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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1~8 울 때와 웃을 때 2018. 12. 12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지난주에 같은 본문으로 날 때와 죽을 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날 때와 죽을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뿐 아니라 범사의 모든 기한과 천하만사의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때를 알려고 합니다. 그런 때를 만약 오 분 전에만 안다고 하여도 온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오늘이 1212일입니다. 19791026일 대통령 시해사건, 19791212일 군사반란, 1980517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때를 오 분 전에만 알아도 다른 일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역사의 때를 잘 모르기에 그 때를 알려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1997년 국가부도의 날이라든지 오늘 예를 든 사건들의 때를 미리 안다면 세상의 모든 힘과 권력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힘과 권력을 가지려고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때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기는 구별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알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일기를 구별하는 이유는 농사를 짓든지 고기를 잡든지 날씨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은 모든 때와 기한을 정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그 분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때가 있습니다. 나무를 심으면 자라서 열매 맺기까지 기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는 사람들이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학습하고 예측하여 심고 거두어들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우리 삶의 지혜를 준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곳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5:39). 그러므로 전도서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지 봐야 합니다.

 

지난주에 2절에서 날 때와 죽을 때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우리는 날 때와 죽을 때를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날 때와 죽으실 때를 아신 것을 성경을 통하여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와 때에 매이시는 분이 아니라 시와 때를 창조하시고 결정하시는 분이심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2절의 심을 때와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는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오늘은 심을 때와 뽑을 때, 헐 때와 세울 때, 울 때와 웃을 때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 5:1~7절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유다 사람이 포도나무라고 합니다. 시편 80:8절도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심으신 것은 정의와 공의를 바라셨는데 오히려 포학이 가득하였다고 합니다. 긍휼은 사라지고 고아 과부 나그네를 학대한 것입니다. 이사야 5:8절입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음으로 뽑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울타리와 담을 헐어버림으로 짐승들이 와서 헤치듯이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 유다에 바베론에 멸망한 것입니다. 이것이 심으신 것을 뽑아버리는 말씀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으셨지만 좋지 않은 열매를 맺음으로 뽑아버리십니다. 그러나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뽑고 나서 다시 심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죽일 때가 있으며 치료할 때가 있고 헐 때가 있으며 세울 때가 있다는 말씀으로 연결이 됩니다. 예레미야 1:10절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뽑고 나서 심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나서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데 그렇게 돌아오는 자들은 자기를 의지할 수 없어 주님의 약속만 의지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니 곧 말라버렸습니다(21:19). 이것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여 믿지 않는 자들이 저주를 받는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으신 나무는 예수님을 알고 믿는 자들인데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 자들이나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나무가 아닌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5:13).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이들이 뽑힙니다.

 

본문 3절의 헐 때와 세울 때를 봅니다. 집이 오래되면 헐고 새로 짓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도 재건축한다고 요란합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금 하는 것은 손해가 온다면서 반대합니다. 헐고 짓는 일들을 통하여 이들은 자신의 재산상의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 합니다. 그러니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서로 적대감이 형성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예배당도 헐고 세웁니다. 이러한 헐고 세우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무엇을 헐고 세우시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2:19~22절입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내쫓았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 없으셨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무슨 표적을 보여주겠느냐고 할 때에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자신이 삼일 만에 짓겠다고 합니다. 성전을 헐어버리는 자라는 죄목으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후에 이 말씀이 예수님의 몸이 성전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헐 때와 세울 때가 있다는 것도 단지 세상의 건물 허물고 새로 짓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허물고 세우시는 예수님의 일하심으로 인하여 성도된 자들은 영원하지 않을 것들이 우리의 생애에서 허물어지고 영원한 것이 우리 안에 세워집니다. 이것이 허물 때와 세울 때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말씀도 우리는 늘 우리를 중심으로 울 때보다는 웃을 때가 좋다고 여깁니다. 슬퍼할 때 보다 춤출 때가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람다움은 울고 슬퍼할 때에 깊어지는 것을 세상의 사람들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언제 울고 웃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내용은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그런데 웃으셨다는 내용은 없고 기뻐하셨다는 곳은 한번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신 것은 누가복음 19:41~44절입니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시고 우십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성전과 제사와 제사장과 율법의 의를 믿고 안심하고 있기에 예수님께서 우십니다.

 

요한복음 11:32:37절입니다.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이신데도 그 사랑받던 마리다와 마리아도 오빠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좀 빨리 오셨더라면 우리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사로가 죽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생명과 부활안에 있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울고 있는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우신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 매어 있는 자들을 보고 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물을 보시고 사람들마다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히브리서 5:7~10절입니다.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언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까?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골짜기 이름은 겟세마네입니다. 겟세마네는 기름을 짜는 도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기름 짜듯이 기도한 것입니다. 땀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나가게 하여 달라는 기도인줄 알았는데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길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눈물이 세 번 나옵니다. 이러한 눈물을 흘리심은 주님의 한없는 긍휼과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0:17~20절입니다.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칠십 인의 제자들이 복음 전함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면서 예수님께 보고할 때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21~23절입니다.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이것이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면 세 번이나 우셨는데 한 번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꼭 숫자로 환산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많이 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뻐하신 것은 복음이 증거 되고 귀신이 항복하는 것은 이미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세상의 신은 사탄이 멸망한 것을 모르게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아들을 통하여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예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고 자기 백성을 다 찾게 되시면 영원한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2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예수님께서 영원한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심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않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6:21절입니다.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산상수훈의 내용입니다. 지금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런 자가 웃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세 번의 우심과 한 번의 기쁨을 통하여 히브리서까지 와 보니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참으시고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것은 그 앞에 있는 기쁨,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있는 그 기쁨을 바라보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눈물을 더 많이 흘립니다.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 때에 죄인을 향하여 오래 참으신 주님을 생각하라고 한 것입니다(12:3). 이러한 계시를 받은 바울을 봅니다.

 

고린도전서 7:29~35절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모든 때를 정하시는 분의 영이 임한 자가 때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본문 5~8절입니다. “봉독 이 모든 때들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편 118편의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말씀과, 예레미야 31장의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말씀과,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자를 찾는 말씀만이 아니라 다른 구절도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모든 때를 이루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주에 이 때들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의 뜻을 자기의 때에 이루려고 하는 자들이 아니라 나의 뜻과 나의 때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알고 잠잠히 그리스도의 때를 바라보면서 사는 자가 성도입니다.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이 역사 속에서 주님의 때가 이루어지는 자들은 예수님처럼 환난을 당하고 많은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오늘 찬송 가사처럼 눈물골짜기 더듬으면서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영원한 기쁨의 영광을 알고 믿기에 오늘도 주님의 때를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