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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3:12~27 얼마나 오랜 후에야 2013. 11. 27


12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가죽부대가 포도주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가죽부대가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26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시니라


오늘 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약시대란 새 언약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왜 옛 언약인 구약을 이렇게 보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구약을 통하여 왜 우리가 새 언약으로만 구원을 얻게 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인 예레미야서에 새 언약이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새 언약이 예언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어서 구원하시기로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하였기에 다시 새 언약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새 언약으로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시고서 옛 언약을 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9~10절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언약입니다. 이러한 새 언약이 이미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옛 언약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새 언약을 주시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 먹은 후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못 마땅해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 있음을 진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땅의 티끌인 주제에 자신이 하나님인양 착각하며 사는 인생들이기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낱낱이 드러내시면서 새 언약으로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들은 구약을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합니다.


12~14절입니다. “봉독”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가죽부대에 포도주로 찰 것이라고 하면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것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고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포도주를 담는 가죽부대에 포도주가 가득 찬다는 것은 일상적인 평범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왔다면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르는 자가 누가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내용들이 다 싫다는 말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원적으로 싫어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야 기뻐하지만 참된 선지자들의 말은 어떻게 하든지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면 온갖 핑계를 하면서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다시 말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의 모든 주민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으로 잔뜩 취하게 하여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고 합니다. 포도주 부대에 포도주가 가득 찰 것이라는 말씀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는 것은 이미 예루살렘 백성들이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우상에 취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아끼지 않고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의 말씀이 아직 선포된다는 것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시지도 않으시고 사랑하지 않으시며 아끼지 않으시고 심판하신다는 최종적인 심판의 말씀을 들었지만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호와께로 돌이킬 것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선포합니다.


그 내용이 15~17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예루살렘 사람들이 무엇으로 교만하여 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종교적인 제의를 행하였다는 것으로 자기 의를 삼고 있기에 회개하지 않는 것이 교만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빛을 바라고 있었지만 오히려 사망의 그늘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어두움이라는 심판이 임하기 전에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은밀한 곳에 가서 울 것이며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러한 선포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돌이키지 않습니다. 선지자의 이러한 외침에도 돌이키지 않는 백성들에게 다시 심판이 선포됩니다.


18~19절입니다. “18 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19 네겝의 성읍들이 봉쇄되어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네겝은 예루살렘의 남쪽을 말합니다. 이곳은 애굽으로 피난갈 수 있는 길인데 이미 봉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왕과 왕후에게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고 합니다. 이들이 쓴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들이 심판을 당하는 모습을 미리 보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4:10~13절입니다. “10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11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12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여기서 왕과 왕의 어머니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18절의 왕후는 태후로 보아야 합니다. 왕후와 태후는 같은 단어입니다. 아무리 회개하라고 해도 자기 의로 교만하여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멸망한 것입니다.


본문 20~22절입니다. “봉독” 20절의 너는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눈을 들어 북방을 보라고합니다. 북방에서 재앙이 다가 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게 맡겼던 양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에 있느냐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전쟁으로 죽고 포로로 잡혀갈 것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사로 잡혀 가는 일에 앞선 자들이 전에 친구 삼았던 자들이라고 합니다. 남 유다는 앗수르의 팽창에 바벨론과 친구 삼았지만 이제는 바벨론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갑자기 산고를 겪는 여인 같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가라고 합니다. 멸망하는 순간에도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말에 대한 답변입니다.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성적인 수치와 폭행당함을 말합니다.


23절입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인간이 스스로 악에서 돌이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표현한 말씀입니다. 악에서 돌이켜 선을 행한다는 것은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우상이기에 우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죄가 어떠함을 구약 전체가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러한 인간의 실상이 모든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24~27절입니다. “봉독”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신다고 합니다.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마른 지푸라기가 네 몫이며 분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평생 동안 나를 살리기 위하여 구하여 놓은 것들이 무엇입니까? 바람에 날려가는 마른 지푸라기와 같지 않습니까? 평생 수고하며 만들어 낸 것들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만든 것들이기에 불에 태워버리시는 것입니다. 마른 검불과 같은 것이 분깃이 되는 이유는 25절에서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추어 수치를 드러낸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치를 드러내시는 것은 온갖 음행으로 인한 것입니다. 바로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이런 우상이 내 밖의 형상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탐심이 우상입니다.


27절 후반부를 봅니다.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얼마나 오랜 후에 정결하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구스인이 피부색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미군이 들어오고 그 중에 흑인 병사들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피부색으로 인하여 힘들어 한 이야기들을 보았습니다. 피부색으로 놀림을 받는 아이가 돌을 가지고 피가 나도록 문질러도 바뀌지 않는 피부색으로 인한 아픈 이야기들입니다. 또한 표범이 그 얼룩무늬를 무슨 수로 바꾸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악에 익숙하고 그 악을 바꿀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는 말씀은 인간의 불가능을 전제로 한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게 합니다.


이사야 6:9~13절입니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난 후에 자신이 망해야 할 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제단 숯불로 입술이 지져지고 나서 소명을 받습니다. 그 소명은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아서 스스로 깨달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께 언제까지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 답변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멸망에서 남아있다는 것 까지도 다 베임을 당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 베임을 당하고 나서 거룩한 씨로 인하여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2:39~41절입니다.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백성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성취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바로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주의 영광을 아무도 알아볼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으로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주의 택하심과 능력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주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구약의 그 모든 죄악을 행한 자가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임하심으로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언약의 완성을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 성령으로 부어주실 때에 자신이 전적인 죄인인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레미야 13:27절의 얼마나 오랜 후에야 너희가 정결하게 되겠느냐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질문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답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정결함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구약의 모든 약속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정결함을 얻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요1:29). 구스인의 피부와 표범의 반점처럼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자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정결함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