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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6~22    까닭 없이    2015. 12. 30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6절을 보시면 특정한 어느 날이 아니라 그냥 하루는이라고 시작이 됩니다. 이 하늘의 하루는 묵시적인 시간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하는 시간과 장면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성경 여려 곳에서 천상회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지상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11:3).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성경에서 천상회의가 일어나는 두 곳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편 82:1~8절입니다. “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 하시느니라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5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 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여기서 천상회의를 신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시편 82:6절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34~35절에서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을 신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의 모임이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천사들로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천사들만이 아니라 6절에서 신들이라고 하며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공의로 재판을 하여 가난한 자를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야 하는데 이들이 악과 짝하여 살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여 달라고 합니다.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에 친히 심판하여 달라고 청원을 합니다. 이러한 청원은 요한계시록 6:10절에서도 주의 말씀과 그의 증거로 인하여 자기들의 피를 신원하여 달라고 호소합니다. 천상회의의 결과로 이 세상이 결국 심판을 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열왕기상 22:19~23절입니다. “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2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천상회의에서 결정된 일이 지상에서 일어나는데 하나님의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한 천사들 중에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서 일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오늘 본문의 사탄이 천상회의에 참여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탄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도구로 사용합니다. 사탄이라는 말이 대적한다는 말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대어들기는 하지만 결코 하나님의 권세를 벗어날 수가 없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욥의 머리카락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사탄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활동과 논리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가장 핵심적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는 단어가 까닭 없이입니다.

 

다시 본문 6~8절을 봅니다. 천상회의가 열리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여기서 천사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고 하시자 사탄이 땅을 두로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다고 합니다. 참소거리를 찾아다니는 모습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고 하시면서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다고 하십니다. 이 내용은 이미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이러한 욥을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시비를 거는 자가 사탄입니다. 9~11절을 보시면 사탄이 여호와께서 대답하기를 욥이 어찌 까닭 없이하나님을 경외하겠느냐고 합니다.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에 경외한다고 한 것입니다.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셔서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되었으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의 소유물을 거두어 가 버리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욥의 소유물을 치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탄도 여호와를 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주의 뜻에 대하여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시든 긍휼을 베푸시든 간에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속성이 사실 타락한 인간 안에 다 들어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을 만류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일은 십자가 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소 생각들이 얼마나 사탄 적인지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늘 대적하는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까닭 없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보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잘 섬기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탄의 이런 생각이 사실 우리들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데 너무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합니다. 그 사람이 세상의 물질적인 복을 받으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그렇게 잘 섬기더니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목사들은 이런 사람들 예를 들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복을 다 거두어 가버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러시냐며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러느냐며 항의를 할 것입니다. 이게 누구의 생각입니까? 사탄의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바로 우리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정말 여호와 하나님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도 이 세상의 복을 받지 못한다면 저 세상의 상이라고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잘 섬겨도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예수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이미 아버지께서 정하신 자들이 앉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누가 예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런 말씀 안에도 우리 안에는 까닭 없이 무슨 일을 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해서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감사와 기쁨으로 섬기는 자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때로는 받은 은혜라고 말하기고 하고, 의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과연 우리의 마음에 아무른 까닭 없이. 반대급부 없이 오직 그 사랑으로 감사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듯이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는 분이 있습니까?

 

전에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가 백성들을 교훈할 책을 만들라고 신하에게 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수십 권의 방대한 책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 많은 책을 어떻게 먹고 살기도 바쁜 백성들이 다 공부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대폭 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권의 책으로 줄였지만 황제는 이것도 많다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줄이고 줄여서 한마디로 한 내용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까닭 없이 무엇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이상한 세상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의 조건과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나 조건이 이해가 되면 그 사건과 현상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눈이 보이지도 않는 천상회의로 인하여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자신이 주체가 된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까닭 없이 날벼락을 맞습니다. 물론 우리는 욥기를 알고 있으니 욥에게 일어나는 환난이 천상의 회의로 인하여 일어난 것을 알지만 지금 이 일을 당하는 욥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나에게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당황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문으로 표하면 청천벽력(靑天霹靂)입니다. 맑은 하늘에 벼락이 치듯이 일어나는 사건을 말합니다. 욥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하나님의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순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들이 다 날아가 버립니다.

