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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2:1~30 유다의 멸망 이유 2014. 3. 5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5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 7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8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 됨인고 하겠고 9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


며칠 전에 부국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을 잠시 봤습니다. 멕시코가 땅이 넓고 천연자원도 많은 나라이지만 부강한 나라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부패를 말하였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부를 독점하고 있기에 경제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여 가난한 나라가 되며 빈부의 차이가 많다는 내용을 세계적인 대학의 교수들이 진단하였습니다. 부국의 될 조건이 되지만 부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들을 진단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세상의 나라들도 권력자들이 부패하면 나라가 약해지고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유다는 어떨까요?


22:1~9절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선언하라고 합니다. 유다 왕가를 중심으로 선언하라고 하시지만 그 메시지를 들어야 할 사람은 왕가의 사람만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들도 함께 들어야 합니다. 그 선언의 내용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고 합니다.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몇 가지로 말씀합니다.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수많은 율법을 주셨지만 여기에 거론된 몇 가지의 내용이 전체적인 율법 순종의 여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아브라함 요슈아 헤셀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 대하여 한 사람의 억울한 희생을 당한 것을 보고 온 인류가 멸망한 것처럼 고함을 지른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뉴스가 되는 일들은 권력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반면에 아주 약하고 보잘것없는 자들의 억울한 일은 언제나 묻혀버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약한 자들이 탈취당하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압제와 학대를 당하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공의란 히브리어로 ‘미쉬팟’과 ‘체다카’입니다. ‘미쉬팟’은 정의, 법, 공의, 율례, 판결, 재판 등으로 사용됩니다. ‘체다카’는 의, 의로움, 공의, 권리, 정의 등으로 사용됩니다. 시편 89:14절입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의와 공의가 주님의 보좌의 기초입니다. 또한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유다의 왕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정의와 공의와 인자와 진실함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의 지혜와 용맹과 부함이 아니라 명철하여 여호와를 아는 것과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고 합니다(렘9:23,24). 여호와께서 이런 것을 원하는 줄 알고 그대로 순종한다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성을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준행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자신을 두고 맹세하여 이 집을 황폐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보다 더 높으신 분이 없기에 자기로 맹세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맹세는 최종적인 맹세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집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버리면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 같은 유다를 반드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으로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궁을 백향목으로 건축하였습니다. 이런 왕궁에 여호와께서 파멸할 자를 보내셔서 백향목을 찍어서 불에 던져버리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멸망하게 되었을 때에 지나가던 여러 민족들이 여호와께서 이 성읍에 왜 이렇게 행하셨는가 하면서 그들이 답하기를 이는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방의 민족들이 유다의 멸망 이유를 알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의 멸망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께로 돌이키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이 멸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 결과가 정의와 공의가 사라진 것입니다. 권력자들이 부패하여 자기들의 사리사욕만 채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버린 결과는 세상의 나라들과 똑 같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가 시행되지 않음으로 탈취와 압박이 일어나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학대를 당하며 이러한 것을 고발하는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멸망합니다.


10~12절입니다.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11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2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요시야 왕이 엄청난 종교개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 느고와 전투하다가 죽게 됩니다. 그 아들 살룸이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으로 왕위를 이었지만 석 달 만에 느고에 의하여 폐위되고 애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요시야를 위하여 울지말고 살룸을 위하여 울라는 말은 그가 사로잡혀가서 그곳에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이 함께 선포되는 것은 지금 유다의 멸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3~19절입니다.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애굽왕 느고는 살룸이라는 여호아하스 대신이 그의 형제 엘리아김을 임금으로 삼고 이름을 여호야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여호야김이 행한 일은 불의와 부정을 행하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짓만 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큰 집과 누각을 짓고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이웃을 고용하고서는 품삯을 주지 않습니다. 그 두 눈과 마음이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의 아버지 요시야는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 여호야김은 이렇게 하다가 결국 백성들의 통곡도 없이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져서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 요시야는 여호와를 알았다고 합니다.


