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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2:18~26 수고도 슬픔 뿐! 2018. 11. 28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 ,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수고를 미워한다고 합니다. 해 아래 헛된 세상살이에서 그래도 자신이 수고하여 얻는 것들은 기쁨이라고 전도서에서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수고조차 미워하고 실망하고 슬플 뿐이라고 합니까? 우선 수고함으로 얻는 기쁨을 봅니다.

 

전도서 5:18절 새 번역으로 봅니다.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은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 세상에서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로소득이 아닌 성실하게 수고하여 얻은 것은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8:15절입니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5:18절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 평생 동안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기쁨이라고 합니다. 9:9절에서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은 수고도 슬플 뿐이라고 합니까?

  

본문 18~19절을 봅니다. 전도자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수고하여 얻은 모든 것들을 결국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넘겨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 번역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하는 것을 억울하기 그지없다고 번역합니다.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것들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왜 미워할 일이며 억울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자신의 뒤를 이을 자가 지혜롭게 잘 관리할지 어리석어서 탕진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말로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애써서 마련한 재산을 자식들이 탕진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열왕기상 11장을 보면 솔로몬이 바로의 딸 외에도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모세 율법에도 금하고 있지만 솔로몬은 많은 여인들과 연애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그가 쌓은 부를 계속 확장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수많은 정략결혼을 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여인들의 비위를 맞추어주기 위하여서라도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함께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데 다윗을 생각하셔서 솔로몬에 때에는 심판을 하지 않으시고 솔로몬의 아들 때에 하십니다.

 

그 심판은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집니다. 북 이스라엘은 10지파, 남 유다는 베냐민 지파만 남았습니다. 솔로몬의 타락에 대한 심판이 르호보암 시대에 일어났다면 르호보암은 억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죄인들은 억울할 일이 없습니다. 다 똑 같은 죄인입니다. 르호보암도 심판을 받을 일을 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세금을 줄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원로들은 세금을 줄여주라고 했는데 자기 친구들의 말은 세금을 올리라고 한 것입니다. 재벌의 자녀들이 수고와 고생을 모르고 얻은 재산으로 갑 질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나누어지는 것이 솔로몬의 죄만이 아니라 르호보암도 똑 같은 죄인임을 보여줍니다.

 

본문 20~23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세상에서 애쓴 모든 수고를 생각해 보니, 내 마음에는 실망뿐이다. 수고는 슬기롭고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 하는데, 그가 받아야 할 몫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다른 사람이 차지하다니, 이 수고 또한 헛되고,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속 썩이지만, 무슨 보람이 있단 말인가? 평생에 그가 하는 일이 괴로움과 슬픔뿐이고, 밤에도 그의 마음이 편히 쉬지 못하니, 이 수고 또한 헛된 일이다.”

 

솔로몬이 사후의 일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지혜로 연구하여 세상살이의 결론을 보니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수고는 슬기롭고 재능이 있고 성실한 사람이 하였는데 그 결과물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자가 다 차지하고 그것도 허랑방탕하게 사용한다면 앞선 사람의 수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온갖 수고를 다 하느라고 밤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는데 그 수고를 아무 수고도 없는 자들이 차지하기에 수고도 실망과 슬픔뿐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도 알고 목격하는 내용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수고하며 애써서 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지 자신의 노후만 생각하면 그렇게 죽도록 수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힘들게 살았기에 내 자식은 좀 덜 힘들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정말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한 것으로 물려줄 것이 많겠습니까? 적겠습니까? 물려줄 것이 거의 없는 것이 서민들의 세상살이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물려주려면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해서 벌어들인 것이라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게 복일까요?

 

1994년에 박한상 군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부모는 강남의 부자인데 한약상을 하면서 3백억 대의 자산가입니다. 화재가 나서 부부가 죽었는데 조사를 해 보니 수십 군데 칼에 찔려 죽은 것입니다.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소재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집 아들이 미국유학을 하면서 흥청망청 쓰다가 돈이 없으니 부모가 죽으면 자기 재신이 되리라고 생각하여 죽이고서는 불을 지른 것입니다. 그 다음해 1995년에는 대학교수가 역시 유산문제로 부모를 살해한 뉴스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에 손봉호 교수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1884년부터 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부모가 물려준 집이 있어서 살지만 자기가 죽을 때는 유산을 남기지 않고 사회에 돌려주자는 운동을 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자들이 함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명맥은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수고하고 애써서 재산을 모아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박한상 군의 부모나 대학교수의 부모가 자기 자식들이 유산 때문에 자기를 죽일 것을 알았다면 재산을 모아두었을까요? 자신을 칼로 찔러 죽이는 그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수고한 것이 슬플 뿐입니다.