 

욥기 1:13~19절입니다. “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여기서도 어느 하루입니다. 이 한 날에 일어난 일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습니다. 욥의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욥에게 달려와서 밭을 가는 소와 풀을 뜯는 나귀를 스바 사람들이 빼앗고 종들은 칼로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 종 혼자 겨우 살아남아 주인에게 알리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이 사환이 아직 말하는 중에 또 한 사환이 와서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과 종들을 살랐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실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청천벽력이 실제로 일어났는데 이 사환은 하나님의 불이라고 합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중에 또 한 사환이 와서 갈대아 사람들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가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고 종들은 죽이는데 자기만 홀로 피하였기에 주인에게 알리려고 왔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달려온 사환은 욥의 모든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몰려와 그 집 네 모퉁이를 치니 그 자녀들 위에 무너져 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살아남아 전하러 왔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한 날벼락이 어디에 있겠습니다. 욥은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정말 자신으로서는 까닭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정도가 아니라 욥의 당한 재난의 천분의 일이라도 일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무엇을 잘 못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악악거릴 것입니다. 또는 정말 자신이 무언가를 잘 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할 만한 잘못이 있다면 빨리 그 잘못 한 것만큼 하나님께 갚아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 재난이 일어난 까닭을 자기에게서 찾았기에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주에 보고 오늘 본문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욥은 정말 이런 재앙을 당할 그런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삶의 태도입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합니다. 이런 욥이기에 이런 재앙은 정말 까닭 없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일을 보면 욥은 억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하늘의 회의에 의하여 난데없이 세상에서 모든 재산과 모든 자녀를 한꺼번에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약탈을 당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짐승이 태워지고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맏아들이 집이 무너지고 거기에 자녀들이 다 깔려죽었습니다. 욥이 어떻게 합니까?

 

20~22절입니다.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욥에 대하여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에 대하여는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욥은 이런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원망하지 않았기에 나중에 복을 배나 받았다고 말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이 단지 재산만 날아간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랑하는 자녀들 열 명이 한꺼번에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물질이 배나 보상이 되고 자녀도 다시 열 명을 얻는다고 해서 어떤 재앙이 닥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예배를 잘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지금 세월호의 부모들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시신도 수습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세월 호 청문회장에서 오열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런 청문회는 이 땅의 메인 언론이라는 곳에서는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이들 부모들의 마음은 하늘도 대한민국도 언론도 원망스럽습니다.

 

