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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7:15~28 두 나라 2015. 9. 23

 

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16 내가 그 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17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18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오늘 본문에 두 나라가 나옵니다. 한 나라는 멸망할 나라이며 한 나라는 영원하고 영원하며 영원한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영원을 감지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갇혀서 사는 우리들은 현재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해석되는 삶의 체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살이가 메뚜기의 삶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생도 하루살이 같다고 합니다.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 어떻게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들은 인생과 이 세상자체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알고 영원하신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어느 정도의 환난이 와야 하겠습니까!

 

욥기서 4:17~20절입니다.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욥이 하루아침에 재산이 날아가고 자녀들까지 다 죽게 됩니다. 그리고 몸에 병까지 들고 아내는 욕하고 도망갔습니다. 이럴 때에 욥의 세 친구가 욥에게 와서 그 처참한 지경을 보고 일주일동안 말을 못하다가 돌아가면서 욥에게 말합니다. 욥 네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욥은 자신은 이런 벌을 받을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항변합니다. 이런 말에 대하여 엘리바스가 욥을 추궁하는 말입니다. 물론 욥의 친구들이 인과율로 욥의 고난을 해석한 것은 잘못입니다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인지는 바르게 표현한 내용이 이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하루도 안 되는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사야 51:6~9절입니다.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1)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 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각주 1)을 보면 그와 같이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루살이로 번역된 단어가 그와 같이 인데 그와 같다는 말은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며 옷 같이 해어진다고 합니다. 연기가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옷이 낡고 해어지는 것처럼 지금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이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그 안에 사는 인생은 하루살이도 못 된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구원은 영원하고 그 공의는 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아는 백성들 곧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은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한 인생들의 비방이라는 것은 옷을 좀이 먹듯이 양털을 좀 벌레가 먹듯이 사라지겠지만 여호와의 공의와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사야 51:9~16절을 봅니다.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다니엘서를 보면서 욥기와 이사야서의 말씀을 보는 이유는 멸망할 나라와 영원한 나라를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연기처럼 좀을 먹은 옷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은 이 세상을 바다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니엘서에서 이 세상을 바다로 보고 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국가와 왕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다라는 세상의 라합과 용을 무찌르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홍해를 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라는 바다를 휘저으시고 말려 버리시는 분이기에 세상의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하면 멸망할 나라의 왕들이 아무리 무서워보여도 그들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 다니엘 7:15~18절을 봅니다. “봉독 다니엘이 근심한 것은 그가 받은 환상 때문입니다. 그 환상이란 다니엘 7:1절의 환상입니다. 그 환상으로 번민하고 있을 때에 지극히 높으신 분을 모셔선 자들 중 하나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가 그 일의 해석을 알려줍니다.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무섭고 두려워 보이는 네 짐승이 세상의 네 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짐승의 나라는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다니엘 7:26절을 보시면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 7:18절을 보시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습니다. 이 나라의 누림은 영원하여 영원하고 영원하리라고 합니다. 다니엘 7:27절도 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그러므로 두 나라의 속성이 이미 다 나왔습니다. 한 나라는 완전히 멸망할 나라이며 한 나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 영원한 나라는 영원한 분에 의하여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느 나라에 소속이 되어있습니까? 완전히 멸망할 나라에 소속이 되었습니까? 영원한 나라입니까? 성도는 두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발 딛고 살고 있지만 성도는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음을 압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한 영원한 나라 그 아들의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자들은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에 소속이 된 백성은 반드시 그 영원한 나라 곧 아들의 나라를 사모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됩니다. 핍박받는 이유는 이 세상이 멸망할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가치관이 생긴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가족 중에 아버지가 영원한 나라의 백성인데 다른 가족이 멸망할 나라의 백성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아버지는 현재 있는 것으로 자족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가족들은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멸시할 것입니다. 무능하기에 자족하라고 한다고 할 것입니다. 자기 밥그릇도 못 챙겨먹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면 남편이나 자녀들이 동일하게 핍박할 것입니다. 살림살이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평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가족 안에 분리가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본문에서 완전히 멸망할 짐승의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19~21절을 봅니다.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네 짐승 중 네 번째 짐승을 확실히 알고자 했습니다. 그 짐승이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고 합니다. 그 이가 쇠며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습니다. 이러한 짐승이 국가이며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짐승을 오늘 이 시대의 국가로 보시면 그 속성이 틀림이 없습니다. 국가들 간의 경쟁을 보시기 바랍니다. 먹고 부서뜨리고 발로 밟는 일을 실제로 이 세상의 역사는 무력으로 정복한 역사들입니다. 지금도 끊이지 않고 무기를 비축하는 것은 먹고 부서뜨리고 밟기 위한 것입니다. 일본이 헌법을 바꾸면서 하는 짓을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도 중국도 그 사이의 한국도 다 짐승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뿔이라는 것은 왕들을 말하는데 열 뿔이라고 하는 것은 열 명의 왕이 아니라 여러 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뿔에 눈이 있고 큰 말을 하고 입도 있다는 것은 왕을 말합니다. 이러한 뿔 곧 왕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성도를 이겼다고 합니다.

