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전도서 8:14~17   참된 희락 2019. 6. 26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어제가 한국전쟁 기념일입니다. 69년 전 625일 일요일 새벽에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왔습니다. 이날로 시작하여 만 3년이 넘게 같은 민족이 전쟁을 하였습니다. 이 당시는 세계가 냉전시대라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소지가 있었습니다. 유엔의 개입으로 휴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남북은 대립하고 이념 전쟁이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군인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과 유엔군까지 수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들과 연결된 사람들의 운명도 얼마나 많이 달라졌겠습니까? 이러한 전쟁에 대하여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전도서 8:8절의 말씀을 보면 전쟁을 모면할 자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 17절과 연결하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아무리 자세히 연구하여 보아도 다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입니까?

 

지난주 본 말씀이지만 오늘 본문과 연결하기 위하여 14절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봅니다. 땅 위에서 되어 가는 꼴을 보면 모두가 헛된 일이다. 나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착한 사람이 받는가 하면 착한 사람이 받아야 할 보상을 나쁜 사람이 받는다. 그래서 나는 이 또한 헛되다고 한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보입니다. 친일파는 아직까지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독립운동을 하면서 전 재산을 다 바친 사람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의롭고 바르게살기 보다는 기회주의자로 살려고 합니다. 모두가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게 됩니다(8:11).

 

그러나 그런 기회조차 잡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즐기며 살자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에 노래한 것이 젊어서 놀자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는 욜로 족입니다. 욜로(yolo)는 단 한번 뿐인 인생(you only live once)이라는 영어의 약자입니다. 영화나 음악으로 나와서 유행한 말입니다. 단 한번 뿐인 인생이기에 의미 있게 살자는 것보다 지금을 먹고 마시며 즐기자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득권에 진입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자는 N포 세대라는 말이 나옵니다. 노력해도 어차피 안 될 것 희망고문 하지 말고 현재 즐기며 살자는 것이 욜로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오늘 말씀도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을 희락이라고 합니다. 전도서를 잘못 보면 허무주의가 됩니다.

 

14~15절을 연결하여 읽어보면 세상에는 의롭게 살아도 악인이 받는 벌을 받는 모습으로 보이는 자들이 있고, 악하게 사는 자들이 의인이 받을 상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기에 살아 있는 동안에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읽을 수가 있습니다. 15절을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즐겁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하늘 아래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밖에 사람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것이 없다면 하늘 아래서 하느님께 허락받은 짧은 인생을 무슨 맛으로 수고하며 살 것인가?” 전도서를 잘 못 읽으면 허무한 세상에서 즐기자고 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16~17절도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16 나는 지혜를 통해 사람들이 땅 위에서 밤낮 눈도 못 붙이고 수고하는 까닭을 알려고 무던히 애를 써 보았지만, 17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서 하시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찾아도 그것을 알 사람은 없다. 이런 일을 안다고 장담할 현자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밤낮 눈도 못 붙이고 수고하는 까닭을 알아보려고 지혜 자가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참으로 안다고 할 자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도 세상의 일들은 사람이 다 모르는 것이니 그냥 즐겁게 살자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왜 허무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희락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좋다는 것은 솔로몬보다 더 부요한 자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솔로몬은 먹고 마시는 것이 풍부할 뿐 아니라 그릇조차 금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솔로몬이 세상의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말한 것이겠습니까? 물론 수고함으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2:24). 이 땅을 사는 동안 수고함으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썩는 양식만 말한다면 성경의 목적을 모릅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먹고 마시며 즐겼습니다. 전도서를 문자대로 본다면 이 부자가 참된 희락을 누리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집 앞에 버려진 나사로는 부잣집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먹고 살아갑니다. 게다가 헌데가 나서 개들이 그 헌데를 핥습니다. 참으로 저주 받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죽어서 불이 있는 음부에 가고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십자가의 이후로 보면 부자는 지옥가고 나사로는 천국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희락은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참된 희락입니다.

 

창세기 14:17~20절입니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이 소돔과 고모라 땅에 살던 조카 롯을 구하여 옵니다. 이 승리는 아브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따라 복 주심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된 이유는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이 준비한 것이 떡과 포도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주신 것을 알기에 이미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람이 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가장 큰 희락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8:56~59절입니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사건과 나중에 이삭의 출생과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의 이레의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통하여 먹고 마신 떡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것입니다.

 

출애굽기 24:8~11절입니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시내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피로 언약을 체결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십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 함부로 나아가면 여호와의 거룩하심이 그들을 공격하게 되어 있기에 짐승조차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들이 언약의 피를 뿌림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먹고 마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이 준비한 떡과 포도주를 먹음이나 이스라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시는 내용들이 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참된 희락을 맛보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이 영생이기에 이것이 참된 희락입니다.

 

본문 17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서, 나는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은 그 뜻을 찾지 못한다. 혹 지혜 있는 사람이 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도 정말 그 뜻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최고의 지혜를 가졌다고 하는 솔로몬도 세상의 일들을 살펴보니 세상의 일들을 다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 알 수 없기에 앞에서 본 대로 희락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것이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시는 것이 참된 희락입니다. 그러나 이미 타락한 죄인들이 무슨 수로 생명의 양식을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유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천사들이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고 있는데 누가 생명의 양식을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브라함 언약이나 시내산 언약처럼 피의 언약 체결 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실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이 되어 죄인들에게 내어 주시는 것이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생각도 못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6:51~55절입니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리스도를 기다린 유대인들이 믿지 못하겠다고 떠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르느냐고 말씀하시자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느냐고 대답을 하였지만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참된 희락은 사람이 받을 수가 없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죄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대신 하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죄를 알고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임을 믿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2:9~12절입니다.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9절의 인용 구절이 이사야 64:4; 65:17절의 내용입니다.

 

성령이 임함으로 사람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도 못한 일들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들을 우리가 다 몰라도 됩니다. 다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믿으면 세상의 일들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서 남방 여왕이 왔지만 솔로몬보다 크신 분, 솔로몬을 지으시고 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 곧 그 십자가의 언약의 완성이 영원한 생명임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은 인간의 지식과 능력이 아니기에 은혜입니다.

 

이러한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셨습니다. 그 생명을 먹고 마시는 것이 참된 희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14:17).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에 참된 평강을 맛보며 누림이 참된 희락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 안에서는 참된 희락을 부분적으로만 맛을 봅니다. 이 희락을 맛보는 것이 성령의 보증입니다. 성령의 보증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 십자가의 피로 다 이루심을 보증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1~4절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새 하늘과 새 땅에는 참된 희락이 충만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반드시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