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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애가 2:1~22 슬픈 노래(2) 2015. 5. 27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슬픈 노래 두 번째 장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2장도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22절로 되어있는 시로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분노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분노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그 분노들을 추적하여 가보면 그 정점이 14절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의 죄악 됨을 보고 책망하여 돌이켜야 하는데 돌이키지 못함으로 사로잡혀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거짓된 경고와 미혹하게 할 것들만 보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경고를 하기는 하였는데 주께로 돌이키도록 경고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고마저 자기들의 만족과 이익을 위한 경고를 하고 그런 경고를 따르는 자들도 결국 자기들을 위한 것이었기에 멸망한 것입니다.

 

1절부터 봅니다. 슬프다! 라는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이 슬프게 된 이유는 여호와의 진노 때문입니다. 주께서 진노하셔서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었다고 합니다. 구름으로 덮었다는 것은 예레미야 애가3:4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께서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여호와는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고 계십니다(삼하 22:12, 18:11).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45:15)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려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셨던 예루살렘마저 자신을 구름으로 가려버리신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으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섬길 수 있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서 다윗 언약을 따라 예루살렘에 베풀어주셨지만 이들은 그 성전을 우상을 섬기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아름다운 것은 도시의 미관이나 규모가 다른 나라들 보다 크고 아름답다고 하기 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곳으로서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곳이 파괴가 된 것을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발판 곧 발등상은 예루살렘 성전이기도 하고 언약궤이기도 합니다(대상28:2).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과 언약궤마저 돌보시지 않을 정도로 진노하신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딸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도다” 2절에서도 주님께서 노하심으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야곱의 모든 견고한 성채들이 허물어지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이 욕되게 되었지만 이 모든 일들이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일어났기에 주께서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역시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십니다. 뿔이란 권세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권세가 다 무너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들이신 것입니다. 주님의 오른손은 구원의 능력이 있는 손입니다. 그러므로 그 손을 거두어들이심이 심판입니다. 그 손을 거두어들이심으로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신 것입니다. 주의 오른손에 대하여 성경 몇 곳을 찾아봅니다.

 

출애굽기 15:6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시편 44:2~3절입니다. “2 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서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나이다 3 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니이다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적들을 수장시키신 손이 주의 오른손입니다. 약속의 땅을 차지한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 칼과 팔이 아니라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팔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본문 4~5절입니다. “4 원수 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에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수 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신 것입니다. 주의 오른손이 전에는 시온의 원수들을 멸하셨는데 이제는 시온이 여호와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과 모든 궁궐들을 삼키시고 성들을 무너뜨리시고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멸망하였습니다.

 

본문 6~7절입니다. “6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모든 절기와 안식일을 폐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를 예레미야 7:1~15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이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입니다.

 

본문 8~10절입니다. “8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에 있으며 그 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예루살렘 성벽과 성곽을 의인화 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성문이 땅이 묻히고 부서여 파괴되어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합니다. 묵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묵시 곧 계시가 없기에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고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이것이 기갈이며 이것이 심판이 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기갈임에도 불구하고 먹고살만한 지경이 된 오늘날도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마음이 간다는 이 또한 묵시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련회 때 영생이 무어냐고 김성관 목사님이 물으시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 내 생명이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도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모스 8:9~13절입니다. “9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10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북 이스라엘에 대한 선지자의 책망입니다만 남 유다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절기를 애통으로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슬픈 노래를 부르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온갖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절기를 지킵니다. 안식일을 지키면서도 안식일이 빨리 지나서 장사할 것만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저울로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그 결과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집니다. 여호와의 묵시를 듣지 못하여 멸망하는 모습이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오늘 우리나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무엇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인지를 모르고 그저 썩어질 것들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다면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본문 11~13절입니다.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12 그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기절하여 그의 어머니들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머니들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냐 하도다 13 딸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까 처녀 딸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까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눈이 눈물에 상한다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러야 이렇게 되겠습니까?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진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의 눈물과 탄식과 애통이어야 이런 표현이 되겠습니까? 예루살렘이 18개월 동안 적에 의하여 포위가 되어 있으면 먹을 것이 성중에 다 떨어집니다. 어린 자녀와 젖먹이들이 기절을 합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혼이 떠나는 지경에 먹을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겨우 말고 죽어 가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에 무엇으로 위로하며 고쳐줄 수가 있겠습니까! 거저 슬픈 탄식뿐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미혹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가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거짓 경고와 미혹하게 할 것만 보았도다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거짓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선지라고 하는데 그들이 본 것이 헛되고 어리석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묵시를 가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계시는 주님께서 열어주셔야만 보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보여주시지 않으시니 자기들의 마음에 나오는 것을 주의 계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가 없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계속하여 여호와의 묵시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과 제사장과 소위 선지자라고 하는 자들이 예레미야가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예레미야서에서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만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강과 복인데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고 사로잡혀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교회를 다니는 것은 내가 세상에서도 잘 되고 천국도 가고 싶어서 오는데 설교 때 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이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그것을 따라 간 것입니다.

