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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2:1~8 창조주를 기억하라! 2019. 10. 2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 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 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본문 1절의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는 말씀은 청년회 수련회 주제로도 자주 사용합니다. 지금 방송실이 있는 저곳이 약 10년 전에 서재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의 공간이 마련되어 서재를 옮기면서 청년회실로 함께 사용하라고 하였더니 청년들이 페인트도 칠하고 장식도 하였는데 그 때 벽에 붙인 성경구절이 오늘 본문 1절입니다. 그런데 청년 때에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여도 결혼하고 나면 창조주보다 남편과 아이와 자기 가정이 우선입니다. 그뿐 아니라 청년은 곤고한 날, 아무른 낙이 없다고 하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청년 때에 아무리 바빠도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 피조물의 근본자세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이후로 인간들은 자신들이 피조물이 아니라 마치 창조주나 된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피조물이 심지어 창조주조차 자기를 기쁘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자고 하며, 어떻게 주를 기쁘시게 할까 생각을 하였지만 결혼하고 나면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기쁘게 할까를 생각합니다(고전:33~34).

 

본문 1~2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라.” 사람은 다 늙어갑니다. 그래서 사는 게 아무른 낙이 없다고 할 때가 다 옵니다. 젊을 때는 해의 빛과 달과 별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즐거워하였을지라도 늙고 힘이 없고 몸이 괴로우면 다 귀찮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곤고하고 아무른 낙이 없다고 할 때가 오기 전에 너는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3~6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3 그 때가 되면, 너를 보호하는 팔이 떨리고, 정정하던 두 다리가 약해지고, 이는 빠져서 씹지도 못하고, 눈은 침침해져서 보는 것마저 힘겹고, 4 귀는 먹어 바깥에서 나는 소리도 못 듣고, 맷돌질 소리도 희미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5 높은 곳에는 무서워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넘어질세라 걷는 것마저도 무서워질 것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고, 원기가 떨어져서 보약을 먹어도 효력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영원히 쉴 곳으로 가는 날, 길거리에는 조객들이 오간다.”

 

개역성경은 히브리어 단어의 뜻을 따라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새 번역은 인생의 곤고한 날, 곧 아무른 낙이 없다고 하는 그 늙음의 상태를 드러내기 위하여 의역을 한 것입니다. 늙으면 팔의 힘이 약하여 집니다. 두 다리도 약해지고, 맷돌을 이빨로 번역하여 늙으면 이가 빠져서 잘 씹지도 못합니다. 창은 눈으로 번역하여 보는 것들이 다 침침해 집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머리는 희어집니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도 잠을 깹니다. 원기가 떨어져서 보약을 먹어도 효력이 없습니다. 사람이 영원히 쉴 곳으로 가는 날, 길거리에는 조객들이 오고 간다고 합니다. 내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조문을 갔는데 이제 사람들이 나를 조문 오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이 이 길을 막을 수가 있습니까? 누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이 말씀을 막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창조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들이 늙고 죽어 감을 온 힘으로 저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온갖 건강식품이나 화장품이나 약들을 선전할 때에 젊음을 유지하여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늙어 감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보약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창조주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늙어감과 죽어 감을 조용히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창조주를 기억하는 자세입니다.

 

본문 6~8절 새 번역입니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부서지고, 샘에서 물 뜨는 물동이가 깨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부서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8 2)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어떤 인생도 흙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은사슬도 끊어지고 귀한 금 그릇도 부서집니다. 물동이가 퍽 깨어지듯이 인생도 그러합니다. 깊은 우물을 길어 올리는 도르래가 부수어지면 물을 길어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은 수분이 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헛된 인생살이 중에서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새 번역으로 보면 1절에서도, 6절에서도, 7절에서도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기에 청년의 때에, 아무른 낙이 없다고 하기 전에,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합니다. 흙과 영에 대하여는 다음 주에 보기로 하고 오늘은 인간이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중점적으로 봅니다.

 

전도서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통과하여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유대인의 방식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시키시고 율법을 주시고 약속에 땅에 들여놓아주신 것을 압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표적과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창조주를 잘 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창조주가 그들에게 오시니 살해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타락한 인간이 생각한 하나님의 영광과 창조주가 생각한 영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8~23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온 우주 만물에 창조주 하나님을 알만한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분명하게 보이도록 창조하셨기에 사람들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섬겼지만 그 하나님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썩어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영광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썩어질 것은 사람들의 혈과 육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미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은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창조주를 섬긴다고 하였지만 최종영광은 자기들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44절입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유대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은 성경 곧 구약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여 영생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창조주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그 말씀을 신성모독이라고 하면서 죽여 버린 것입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그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율법을 지키며 쌓아온 자기의 영광을 다 쓰레기 취급하여야 합니다. 자기 의라는 것을 배설물로 여겨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일에는 자기 영광을 취할 수가 없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어떨까요? ‘조선 현종 6(1665) 평택 임씨 자손 임유가 과거시험에 제출한 답안지를 문중으로부터 기탁 받았다고 충청도에서 밝혔다고 합니다. 이 과거시험은 현종이 온양온천(현 아산)에 행차한 것을 기념해 지역민을 대상으로 치러졌던 문과 시험이다. 당시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조화를 뺏을 수 있는가'(人力可以奪造化論)였다. 임유는 답안지에서 조화를 하늘의 조화와 인간이 만든 조화로 구분한 뒤 '인간이 노력하면 하늘이 내린 조건을 변화시키고 하늘의 조화를 인간의 조화로 감화시킬 수 있다'며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중국 주나라의 고사 등 구체적인 사례를 인용해 '차상'(次上) 등급을 받았지만, 급제 등급인 9명 안에는 들지 못해 탈락했다.

 

인터넷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354년 전의 과거시험 주제가 사람의 힘으로 조화를 뺏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화(造化)란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 자연의 이치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지조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답변의 내용이 하늘의 조화와 인간이 만든 조화로 구분한 뒤 '인간이 노력하면 하늘이 내린 조건을 변화시키고, 하늘의 조화를 인간의 조화로 감화시킬 수 있다'고 답한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로 답변을 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신인협력설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내용인 늙음과 죽음을 사람의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일입니까?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한 이 말씀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조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피조물인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이성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로 되는 일입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는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11:25~27).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야 구원을 받기에 안식하게 되며 그것이 영생입니다. 이것이 창조주를 기억하고 알고 믿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이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5절입니다. “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말씀이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빛이시며 사람들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미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셔야 하는데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요한복음 8:24~28절입니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십니다. 도대체 이런 말을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그라고 하신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한 그 답변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14절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여호와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에고 에이미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십니다(10:30).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런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 일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창조주를 알고 기억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골로새서 1:13~17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청년의 때에 아무른 낙이 없다고 하기 전에 죽기 전에 예수님을 알고 믿음이 영생입니다(17:3). 이 놀라운 복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듣고 믿게 된 자들은 늙고 죽어 감을 감사히 받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