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8:1~25   모압에 관하여(1)    2014. 13. 10

7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 다루셔도 되실 텐데 왜 주변의 수많은 나라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만으로도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실 수 있으실 텐데 왜 복잡하게 주변의 나라들과의 상관관계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원래 죄란 하나입니다. 사탄의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버린 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근원적인 죄입니다. 이 죄로 인하여 온갖 죄의 증세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주변의 나라들을 통하여 죄가 어떠한지 보여주십니다. 

이런 글을 봤습니다. “1952년,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고든 엑스너는  자신의  가장 유명했던 논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 지구상에 사람들이 60억 명이 있다면 그들의 심리상태와 기질, 성격은 전부 달라서, 60억 가지의 심리와 성격, 기질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특별하다." 하지만 고든 엑스너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논문에서 그는 말을 바꿔 이렇게 끝맺었다. "그건 사실, 한사람에 대한 60억 가지의 표현일 뿐이다."” 

이 글에 대한 저의 느낌입니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심화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온갖 죄들이 나타나고 온갖 이상한 짓을 해도 그 사람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심리학자는 60억 인구의 심리상태와 성격과 기질이 다 다르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는 이 모든 것들은 한 사람에 대한 60억 가지의 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예루살렘과 함께 주변의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내용들을 통하여 여러 나라의 여러 모양의 죄가 아니라 단 한 나라 또는 단 한 사람의 죄의 모습이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판단하고 정죄하는 세상의 모든 죄의 증세들은 내가 그 상황에 몰리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죄의 증상들이 자기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께서 말씀으로 역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1 모압에 관한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오호라 느보여 그가 유린당하였도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 2 모압의 찬송 소리가 없어졌도다 헤스본에서 무리가 그를 해하려고 악을 도모하고 이르기를 와서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 하는도다 맛멘이여 너도 조용하게 되리니 칼이 너를 뒤쫓아 가리라 3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폐와 큰 파멸이로다 4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어린이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도다 5 그들이 루힛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울고 호로나임 내리막 길에서 파멸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듣는도다 6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

오늘 본문의 모압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아서 두 번에 나누어 봅니다. 이 모압과 암몬은 롯과 두 딸 사이에서 나온 민족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진노의 불로 심판당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이들을 천사의 손으로 이끌어 냅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고 살아남은 아버지와 두 딸이 소알성으로 갔다가 다시 산으로 피하여 들어갔습니다. 산에서 살면서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여 얻은 자식들이 두 민족이 되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사해바다 동쪽에 살고 있는 민족이 모압족속이고 그 위쪽으로 요단강 동쪽에 암몬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본 본문의 여러 지역 이름은 모압 족속들이 살고 있는 성읍들의 이름입니다. 암몬 지역 전체가 유린당하고 수치를 당하여 점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찬송의 소리가 없어지고 부르짖는 소리만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울부짖는 소리만 가득한 곳에서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파멸이 심하게 일어날 것이기에 도망하여 겨우 살아남아도 노간주나무 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전에 번역에서는 광야의 떨기나무 같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서 도망을 가도 광야의 메마른 나무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모압에 대한 이러한 심판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런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기에 언약을 어기면 심판을 받지만 이런 나라는 언약의 백성이 아닌데도 심판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블레셋에 관한 말씀을 볼 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한 이유를 이스라엘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온 세상이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7~9절입니다. “7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 8 파멸하는 자가 각 성읍에 이를 것인즉 한 성읍도 면하지 못할 것이며 골짜기가 멸망하였으며 평지는 파멸되어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로다 9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기에 사는 자가 없으리로다” 

모압이 심판을 받는 이유를 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함으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신으로 섬긴 그모스가 제사장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한다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모든 인생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들이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 물을 저축하여 살려고 하지만 그 웅덩이가 터진 웅덩이라서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살리지도 못할 땅의 업적과 보물을 쌓다가 영원히 땅과 함께 심판을 받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

여기서 업적이란 새 번역에서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들이 다 자기 업적으로 쌓이는 것입니다. 회사나 교회나 업적주의로 나가야 열심을 내고 성과도 냅니다. 그런데 가정도 업적주의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공부를 잘해야 하고 취업을 잘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어떤 아이가 수능을 망치고는 부모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남편도 돈을 잘 벌어주어야 인정을 받습니다. 이렇게 업적을 쌓으려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여 그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러한 업적의 결과물을 보물로 여깁니다. 이런 보물을 의뢰한다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모스이든 바알과 아세라이든 말로는 하나님을 부르든 간에 그것이 업적을 따른 보상으로 보물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모두 가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지금 이 모양으로 가는 것은 전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 이 말씀을 앞뒤 자르고 절반만 잘라서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같은 연말이나 특히 송구영신 때에 사용하기 좋은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지난해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복을 받았습니까? 저주를 받았습니까?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은 이유는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호와의 일을 열심히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한다는 말은 자기 업적과 보물을 의지하는 자들을 심판하는데 그 심판의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않는 자가 저주를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업적주의를 독려하여 자기 보물을 쌓으라고 하는 자들을 심판해야 하는데 그런 자들을 심판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땅의 교회의 현실은 어떤 모습인지 자명하여 집니다. 업적을 독려하여 땅의 보물도 하늘의 보물로 쌓으라고 하는 것이 바로 저주 아래 들어가는 모습니다. 자기 업적을 보물로 삼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말씀의 검을 휘둘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다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어제 오후에 제가 아는 분이 교회에 들렸습니다. 그분이 출석하는 교회가 세이레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는데 기도회 주간에 특별헌금을 한다고 합니다. 그 헌금은 전액 구제헌금으로 한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1~2만원으로 하나님과 딜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답니다. 저는 처음에 그런 복음적인 말씀을 하셨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아니라 금액을 높이라는 말이었답니다.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는데 내가 구제헌금을 1~2만원 내 놓고 복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하였답니다. 이것이 바로 업적주의로 보물을 쌓아두는 모압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11~13절입니다. “11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술을 옮겨 담는 사람을 보낼 것이라 그들이 기울여서 그 그릇을 비게 하고 그 병들을 부수리니 13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로다”  