 

예레미야 8:7~12절입니다.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1)거짓되게 하였나니 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밭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서기관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자들이 거짓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새들은 자기들의 올 때를 아는데 여호와의 백성은 그 규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 다 욕심을 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면서 말로는 평강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잘 섬기니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더욱더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인줄 모르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어찌 예레미야 시대만 그렇겠습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말을 달게 듣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디모데후서 4:1~4절입니다.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예레미야 당시나 바울사도 때나 지금이나 이런 일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주께로 돌이키는 것은 참으로 은혜이며 기적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복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5~17절입니다. “15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사 원수가 너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며 네 대적자들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박수치며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합니다. 온전한 영광이라고 하고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고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고 조롱하면서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며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고 심판하신 것이 이런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앞에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본문 18~19절입니다. “18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이 말씀을 보면 청년 때의 기억이 납니다. 부산의 대신동에 서부교회라고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체제가 주일학교 중심입니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로 소문난 서부교회의 어느 할머니가 A4 절반 크기에 이 말씀을 기록하여 길거리에서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다른 내용은 하나도 없이 이 말씀만 인쇄된 것입니다. 그 분이 무슨 뜻으로 나누어 주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시대가 주님 앞에 눈물을 쏟아놓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눈물을 강처럼 쏟으라고 합니다.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에 여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웁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을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울고 있습니까?

 

본문 20~22절입니다. “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21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내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나이다 주께서 주의 진노의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륙하셨나이다 22 주께서 내 두려운 일들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 때 무리를 부름 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나이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에 여인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이것은 북 사마리아 성이 에워 쌓였을 때에도 일어난 일입니다(왕하6:29). 아이를 잡아먹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주의 성소에서 죽었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길바닥에 엎드려졌고 처녀들과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습니다. 주의 진노의 날에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고 도륙하셨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진노가 이렇게 예루살렘에 쏟아졌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여호와의 심판입니다. 이 일이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이제 온 세상에 펼쳐질 것입니다.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예루살렘이 포위가 되었을 때에 그 어미가 자기의 자녀들을 잡아먹었다는 말씀을 보면서 오늘날 이 땅이 부모라는 자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무엇을 위하여 키우고 있습니까? 주님 오시는 그 날에 심판 받을 것들을 쌓아가도록 기르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예루살렘의 어미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본문 15~16절을 다시 봅니다. “15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예루살렘의 이 조롱과 모독과 수치가 누구에게 일어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그대로 일어납니다. 예루살렘이 망하고 조롱을 당하는 것은 자기들의 죄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왜 이런 조롱을 당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기에 이런 조롱을 그대로 다 받아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하여 사람들이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더니 너나 구원하여 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나 오늘 대한민국의 사람들이나 원하는 것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누가 그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 죄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음을 알고 눈물을 강물처럼 쏟을 자가 있겠습니까?

 

스가랴 12:10~14절입니다.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1)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10절에 그 찌른바 그를 앞에 각주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나를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른 사본에는 그를 이라고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찌른바 나를 바라보고라는 말씀은 우리가 찌른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서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통곡하게 되는 것은 오직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셔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모든 육체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는 그 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시고 부활하셔서 그 영을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시면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자기 죄로 인한 것임을 알고 애통하게 됩니다. 이렇게 애통하는 것은 사람이 조작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한 한 사람 한사람이 각자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기에 따로 따로 애통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의 영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애통과 간구하는 심령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