 

본문 24~26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24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알고 보니,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 25 9)그분께서 주시지 않고서야,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겠는가? 26 하나님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슬기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고, 눈 밖에 난 죄인에게는 모아서 쌓는 수고를 시켜서, 그 모은 재산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시니, 죄인의 수고도 헛되어서 10)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자기 수고로 먹고 마시는 것이 보람이며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알고 보니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고서야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악인들이 형통하여 먹고 마시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잠언20:17절입니다.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악인의 먹고 마심은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라도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들은 감사로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에 솔로몬보다 더 나은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악인의 수고로 모아 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에게 돌려준다고 합니다. 이런 구절 한 말씀을 목숨처럼 붙드는 사람도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되면 악인들의 부가 자기에게로 온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시 악인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수고가 해 아래서 바람을 잡은 것과 같이 헛되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정당한 수고조차 헛되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새 번역 26절에서는 죄인의 수고가 헛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의 수고가 왜 헛된지 알아야 하며, 헛되지 않는 수고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시편 39:6절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욥기에서 고통의 깊이를 알아야 고통 너머의 의미를 알게 되듯이, 전도서에서는 헛됨의 깊이를 알아야 헛되지 않는 것에 눈을 뜨게 됩니다. 헛됨을 모르면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소란합니다. 세상이 늘 소란한 이유는 헛된 재물을 쌓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수고가 헛됨을 아는 자들만이 주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시편 39:4~5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자신의 종말과 자신의 연한이 언제인지 알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평소에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입니다. 로마 장군이 개선하여 올 때에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네가 지금 승리하였다고 우쭐하여 교만해지지 말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고 들은 로마는 타락하고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종말과 연약함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만이 헛된 수고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39:7절입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세상에서 재물을 쌓아서 든든하게 여기는 것도 실로 헛된 것임을 안 자가 기도합니다. 나의 소망이 주께 있다고 합니다. 이 시편의 저자가 어떤 고난인지 잘 모릅니다. 제일 마지막 13절에서 병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하지만 그러나 병에서 나아도 다시 죽는 인생입니다.

 

시편 39:12~13절 새 번역입니다. “12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내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 눈물을 보시고, 잠잠히 계시지 말아 주십시오. 나 또한 나의 모든 조상처럼 떠돌면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손과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13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다시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나에게서 눈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돌려주십시오.” 세상의 수고가 헛됨을 아는 자의 기도입니다.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에게 눈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돌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눈길을 한 번만이라도 돌려주시면 미소 지을 수 있겠다고 합니다.

 

시편 90:10~12절입니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39편처럼 우리의 연약함과 종말과 그 연한이 언제인지 알게 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칠팔십을 살지만 그 연수의 자랑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주의 노여움과 주의 진노인데 누가 이것을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날 계수함을 알게 하여 주셔서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수고의 헛됨을 아는 자의 기도입니다.

 

시편 90:3~9절입니다. “봉독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티끌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기에 아무리 수고하여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입니다. 주님께는 천 년이 지난밤의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홍수에 쓸려가는 자와 같고 한 포기 들풀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주님의 분노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이렇게 헛된 것에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구하는 것은 인생의 헛됨을 아는 자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이 헛됨을 아는 과정은 고난입니다. 성도에게는 헛됨을 알게 되는 고난을 통하여 영원한 진리를 구하게 됩니다.

 

시편 90:1~2절입니다.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천지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주님이 자신의 거처가 됨을 알게 되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세상의 거처들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것들이지만 영원한 주님이 우리의 거처가 된 자들은 이 세상의 헛된 수고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수고하면서 기뻐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8~58절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들은 썩지 않을 것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주 안에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이 성도에게 주신 수고는 헛된 수고가 아닌 기쁜 수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