모압은 지정학적으로 평안할 수 있습니다. 서쪽 사해 바다를 국경으로 하고 있고 북쪽은 동족인 암몬이 있고 동쪽과 남쪽은 아라비아 사막지역입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이란 민족의 초창기부터 평안하고 포로로 잡혀 가지도 않았기에 마치 술을 담아서 그대로 있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모압이 담아둔 포도주처럼 안전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압의 심판을 포도주를 걸러서 다른 그릇에 담는 것처럼 말합니다. 술을 옮겨 담고 그 병들도 부수어 버린다는 것은 모압을 포로로 끌어가고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함으로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에 집이 벧엘을 의뢰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솔로몬 사후에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집니다. 북쪽의 열지파가 유다지파 지역에 있는 성전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고 단과 벧엘에 신전을 짓고 금송아지를 안치하여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다가 앗수르에 망했습니다. 이처럼 지금 모압도 그모스를 섬기다가 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만 우상숭배로 심판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들도 우상으로 인하여 심판을 당합니다. 

작년에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 회장이 한국의 최고 경영자 조찬회에서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의 강의는 계속하여 성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 기업이 교만하여 자족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사망한 것이라고 하면서 계속하여 성장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보면 업적주의로 나가서 보물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공이라고 아침부터 한국의 최고 경영자들 850여명이 모여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마치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처럼 계속하여 성장과 업적을 위하여 쌓아가는 세상의 끝이 어디로 갈지는 자명합니다. 그 끝은 결국 멸망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회장도 그 말을 듣고 열심히 따라가는 자들도 멸망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업적과 보물을 쌓아가고 있는 자들은 어떻게 자신을 평가할까요?

14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 하느냐” 우리는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용사와 능란한 전사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방금 예를 든 이런 회장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에디슨이 세운 회사로 129년 동안 망하지 않고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이런 회사는 이 시대의 용사이며 능란한 전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용사와 능란한 전사가 되어 사업을 확장하고 수익을 더욱 많이 창출합니다. 이것을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길이 멸망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이를 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이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가 됩니다. 

15~17절입니다. “15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모압이 황폐하였도다 그 성읍들은 사라졌고 그 선택 받은 장정들은 내려가서 죽임을 당하니 16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 그 고난이 속히 닥치리로다 17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암이 황폐하였다고 합니다. 만군(萬軍)의 여호와는 용사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모압을 치시는데 그 성읍들이 사라지고 선택 받은 장정들이 내려가서 죽임을 당합니다.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 그 고난이 속히 올 것입니다. 그러면 사면의 사람들 곧 그 이름을 아는 자들이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위로이기 보다는 조롱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결론은 예레미야 51장의 바벨론의 멸망과 요한계시록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18~20절입니다. “18 디본에 사는 딸아 네 영화에서 내려와 메마른 데 앉으라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너를 쳐서 네 요새를 깨뜨렸음이로다 19 아로엘에 사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을지어다 20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폐하였다 할지어다” 요새에 사는 자들도 도망을 합니다. 그러므로 도망하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라고 합니다. 모압이 폐하여 수치를 받는다고 하면서 울고 부르짖으며 모압이 황폐하였다고 할지라고 합니다. 

21~25절입니다. “21 심판이 평지에 이르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22 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23 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 24 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읍에로다 25 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요새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평지도 심판을 받습니다. 여러 이름들은 모압의 여러 성읍들입니다. 모압의 원근 모든 성읍에 심판이 임하게 됨으로 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다고 합니다. 그 뿔이란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권세도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팔은 자신의 업적을 쌓기 위한 팔입니다. 그런데 그 팔이 부러짐으로 어떤 업적도 이루어낼 수가 없도록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어떠한지를 점검해 보시기바랍니다. 찬송가 가사에 세상에 믿든 모든 것 무너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그 소망 더욱 크리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사실도 아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불에 태워 사라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세상의 심판 소식이 두려운 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그 끝을 아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성도란 종말의 영인 성령이 임한 자들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종말에 성령이 부어진다고 예언하였습니다. 그 종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하여 성령이 부어진 자들이 종말론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이미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것이 종말입니다. 

예레미야 51:41~46절입니다. “41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 42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 43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으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도다 44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45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 46 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 그 땅에는 강포함이 있어 다스리는 자가 다스리는 자를 서로 치리라”  

예루살렘, 애굽,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다메섹, 아라비아, 엘람, 바벨론이 이 말씀대로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멸망 받은 나라의 정신으로 살면 멸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와서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두려운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나약하게 하지 말고 이 땅의 소문들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소문은 올해도 있고 내년에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온갖 소문이 나겠지만 이미 십자가로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들은 세상의 그 어떤 소식으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6: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