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이사야 53:10-12 고난 받는 종의 기도 2010. 8. 25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서에서 기도의 내용은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가 있습니다만 이미 열왕기서에서 보았습니다. 그 외에 기도라고 하는 내용이 얼마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이 기도하였다는 말씀과 63장에 기도의 내용 정도가 나옵니다. 이사야서 전체를 보면서 왜 이사야서에서 기도가 이렇게 없는 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가 고발되는 차원에서 나옵니다. 우선 그런 고발의 내용을 보아야 오늘 본문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사야 1:15절을 봅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손을 펴는 것이 기도의 행위입니다. 그렇게 손을 펴고 적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기도하여도 내 눈을 가리고 내가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왜 많이 기도하는데도 보지도 듣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십니까? 이 말씀의 앞뒤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성전을 찾아오는지 모릅니다. 예물로 드리고 기도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왜 듣지 않으십니까?

 

16-17절을 봅니다.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삶이 죄악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의 행위를 고치지 않고 성전에 나오는 것은 2주전 주일에 보았던 것처럼 도둑질 더 하기 위하여 성전에 나아와 제물을 바치고 절기를 지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도 보지도 아니하십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땅의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말하였습니다. 무엇이 공정합니까? 법치를 말하고 있지만 법집행을 하는 자들이 범법을 하여도 고위 공직자가 되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동일한 범죄를 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지난 영국의 총선에서 노동당 정부 선거 슬로건이 무엇이었냐 하면 'all fair for future' (미래를 위해 모두에게 공정) 이었습니다. 영국의 노동당은 한국에서 좌파로 간주되는 정치 집단입니다. 그들의 슬로건을 한국의 보수 정부가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공정한 사회입니까? 이 땅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무엇을 기도합니까? 더욱 자기들의 기득권을 키우고 공고화하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고아와 과부의 형편이 아니라 이미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모여서 더 큰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과연 하나님께서 들으시겠습니까? 정권의 실세들을 고소영이라고 합니다. 그 안에 교회가 들어갑니다. 이런 나라에서 운동장에 수만 명을 동원하며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전직 대통령을 초청하여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하였습니다. 무슨 평화입니까?

 

이사야 58:1-9절을 봅니다. “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여호와의 길 알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처럼 의로운 판단을 구하며 심지어 금식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왜 금식기도까지 하는데 하나님은 보지도 않으시고 알아주지 않느냐고 합니다.

 

4-9절을 봅니다. “봉독” 금식을 하면서 논쟁하고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칩니다. 그러니 그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금식이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금식은 어떤 것입니까? 쌀이 남아돌아서 보관료만 1년에 수천억씩 나가니 짐승의 사료로 사용하겠다고 하면서 굶어죽어 가는 이웃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이런 현실에서 무엇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합니까? 더 많은 부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더 많은 경제성장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지 않느냐고 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이며 금식입니까? 개인이나 교회나 사회단체나 국가나 간에 기도하는 것은 힘을 더하여 달라는 것이지 있는 힘을 이웃을 위하여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는 이유를 이사야에서 한 곳만 더 보겠습니다. 이사야 59:1-8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합니다. 죄가 그의 얼굴을 가려서 듣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 죄란 손에 피가 가득합니다.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습니다. 입술이 거짓을 말하며 혀가 악독을 냅니다.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습니다. 허망한 것을 의뢰하고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짭니다.

 

이런 모습들이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은 인간의 죄가 어떤 것인지를 이스라엘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열방의 다른 나라들도 이스라엘을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는 것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한 제사장의 나라입니다. 또한 이런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통하여서도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펼쳐지는 지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나타내는 도구가 됩니다.

 

기도를 잘못 하는 것을 통하여서도 계시를 합니다. 인간에게서 나온 기도라는 것이 결국 자기를 살리는 방식입니다. 자기를 죽여서 남을 살리는 방식으로 기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든지, 전쟁을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교회를 개척하든지 사람들은 기도를 합니다. 무엇을 기도합니까? 자기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의 속마음이란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는 것입니다. 독사의 알을 품는 것입니다. 부화되면 독사가 나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있고 구스인이 그 피부를 바꿀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이사야 62:6-7절을 봅니다.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계속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1-5절에 예루살렘의 구원입니다. 새 이름을 주십니다. 나의 사랑이 거기에 있다, 결혼한 여자라는 이름이 주어지는 그런 예루살렘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조차 이스라엘이 스스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와로 쉬지 못하게 하는 그런 기도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평소에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전혀 맞지 않는 그들의 욕망을 위한 간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기도와 금식이 없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그런 금식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이사야 53장에 나타나는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12절입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버리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범죄자 중의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이사야 52:13-15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의 종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나라들을 놀라가 할 것이며 왕들의 입을 봉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보고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합니다. 듣지도 깨닫지도 못한 일이 고난 받는 종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그 내용이 이사야 53장 전체입니다. 1-9절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고 하는 것은 믿지 못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기에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분입니다. 사람들이 멸시하고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는데도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지는 것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10-12절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여호와의 뜻에 고난 받는 종이 순종을 하여 그 영혼을 속건 제물을 드리게 되면 그가 씨를 보게 됩니다.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게 됩니다. 이 여호와의 의로운 종이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십니다. 이 분이 누구신지 우리는 이미 잘 압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현장에서 보듯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고난 받는 종이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됨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지만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기도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이 세상에 범죄자가 아닌 자가 한 명도 없기에 모든 구원받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기도의 효력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누가복음 22:31-32절입니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주와 함께 옥에도 가고 죽는 데고 함께 가기를 각오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배신합니다. 세 번이나 저주하며 맹세하면서 부인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신을 하지만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한 이유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일 낮에도 베드로의 예를 말씀드렸습니다만 배신하고 돌이킨 후에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목자의 역할을 어떻게 합니까? 구원이란 금이나 은이나 없어질 보배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을 받았다고 증거 합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라는 베드로전서 4:7절을 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뿐 아니라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만이 아니라 이런 모든 은혜와 은사들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야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기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