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예레미야 2:20~28 네 길을 보라! 2013. 5. 1

 

20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2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23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의 뒤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발이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과 같았으며 24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것들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그 발정기에 만나리라 25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하지 말며 목을 갈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들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지난주에 영광에 다녀온 이야기를 잠시 하였습니다. 원전을 설명한 교수가 제일 마지막에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라면서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라는 옛 글을 보여주었습니다. 선이든 악이든 다 나의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 선악을 분별하며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선악개오사라는 말을 일반인도 사용하고 종교인도 사용하는데 모두가 선과 악을 잘 분별하여 성공하는 인생을 살자는 내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의 타락이후에 모든 인간이 죄 아래 갇혔다고 합니다. 내가 스스로 선악을 분별하면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을 버리는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선이라고 여겨서 취하고 악이라고 여겨서 버린다고 하는 그 주체성이 바로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의 인간의 모습이기에 그런 자가 아무리 선을 행한다고 하여도 죄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씀에 항의를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복과 화를 앞에 두었기에 선택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물론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30:19~20절입니다.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굽하여 40년 광야를 지난 후에 약속의 땅 가나안 입구에서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사시대를 지나고 왕들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명이며 복이 되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그를 의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를 예레미야에서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에서 네 길을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네 행한 바를 알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하여 자기의 길과 자기의 행한 바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되돌아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과 다닌 후를 비교하기도 하고, 교회를 처음 다닌 것과 오래지난 후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채점을 합니다. 이것은 잘한 일이고 이것은 못한 일이라고 점수를 매깁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점수가 자신이 정한 커트라인에 들어가면 안심을 하고 미달되면 좀 더 열심을 내어 점수를 보충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기 길을 돌아보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네 길을 보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개과천선(改過遷善)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너의 실상이 얼마나 고칠 수 없는 인간인지 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전적인 죄인이며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성이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자꾸만 스스로의 가능성을 두고 채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하면서 채점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선악과 따 먹은 본성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장착이 되어 있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도 내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보시면 아직도 자신의 가능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기에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3:23절입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구스인이 피부색을 스스로 바꿀 수가 없고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흑인미군병사와 한국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자기의 피부색을 희게 하려고 돌로 피가 나도록 문지른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피부를 벗겨내어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악에 익숙하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지난주에 이스라엘이 멍에와 결박을 어떻게 끊어버리려고 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주께서 메게 하신 그 멍에와 결박에 순종하는 길이 복과 생명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순종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몸을 굽혀 행음을 하였습니다. 가나안의 이방신전들과 제단들이 언덕 위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푸른 나무아래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을 향하여 몸을 굽혀 행음한 것입니다.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하나님을 배신한 행음입니다.

 

21절입니다.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두나무를 심었는데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종종 포도나무에 비유합니다. 이사야 5:1~4절을 봅니다. “봉독” 포도원의 노래입니다. 포도원을 완벽하게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맺힌 것은 들 포도를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이 울타리를 걷어서 먹히고 짓밟히고 불사르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며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사람입니다. 그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바라셨는데 포학과 부르짖음이 나왔습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도록 해마다 가지를 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주 대에 묶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나무가 이렇게 가지가 잘라지고 묶인 것을 싫다고 끊어버린다면 그 포도나무는 더 이상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포도나무는 해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열매가 머루 알처럼 작아져서 쓸모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맺힌 열매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극상품 포도가 아니라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여호와의 멍에를 꺾어버리고 그 결박을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2절입니다. 네가 잿물로 씻고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회개조차 외식이며 가식적인 회개라는 말씀입니다.

 

스가랴 7:5~6절입니다.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70년 동안 행한 금식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질문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도 그들의 금식이나 애통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금식과 애통조차 이용하는 인간입니다.

 

23~24절입니다. 잿물로 씻고 비누로 씻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정결규례를 지키면서 부정함을 씻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으로 죄를 씻었다고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할 때에 밧세바가 정결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생리 중의 관계는 율법으로 금하기에 그 기간을 마치고 정결하게 씻은 후에 간음한 것입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들이 씻었다는 것을 고발합니다. 나는 나를 더럽히지 않았으며, 바알들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 길을 보라고 합니다. 네 행한 바를 알리라고 합니다. 그 행한 길이란 발정기의 암낙타와 들 암나귀와 같다고 합니다. 이런 짐승들은 발정기가 되면 성욕이 일어나 헐떡거린다고 합니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겠느냐고 합니다. 그런 암컷을 찾는 수컷이 수고하지 않고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짐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며 오늘 우리를 말합니다.

 

25절입니다. 이러한 것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목을 갈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고 하면서 이방 신들을 사랑하였기에 그를 따라 가겠다고 합니다.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책망하여도 이방신을 향하여 따라 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짐승의 발정기에 본능으로 수컷을 찾아가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우상을 향하여 본능적으로 헐떡거리며 달려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네 길을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향하여 헐떡거리며 달려왔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남편이 되신 여호와를 버리고 온갖 우상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 우상들이란 가나안의 우상들인 풍요와 다산을 주는 우상들만이 아니라 주변의 강대국들도 우상이 됩니다. 이들을 향하여 발정이 난 짐승처럼 달려가는 모습이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고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골로새서 3:5~6절을 봅니다.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탐심이 우상숭배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입니다. 이러한 탐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탐심이라는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나는 형상물에 절하는 절에도 가지 않고 성당에도 가지 않고 교회 다니기에 우상숭배자가 아니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탐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전도하고 헌금하는 모든 것들도 다 우상숭배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의 길을 뒤돌아보았습니다. 탐심 아닌 것이 과연 있었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탐심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겸손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발정이 난 암컷이 성욕이 들끓어 이리저리 정신없이 그 성욕을 채우려고 달려가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이라도 진노를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아도 지극히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런데 소망이 있습니다. 시편 80:14~19절입니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8절에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옮겨다 심은 포도나무라고 합니다. 이 포도나무가 주의 면책으로 베임을 당하며 멸망하게 되었지만 소망이 있는 것은 주의 오른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를 인하여 소생하게 달라고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 편에 계시는 인자로 인하여 구원하시겠다고 합니다. 이 인자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로 인하여서 구원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15:1~6절입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한 사람은 자기 행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붙어서 그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고 사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