그런데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밉니다. 극한 슬픔을 보입니다. 그런데도 땅에 엎드려 예배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이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찬송을 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기에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욥의 신앙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욥의 불굴의 의지로 나온 믿음입니까? 아니면 평소에 늘 경건의 연습을 한 그런 믿음의 훈련으로 나온 것입니까? 저는 욥의 예배와 찬송에도 까닭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월요일 집사람과 함께 손양원 목사님 생가 복원과 기념관 세운 칠원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학생들 한번 가서 보게 하려고 답사를 하려고 갔는데 건물이 완공이 되었는데 건물 준공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서 읍에서 건물 열쇠를 가져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내용의 안내문도 없었는데 근처에 사업장이 있는 김 장로님 방문 해보고 알았습니다. 외관만 보고 오는데 그 마당에 아홉 가지 감사 기도가 있었습니다. 아홉 가지 감사의 기도를 전하기 전에 손양원 목사에 대하여 잠시 요약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19481019일 제주 폭동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여수에 집결해 있던 14연대 소속 군인들 중 남로당 계열의 군인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불과 4시간 만에 여수 시내의 경찰서와 각 파출소, 군청, 역 등 주요 기관을 장악하게 되었고 삽시간에 순천까지 점령을 하고 말았다. 여순 사건 당시 손목사의 장남 손동인 군은 순천사범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기독학생회 회장을 하면서 좌익들의 활동을 저지하고 복음전파를 통해서 학원의 평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기독학생 활동을 통한 좌익과의 대립 등이 원인이 되어 여순 사건 때 좌익 학생들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던 중 복음을 전파하다가 동인 동신 형제가 19481021일 순교했다. 손 목사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중 19481025일 동인, 동신의 순교 소식을 듣게 되었고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동신 동신을 죽인 원수를 살려 달라는 것이었다. 동인 동신은 죽어서 천국 갔는데, 동인 동신을 죽인 원수는 지금 죽으면 지옥 갈 것이 분명함으로 그 원수를 살려내어 예수를 믿어 구원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손 목사는 기도한데로 하나님의 은혜로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살려내 양아들로 삼아 동인 동신 대신해서 그들의 못 다한 일을 다 하라고 이름을 손인신이라 지어주었다.” 그리고 아홉 가지 감사기도입니다.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3. 삼남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을 바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4. 한 아들 순교도 귀하거든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와석종신 (臥席終身)하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하였으니 주님께 감사합니다. 6.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두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7. 내 아들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을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기쁜 마음과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손 목사의 두 아들 순교 후에 설교 시간에 이러한 아홉 가지 감사의 기도를 하고 감사헌금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 그 까닭을 말합니다. “나에게 분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 간의 눈물로 이루어진 기도의 결정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자매들이 23년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손 목사가 이런 감사를 하게 되고 이런 기도를 하게 되는 그런 까닭이 나옵니다. 물론 자신의 공로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분한 큰 복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부모님의 수십 년 새벽기도와 나환자 형제자매들이 23년간 기도한 성의와 열매로 된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니 여러분께 감사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그 까닭을 보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자기 집안에서 처음 예수님을 믿어서 힘들게 고생을 하는데 자기보다 신학생 때 공부도 못하고 기도도 별로 하지 않은 자가 목회에 성공을 하면 자기는 그런 복을 받지 못하여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많이 쌓여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들 속에도 사람들은 그 까닭을 찾고 있습니다. 까닭이 없는데서 주어지는 은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욥이 당한 이런 재앙은 스스로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과 자녀를 빼앗아 가면 그가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차 시험에서 사탄이 졌습니다. 욥은 옷을 찢고 머리를 밀고 슬퍼하였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송하였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찾은 까닭 없이라는 말이 욥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의 이런 믿음도 저는 까닭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의 고백처럼 알몸으로 와서 알몸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며 주신이도 주님이시며 취하신 이도 주심이시기에 주님을 찬송을 받으시리라고 고백하지만 저는 이런 욥의 신앙도 그 까닭이 욥에게 없다고 봅니다.

 

로마서 4:14~18절입니다.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 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율법으로 된다는 것은 내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면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즉 까닭이 있는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가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율법은 진노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의 의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받은 자에게나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나 동일하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 430년이 지나서 율법이 주어진 것은 왜 인간의 율법의 행위라는 조건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다고 합니다. 바라볼 아무른 소망이 없는데 바라본 것은 자신에게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셔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당연히 까닭이 자기에게 없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나의 나 된 것이 나의 공로나 나의 조상들의 공로가 쌓여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었다고 고백하는 믿음이 인과율에 붙들린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로마서 4:1~8절입니다.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나 다윗이 받은 복은 일한 것도 없이, 까닭 없이 일방적인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약에 나의 행한 대로 갚으신다면 우리는 벌써 수천수만 번을 더 지옥에 들어갔어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들도 하나님은 행위로 보십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그 완성된 용서와 은혜를 값없이 받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이 복이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에도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은 자기 아들, 그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일방적으로 우리에게는 주시는 그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마음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