이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뜨여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