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열왕기하 20:1-7 너는 집을 정리하라 2010. 7. 7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서 와서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가 면벽하여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이 말을 하고나서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응답이 온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았으니 십 오년을 더 살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너무나 잘 압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있더라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신다는 근거로 이 본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이 본문을 읽어주고 기도하라고 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식으로 이 본문을 사용해도 좋을까요? 이런 방식이 바로 성경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식으로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순전히 내 중심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연 그러한가 하는 심정으로 이 말씀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히스기야왕은 악한 왕 아하스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왕이 될 때가 25세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당을 부수고 모세 때의 놋 뱀을 부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14년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왔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한다던 히스기야도 발등에 떨어진 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성전과 왕궁의 금과 은을 산헤립에게 바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영원히 물러갈 적들이 아닙니다. 다시 포위가 되고 예루살렘의 위기 속에 이사야에게 기도요청하고 자신도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적군 18만5천명이 하룻밤 사이에 다 시체가 되어버린 사건을 목격합니다. 이 때 나이가 39세입니다. 이런 승리 후에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이사야 선지자가 너는 집을 정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왕이 된지 14년, 나이 39세, 왕위를 이을 아들도 하나 없는데 이제 너는 집을 정리하라고 합니다. 죽고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너는 집을 정리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는 지금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제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날이라서 보통 때 보다 더 구석구석 치울 것을 버리면서 정리하였습니다. 이런 정리는 이사 가기 위한 정리이지만 정말 죽는다면 어떻게 정리해야 하겠습니까? 도대체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줄 것 남에게 다 주는 것만 할 일이지요!

 

그러면 너 이제 집을 정리하라는 말을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때 종말론이 유행하였을 때에 어떤 분은 장가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종말이 오면 안 좋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네 집을 정리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예 감사합니다. 이제야 안식을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당장 오늘 이 본문이 생각날 것입니다. 주여! 히스기야도 15년을 연장하여 주셨는데 저는 히스기야만 못했지만 한 10년만 연장해 주세요!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히스기야가 15년 생명의 연장을 받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또 그 결과가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통보를 받고 벽을 향하였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서 행한 것을 기억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히스기야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나이 39세에 아들도 없이 죽어야 하는 왕입니다. 그것도 악한 왕이 아니라 이런 왕이 없을 정도로 진실과 전심으로 여호와 앞에서 행한 것입니다.

 

그러자 즉각 응답이 왔습니다. 그러나 15년 연장하여 준다는 응답은 히스기야의 기도와 눈물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히스기야가 선한 일도 있고 기도와 눈물도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조건이 될 수가 없는 것은 히스기야도 100퍼센트 진실하고 선한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산헤립 왕에게 금과 은을 바칠 때에 성전의 금까지 다 벗겨서 바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여호와를 의지한 모습이겠습니까? 거저 살기 위하여 적군에게 금과 은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가 응답이 된 것입니까?

 