 

짐승의 나라 멸망할 나라의 왕이 어떻게 지극히 높으신 이의 백성인 성도를 이길 수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보여주는 역설이며 신비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멸망할 세상의 나라를 힘으로 부수어 버리면 되실 텐데 왜 성도가 지는 모습이어야 합니까? 구약에서 이미 이런 모습으로 예언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짐승의 나라를 이기신 것은 세상의 힘으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이기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겉으로 보면 세상의 종교와 정치가 결탁하여 이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의 짐승이 멸망한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요한복음 15:18~22절입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두 나라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나라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미움과 박해를 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이 세상에 속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주시는 분이셨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로마의 권력에 넘겨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힘을 합하여 로마를 물리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이 세상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시면 그 성령이 임한 자들은 이제 이 땅에 발 딛고 살지만 그 소속이 달라집니다.

 

어제까지 동지였지만 오늘 적이 되는 일이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세상에서 미움을 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세상에서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은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두가 세상의 속한 것과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그런 것들은 다 쓰레기이며 배설물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도 세상에 속한 것들과 썩어질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모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까지 성도는 미움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13:1~10절입니다.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다니엘서의 짐승들의 특징이 요한계시록에서 그대로 나오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시대의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넷째 짐승이 헬라제국의 왕이냐 로마 제국의 왕이냐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기 까지 이 세상의 나라는 짐승들의 나라이기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습으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이 짐승들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서 이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짐승들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핍박을 받을 것이며 이런 일은 사람의 의지적인 결단과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창세 이후로 죽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귀가 있으면 들으라고 합니다. 사로잡혀 가는 자도 있고 칼에 죽는 자도 있지만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러합니다. 세대주의 해석처럼 어느 특정한 시기에 대 환난이 오는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도 믿음의 사람은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모든 성도는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난은 한때 두때 반, 또는 마흔 두 달로 표현되는 잠시 잠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난을 주는 이 세상의 나라는 영원히 멸망할 나라이지만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느 나라에 소속된 사람으로 여겨집니까? 멸망할 나라입니까? 영원한 나라입니까? 성도가 이 역사 속에서 핍박을 받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 영원한 나라가 이미 완성이 된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그 십자가의 길로 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이 세상이 심판 받은 세상임을 압니다. 십자가 안에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죽은 세상입니다.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세상이 보면 그들이 죽은 자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오늘 우리를 보면 당신은 도대체 세상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냐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떻게 세상에 대하여 그렇게 욕심이 없느냐는 말을 듣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보다 더 세상을 악착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듣습니까?

 

오늘 본문 22절을 봅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지난주에 본 대로 여호와 하나님과 인자이십니다. 항상 계신이가 어떻게 성도들의 원한을 풀어주십니까?

 

요한계시록 6:9~11절입니다.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대단 아래서 우리 피를 갚아 달라고 합니다. 이들은 실제로 순교한 자들이기도 하지만 성도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가치관을 가진 머리가 베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사상들이 삭제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된 자들이 목이 베인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흰 두루마기 곧 의의 세마포를 주시면서 잠시 쉬라고 합니다. 아직 그렇게 목이 베어야 할 자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성도라면 반드시 이 역사 속에서 목이 베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상과 이론과 가치관들이 다 잘려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의 나라가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미 영원한 나라를 얻었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하신 그 자체가 이미 완성입니다. 시 공간을 창조하신 영원하신 분의 말씀이기에 영원한 나라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로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23~25절입니다.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짐승이 아무리 두려워 보이며 세상을 다 정복할 것처럼 보이고 성도를 괴롭게 할 것처럼 보여도 잠시 잠간일 뿐입니다.

 

26~28절입니다. “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28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 내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

 

오래 전에 친일한 사람들이 왜 친일을 했겠느냐는 질문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당시에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은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일본에 붙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자동차도 한 대 만들지 못하던 나라에서 비행기와 군함을 만드는 일본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을 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자들이 미국을 가 보고서 친미를 한 것은 미국은 일본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큰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이 다 멸망할 짐승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영원한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 아들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그 나라가 십자가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 두 나라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멸망한 나라와 영원한 나라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아 나라의 법도 지켜야 하고 세금도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아닙니다. 이 나라가 살기 싫다고 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런 나라도 짐승의 나라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미 멸망한 나라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