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예레미야 5:7~19 말씀이 불이 되어 2013. 7. 3

 

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 지르는 도다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10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무너뜨리되 다 무너뜨리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 버리라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내게 심히 반역하였느니라 12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아니하니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13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14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 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집이여 보라 내가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민족이라 그 나라 말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6 그 화살 통은 열린 무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17 그들이 네 자녀들이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 떼와 소 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믿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1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하지는 아니하리라 19 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느냐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라

 

지난주에 본 말씀에서 예루살렘 거리에 한 사람이라도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찾으며 그 성을 용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없었기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들의 상태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여도 거짓 맹세를 하였습니다. 매를 들어도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셔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백성들만이 아니라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자와 이리와 표범이 나와서 그들을 찢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들의 허물이 크고 반역이 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7~9절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의 죄악들을 계속하여 말씀하시면서 이러하기에 7절에서 어찌 용서 할 수가 있느냐고 하시고 9절에서는 어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수사 의문문을 세 번이나 사용하면서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는데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입니다. 배가 고플 때는 배만 부르면 소원이 없다고 하는 자들도 막상 배가 부르면 다른 생각이 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육신의 정욕이며 안목의 정욕입니다.

 

호세아 4:6~7절입니다.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 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북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빼내어 가나안에 심으신 것은 여호와의 언약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대로 가나안에 심으시고 그들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번성할수록 범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신답니다.

 

우리의 현실도 봅시다.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이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은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총회의 결정으로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배시간에 동방요배(東方遙拜)를 한 우상숭배로 인하여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회개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번성이 과연 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할수록 더욱 범죄 하는 것처럼 이 나라도 번성할수록 죄악이 더 크게 일어남을 우리의 눈으로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번영을 원합니다. 배고플 때는 배만 채워지면 소원이 없다고 하던 자들이 배가 채워지면 보암직한 것들과 세상의 영광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스라엘과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어찌 벌하지 않으시고 보복하지 않겠습니까!

 

10~11절입니다.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무너뜨리되 다 무너뜨리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 버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성벽이란 히브리어로 포도나무입니다. 그러므로 남 유다를 포도나무로 보고 그 가지만 꺾어버리라고 하시는 것은 심판을 행하시되 진멸하지 아니하시고 아직 남겨두시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남겨둠을 입는 자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그곳에서 70년을 지낸 후에 돌아오는 자들이 남은 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 남은자만 남기시기 위하여 꺾어지는 가지들이 있는데 이것은 여호와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심판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여호와께 심히 반역하였기 때문입니다.

 

12~13절입니다. 여호와의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꺾어버리라고 한 자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앙을 내리는 그런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시면서 어떻게 지옥을 만들어 놓고 자기를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보내느냐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지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위협용으로 착하고 바르게 살라고 한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믿는 자들은 속은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인본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人本主義)란 말 그대로 사람이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게티스 버그에서 한 유명한 연설에서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정부는 이 세상이 있을 동안 영원할 것이라는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세우는 새로운 자유의 나라로 탄생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이런 나라가 하나님께서 원하는 나라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이런 말씀의 근거를 찾으라고 하신다면 골로새서 입니다.

 

골로새서 1:16~18절입니다.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세상은 인본주의를 말하여도 교회는 그리스도중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마저 인본주의로 물이 들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멸망한 북 이스라엘의 모습이며 멸망하기 직전의 남 유다의 모습입니다.

 

다시 본문 12~13절을 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내리고 칼과 기근을 내리는 그런 여호와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하는 선지자들은 바람이라고 합니다. 칼과 기근과 재앙을 말하는 선지자가 참 선지자인데 이런 선지자의 말이 잠시 불다가 사라져 버리는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바람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는 말입니다. 한 단어로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하고 바람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으로 인하여 주시는 선지자의 말씀을 그저 지나가는 바람으로 여긴 것입니다. 참된 선지자를 향하여 말씀이 그들의 속에 없기에 그들이 재앙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와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저에게 어떤 분의 메일이 왔습니다. 자기 가정의 다른 사람들은 다들 대형교회에 아주 충성된 사람들로 목사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들인데 자기 혼자 조그마한 교회에 다닌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식구들에게 말하기를 신앙의 모습이 너무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 말에 아무도 동의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아주 작은 교회 나가는 이 사람이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면 그 가족들도 무시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직 답장은 보내지 않았는데 지금 이 본문의 상황을 보시면 답이 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참된 선지자의 말은 바람이라고 하면서 재앙과 칼과 기근을 말하는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본문 14절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왜 ‘그러므로’라고 시작합니까? 바로 앞의 말을 받고 있습니다. 남 유다의 백성들이 예레미야가 전하는 그런 하나님은 없다고 예레미야의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 바람이라고 하면서 그런 재앙은 예레미야 너나 당해라고 한 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이 말을 하였은즉’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신다고 합니다. 재앙과 칼과 기근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의 입에 있는 말이 여호와의 말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그 말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불이 되게 하고 유다 백성은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른다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불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책망의 말씀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책망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용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회개는커녕 그런 하나님은 없다고 하면서 참된 선지자의 말을 바람이라고 배척하는 그들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이 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시기도 하시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사는 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들이지만 회개하기는커녕 그런 말씀을 전하는 자를 배척하는 자는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가 조건처럼 들리겠지만 조건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과 책망의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여호와의 택한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66:1~4절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돌보시는 자와 심판받는 자가 어떤 자인이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 유다의 현실도 보시가 바랍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유는 아직 그들에게 제사장들이 있고 성전이 있고 제사가 드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지도자들이 예레미야의 말이 틀렸고 자기들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거짓 평안과 복을 빌어주는 그 말들에 속은 것입니다.

 

본문 15~17절입니다. 예레미야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불이 되게 하시고 유다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셔서 불사르시는 모습을 말씀합니다. 한 나라를 먼 곳에서 오게 하시는데 강하고 오래 된 민족입니다. 그 나라 말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6.25전쟁 때에 중국 사람과 소련 사람들이 이 땅으로 들어왔을 때에 이 땅의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그들이 알지 못하는 방언을 쓰는 자들이 공격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들의 화살 통은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열린 무덤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다 용사가 되어 그들이 먹고 살고 의지하는 자녀와 양식과 소떼와 양떼와 과일나무와 그들이 믿는 견고한 성읍까지 다 파멸하여 버립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였을 때에 그들이 믿던 것들을 끊어버리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이시기도 하시지만 남은 자를 주께로 돌이키시기 위한 것입니다.

 

18절에서 그 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하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 남은 자를 남기시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여호와를 의지 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찬송가 488장에서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고 합니다. 세상이 모두 어렵고 힘들다고 합니다. 언제 안 힘든 적이 있었나요? 흔들리는 세상에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을 붙들지 마시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주의 약속 붙드는 것이 은혜입니다.

 

19절입니다. 여호와의 치심을 그들이 의아해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느냐고 합니다. 자기들의 죄를 모릅니다. 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을 섬겼기에 이와 같이 너희의 땅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섬기며 무엇을 믿고 살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불입니다. 그 불에 태워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