15~16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5 네가 남보다 백향목을 더 많이 써서, 집짓기를 경쟁한다고 해서, 네가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았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다. 16 그는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면서, 잘 살지 않았느냐? 바로 이것이 나를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주의 말이다” 여호야김의 아버지 요시야도 먹고 마시면서 살았지만 그는 법과 정의를 실천하고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 처리해 주었기에 잘 살았다고 하면서 이것이 여호와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호야김은 자기의 왕궁과 누각을 멋있게 잘 지음으로 자신이 능력 있는 왕임을 과시하라고 한다는 책망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의이며 그 앞에는 인자와 진실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라면 자기의 업적을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을 따라 백성을 잘 돌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나라의 왕들과 같이 되어버렸기에 이런 나라는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6월 지자체 선거로 인하여 벌써 온 나라가 선거뉴스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후보자들 마다 자기가 힘 있는 후보라서 대단한 업적을 만들어 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업적들로 인하여 오히려 국민들에게 세금이나 가중시키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아무른 업적을 남기지 않고 정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을 돌보는 그런 사람은 당선 되지도 않는 실정입니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교계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백억 수천억의 성전을 짓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곳을 성전이 아니라 바알의 신전이라고 봅니다. 인간의 탐욕이 없이 그러한 업적들이 나올까요? 추진하는 사람이나 그런 일에 동조하는 사람이나 간에 보암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여호야김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다가 멸망한 이유가 이렇게 분명하게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땅의 교회라는 곳도 이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14절을 다시 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고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말이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모든 우상숭배란 곧 자기를 위한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어떤 형상도 만들이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한 교회, 나를 위한 하나님, 나를 위한 예수님, 나를 위한 전도와 선교와 봉사라는 것들이 다 우상입니다. 우주만물과 우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자기 이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언약을 버린 모습입니다. 이로 인하여 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의 멸망을 소리쳐 외치라고 합니다.


20~21절입니다. “20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라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레바논은 갈릴리 호수 북쪽의 높은 산입니다. 바산은 갈릴리 호수 북동쪽의 산입니다. 아바림은 사해 바다 동편의 높은 산입니다. 이곳의 가장 높은 곳이 느보산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산에 올라가서 외치라는 것은 예루살렘이 다 듣도록 외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다는 소식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한 자란 예루살렘과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들을 말합니다. 이런 나라가 망함으로 이제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유다 왕이나 유다의 백성들도 예루살렘을 사랑하기에 이들도 다 멸망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21절입니다. 예루살렘이 평안할 때에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씀을 하는데도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라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습관이라는 말씀은 노아 홍수 전후에 나온 말씀입니다. 홍수전에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였는데(창6:5) 홍수 후에는 어려서부터라는 말이 추가 됩니다(창8:21). 모든 인간이 이러함을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율법으로 여실히 증명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들리는 사람이라면 성령이 역사하시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이 여호야김처럼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는 것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의 질문에 제가 메일로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천국이라는 곳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시면 그곳은 지옥이며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지옥이라는 곳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곳이 천국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자기중심적인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2~23절입니다. “ 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2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여호와의 정의와 공의를 버리고,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며, 어려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기에 이들이 다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목자들이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며 사로잡혀 가며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들이란 자기를 위하여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그 치부한 것으로 사치와 연락을 즐기면서 사는 여인의 해산의 고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멸망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24~27절입니다.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2)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25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26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 27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28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하고 깨진 그릇이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의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3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삶으로 맹세합니다. 그 맹세로 이루실 일은 고니야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고니야란 여고냐(대상3:16)라고도 하고 여호야긴(왕하24:6)이라고도 합니다. 여호야긴이 여호와의 손의 인장반지라고 할지라도 빼어서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여호야긴만이 아니라 그의 어미도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 죽을 것이기에 그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애가가 나옵니다. 고니야가 천하고 깨어진 그릇모양이 되었기에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에 형통하지 못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멸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됩니까? 다윗에게 영원한 왕위를 주신다는 그 언약의 말씀은 어떻게 됩니까? 사람은 신실하지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 왕들의 결국을 다 보여주시고 그 왕들을 끊어버리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 인간의 행위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99세에 할례를 행하고 언약의 자식인 이삭을 낳은 것처럼 이스라엘의 혈통적인 왕위가 완전히 끊어지기 하시고 다시 왕을 세워주십니다. 이렇게 될 때에라야 여호와의 언약은 사람이 받아서는 망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을 구약에서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0~33절입니다. “1: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이 영원한 왕과 연결되는 자들이란 언약을 버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습관처럼 듣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십자가로 단절 당하고 그리스도께 연결됩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