5절입니다. 이사야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돌아가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 너의 눈물과 기도를 보았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왜 히스기야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윗의 하나님이어야 하는 것입니까?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 열왕기하 19:34 절입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다윗에게 등불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 때문에 이 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 이후의 왕들이 다 이 언약의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히스기야가 진실하게 행하고 면벽하여 눈물과 통곡을 쏟아도 그것 때문에 응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윗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이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병을 낫게 하며 15년을 연장 시켜주고 3일 만에 성전에 올라가며 이 성을 앗수르의 왕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것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6절을 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다윗을 위하여 이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히스기야의 공로나 조건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물론 히스기야는 자기의 선행을 들고 나왔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그런 조건을 보시고서 15년 연장하여 주시고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려고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집이란 다윗의 왕위를 이어주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심으로 자기를 위하여 또 다윗을 위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이런 응답을 받고서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자신이 나아서 삼 일만에 성전에 올라갈 무슨 징표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표징을 주실 것인데 해 그림자가 십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까요? 뒤로 물러가게 할까요? 히스기야 왕이 앞으로 가는 것은 쉬우니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는 것을 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구하니 아하스의 해시계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간 것입니다. 해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 간 것은 지구의자전이 멈추고 거꾸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러한 표징과 응답으로 히스기야 왕이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더욱더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 왔을 때에 금과 은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해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갔다는 것은 지구만 멈추어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모든 항성과 행성의 위치도 조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 하나님은 자신과 언약을 위하여서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과 지구조차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이 낫고 나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12-13절입니다.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딘이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왕의 편지와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바벨론도 반 앗수르 정책을 펴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유다와 동맹을 하여 반 앗수르 정책을 펴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얼마든지 그런 동맹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과 또 자기의 능력을 보이기 위하여 나라 안에 모든 보물들을 사절단에게 다 보여주었습니다. 보여주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앗수르 왕이 쳐들어 왔을 때에 모든 은과 금을 다 바쳤는데 지금 다시 금과 은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겠습니까? 앗수르 군대가 손도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18만5천을 죽였으니 그 전리품만 하여도 왕궁의 보물 창고는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 그 보물들이 히스기야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앗수르 왕이 쳐들어왔을 때에 금과 은을 주고서도 공격을 받았는데 다시 바벨론 사절단 앞에서 그런 것을 다 보여준 것은 자기의 능력을 과시 한 것입니다.

 

이 때 이사야 선지자가 나타납니다. 14-15절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느냐고 합니다.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다고 답합니다. 다시 이사야가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궁에 있는 것과 나의 창고에서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17-18절입니다. 두 가지를 전합니다. 왕의 조상부터 쌓아온 왕궁의 모든 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왕의 몸에서 나올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여 15년 연장을 받음으로 인하여 왕궁의 모든 보물들이 심지어 성전의 모든 제사 드리는 금과 은의 그릇들 까지 몽땅 바벨론에 빼앗기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아들은 바벨론의 환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죽다가 살아나도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죽는다고 하면 살려만 주시면 무엇이든지 한다고 해 놓고도 살아나면 화장실 갈 때 마음하고 나올 때 마음하고 다르듯이 다른 것입니다. 너는 집을 정리하라고 이제 죽는다고 할 때 그렇게 울고 기도하며 15년 연장을 받았지만 살아나서는 자기의 능력을 보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간곳이 없습니다. 보물들을 자랑하는 것은 자기의 힘과 부와 능력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진작 죽어야하는 인생인데 살려놓으니 이런 모양입니다.

 

나라의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또 그의 아들이 환관이 되는데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유다의 왕들 중에 가장 악한 왕이 됩니다. 차라리 히스기야가 죽었더라면 므낫세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이란 의미가 없지만 이 므낫세가 얼마나 악을 행하였는지 21:1-18절에 잘 나옵니다. 성전에 우상을 가득하게 하고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온갖 악을 다 행한 것입니다. 가나안에서 살던 민족들이 이러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멸하셨는데 그 멸한 민족들 보다 더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집을 정리하라고 하신다면 예! 하는 것이 참으로 큰 은혜입니다. 그런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더 살면 하루 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밖에 더하겠습니까? 단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살려주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바울처럼 사명이 남아서 살려주시는지 아니면 진작 죽어 마땅하지만 남겨두심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보이시면서 회개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20:19절을 봅니다. 자기 당대에 이런 재앙이 오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선하시다고 합니다. 자기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으니 어찌 선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이 말은 아주 이기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백은 자신이 죽어야 마땅하고, 날마다 저주를 받아 마땅한데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계신다는 고백으로 봅니다. 그런 하나님이 선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손을 어긋 맡겨 축복하듯이 이 한 장면을 남기기 위하여 히스기야가 15년 더 산 것으로 봅니다. 당장 저주를 받아도 마땅한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마음이 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너는 집을 정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