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마태복음 6:9-13 나라가 임하시오며 2010. 12. 15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오늘 볼 말씀은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누구의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이런 기도는 심판이며 재앙입니다. 자신의 나라가 무너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장소에 두 나라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하면 우리들 나름대로의 하나님 나라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는지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4:12-17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선포하신 첫 번째 말씀이 회개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리는 회개로 시작이 됩니다.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1:14-15절에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 선포의 시작이 갈릴리 주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서 시작이 된 것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로 봅니다. 이들이 이방인의 지경과 접하고 있기에 흑암의 땅으로 봅니다. 이 어둠에 있는 자들, 사망의 그늘에 있는 자들에게 큰 빛이 비춘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인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든 우리들이든 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하면 먼저 자기들이 상상하는 나라가 따로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그들의 나라가 회복되고 다윗과 솔로몬시대의 영광스러움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 본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그렇게 볼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간절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하여 기다려 왔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님이 너무나 싫어서 예수님을 죽여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인데 죽여 버렸다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들통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도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하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신데 타작마당의 타작을 말하면서 회개를 선포한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준비였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친히 그 하나님의 나라를 몰고 오셔서 선포하시고 이루어내시는 것이 예수님의 공생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에 회개하라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회개란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180도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회개하라고 하면 거저 윤리도덕적인 수준에서 반성하는 것으로 회개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지적으로 동의하고 정적으로 뉘우치고 의지적인 결단을 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회개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을 정당화하고 나의 생각과 계획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회개의 흉내를 내는 것이지 회개는 아닙니다. 그런 회개는 여전히 자기를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에서 본 말씀대로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은 나의 모든 삶의 가치관과 방향이 다 전복되어야 합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우리의 삶의 계획과 성공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다 무너져 내려야 하고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 그 복음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회개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주자가 유대인으로서 사울입니다. 예수 믿는 자를 잡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았던 사람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완전히 뒤집어진 것입니다. 그동안 귀하다고 여긴 것이 다 배설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면 이방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바울이 추구하며 달려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여긴 것이 전복되듯이 이방인인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며 꿈꾸던 것들이 다 전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성공이라고 여기며 행복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그것은 기존의 내가 주인이 되고 중심이 되어 나의 원대로 이루어지는 그런 나라입니다. 나라가 너무 크게 여겨지면 나만의 가정입니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합니다. 그것이 사이버공간입니다. 게임이나 인터넷서핑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합니다. 자기 집착에 붙들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우상의 제단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란 자기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죄라고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이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복음인데 그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누가 세상에서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가 잘 되기 위한 반성은 할 수가 있지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은 인간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인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기도를 자기 백성들에게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 완성이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다 이루심을 자기 백성에게 적용시키시는 것입니다. 그 적용의 결과가 성도에게 나타나면 자기 삶에서 전복이 일어납니다.

 

전복(顚覆)이라는 한문자를 보니 꼭대기와 정수리를 말하는 전자에 뒤집어지고 반전되고 무너지고 망하는 복자입니다. 그동안 내가 진리와 생명이라고 여긴 모든 것들, 내가 가장 귀하다고 여긴 것들이 무너지고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회개를 잘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하라는 것이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의 목표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실패하면 무언가 자기의 잘못을 생각하고 벌충해 내는 식으로 회개를 말합니다. 그런 회개란 결국 자기 야망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이지 자신의 삶의 방향이 뒤집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인간이 스스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12:28-29절을 봅니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는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가 아니냐며 놀랍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귀인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선 29절을 보시면 사람이 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보다 강한 자가 사람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결박하여야만 그 집의 세간을 강탈하여 나오듯이 예수님이 사탄을 결박하여야 사람을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성령을 힘입어 이루어내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어떤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한다고 하여도 사단의 손아귀에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여겼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일순위로 들어갈 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생각은 마귀가 심어준 나라였습니다. 인간의 행함의 능력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그런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경쟁하여 앞서는 자가 다 차지하는 세상의 원리를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의 나라로 착각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여야 한다면서 하나님 나라 운동이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런 운동들이 바리새인들의 사고방식 이거나 제국주의의 정복욕과 다름이 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예언한 이사야서의 한 곳을 봅니다.

 

이사야 11:1-9절입니다. “봉독” 1-5절에서 메시아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 즉 다윗에게 언약하신 영원한 왕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공의로 정직으로 심판하십니다. 이렇게 통치하시면 어떤 나라가 되는지를 6-9절을 보시면 그림처럼 펼쳐내고 있습니다. 이리와 어린양, 표범이 어린 염소,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함께 거합니다. 즉 해함과 상함이 없는 나라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의가 있고 즐거움이 있고 평강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공산주의가 만들어냅니까? 자본주의가 만들어냅니까? 사회주의가 만들어냅니까? 민주주의가 만들어냅니까? 인간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나라를 아들의 나라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1:12-14절입니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가 흑암의 권세아래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곳에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복을 받기를 바라면서 그 결과가 영원한 형벌의 나라인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런 우리를 건져 내셔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속량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나라는 스스로 들어갈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피의 공로로 들여놓아야만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자들이 바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귀하게 여긴 것이 배설물이며 해가 된다고 여겼습니다. 이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는 곳이 로마서 14:17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율법을 따라 무엇을 먹고 못 먹고 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11장에서 보았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가지가 통치하게 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더 이상 해됨과 상함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의 관계가 없어집니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즐거움이 있는데 여호와를 경외함이 즐거움이 됩니다. 또한 의로 통치가 되기에 평강이 있습니다. 세상에 평강이 없는 이유는 의로 통치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갖 불법과 불의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는 자가 예산을 편성하고 강제로 밀어붙이니 겨울에 결식아동이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 예방접종에 대한 비용이 날아갔습니다. 이것이 장로가 대통령으로 있는 이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여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뿐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은 자기들이 속한 단체만이 진리가 되고 살아남아야 하고 승리하여야 한다고 하는 자기중심적인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자기주장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고 왕이 되어 다스리는 것을 환영하고 기뻐하는 나라입니다. 지난주일 낮 결론부분에서 다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겨자씨의 모습, 가루 속에 있는 누룩,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습니다. 이런 나라는 주님께서 보여주셔야만 보이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본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여도 이 나라가 좋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더욱 사모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