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동영상 설교]

에스겔 47:1~12 생명수 2013. 1. 30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지난주에 본 예레미야 2:13절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행한 두 가지 악은 생수의 근원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손들이 어떻게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면서 살아가는지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않은 나라들은 자신들이 웅덩이를 파면서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기에 이방나라들처럼 자신이 자신을 살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이것이 악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의 강대국을 의지할 결과 그들이 구원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이스라엘을 집어 삼켜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선지자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려 줍니다.

 

열왕기 상 17:1절입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북 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엘리야 선지자가 말합니다.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이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 하면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한 율법의 말씀을 따라 엘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비가 오기까지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을 갈멜산의 기도 응답으로 그들이 죽이고 난 후에 엘리야가 기도하여 비가 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은 비와 이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비가 없게 됩니다.

 

예레미야 14:1~6절입니다.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6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 가뭄으로 인하여 짐승이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어서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한 것이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도합니다.

 

7~22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여 달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가뭄으로 인하여 죄를 회개하는데 거짓선지자들은 오히려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금식하고 부르짖고 번제와 소제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받지 않으시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이 칼과 기근이 이르지 않고 확실한 평강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입만 열면 재앙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겠습니까? 아니면 확실한 평강과 복을 선포하는 자들의 말을 듣겠습니까? 제가 거짓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만 성경은 그냥 선지자로 나옵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한 것입니다.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예언합니다. 이런 것이 영적인 기갈을 당한 모습입니다.

 

아모스 8:11~13절입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앞에서 본 말씀은 실제로 마시는 물에 대한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는 기갈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더 심각한 기갈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 마실 물도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흘러넘치도록 나옵니다. 물론 이런 수돗물이 좋지 않다고 마시는 물은 다시 돈을 주고 사 먹는 시대입니다만 우리의 정말 목마름은 양식이나 마시는 물의 문제가 아니라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갈입니다.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면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바다란 물이 차고 넘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바닷물은 마실 수가 없습니다. 아랫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생명수를 마셔야 합니다.

 

스가랴 13:1절입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여기서 나오는 샘은 마시는 물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린다고 합니다. 그 날이란 구약에서 계속하여 예언한 날입니다. 그 한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린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예언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든지 생명수이든지 간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스가랴 14:7~8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나서 동해와 서해로 여름에도 겨울에도 흐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생수의 기능이 목마른 자의 해갈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생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더러움을 씻는 것에 대하여 에스겔서 36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만 한 번 더 확인합니다.

 

에스겔 36:24-28절을 봅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 족속에 그 땅을 더럽혔는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같이 더럽혔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정이란 우상숭배로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나 잡혀간 그곳에서 다시 구원하여 내시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더럽힌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시는데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고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우상 섬김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새 영을 그 마음속에 넣어주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물의 기능이란 죄와 더러움을 씻는 것이며 새 영이 부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의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 부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요엘서 3:18절입니다.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여호와의 구원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고 합니다. 싯딤 골짜기란 아카시아 골짜기를 말합니다. 땅이 말라서 가시나무만 자라는 그런 곳에 성전에서 나온 샘물이 흘러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마른 뼈다귀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전에서 나오는 샘이 오늘 읽은 에스겔 본문에서는 흘러 차고 넘칩니다. 처음에 일천 척을 측량하니 발목에 잠깁니다. 일천 척은 약 500미터입니다.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니 무릎이 잠기고,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니 허리에 잠기게 됩니다. 그 다음에 일천 척을 측량하니 그 물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물입니다. 새로운 성소에서 흘러나온 이 물이 지금까지 구약에서 찾아본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물이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능력을 성령으로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시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4:13~14절입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마리아 우물가의 한 목마른 여인과 대화중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의 조상인 야곱이 판 우물, 그들의 행위로서는 결코 목마름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어떤 율법을 지켜서 그 근원적인 죄와 더러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수를 주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셔서 자신이 영원한 생명수임을 증거 하자 이 여인은 물동이도 버려두고, 자신의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동네로 들어가서 메시아를 증거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초막절 행사로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성전에서 붓는다고 합니다. 그 명절의 큰 날은 곧 명절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 날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이미 말한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이 생수가 바로 성령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성전의 그 생명수가 흘러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성령을 통하여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 생명수에 접촉이 되고 그 깊이 속으로 들어가면 생명이 사망을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이 물이 흘러가서 온 세상에 이르게 되면 그제야 세상의 끝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그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여 시작된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증거 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끝이 다되어 갑니다. 이 복음이 다 증거 되면 그제야 이 세상의 끝이 될 것입니다. 그때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모습은 에스겔 47:6~12절의 모습처럼 될 것을 요한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5절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에스겔서의 성전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생명수가 값없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계시록 22:17절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 놀라운 생명수를 지금부터 마음껏 마시며 그 생명수에 잠겨 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