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마태복음 6:9-13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2010. 12. 29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연말이라 연하장들이 옵니다. 대통령 내외의 사인을 하여 이 메일로 오고 창원시장은 근하신년의 카드를 보냅니다. 그 사람들이 저를 알아서가 아니라 단지 목사라는 이유로 보냈을 것입니다. 목사라면 몇 사람이라도 교인들이 있을 것이니 그들에게 인사를 함으로 무언가 영향력을 주려는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연하장의 끝은 거의 동일할 정도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에 만복이 깃들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인사를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만복이 주어지고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고 합니다. 기원(祈願)한다는 것은 빌고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위하여 기도하겠습니까? 단지 부하직원들이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고 자신은 사인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내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따져보는 이유는 사람들이 원하고 뜻하는 바가 하나님의 뜻과 다름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같은 본문의 말씀으로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시는지를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나의 뜻은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연하장에 당신의 뜻은 다 무너지고 실패하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연하장을 보내면 화를 내면서 찢어버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화를 내든지 말든지 간에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단 한 번이라고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이 언약한대로 이루어내시고 마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뜻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이 어떤 것인지 보겠습니다. 시편 103:19-20절입니다. “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20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께서 하늘에 보좌를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면 그의 천사들이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지난주일 낮에 보았던 시편 66:1절의 말씀도 동일합니다.

 

마태복음 5:34-35절입니다.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예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지키지도 못할 맹세를 하는지를 보게 하십니다. 그런데도 거창하게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을 거론하면서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며 예루살렘은 큰 임금의 성인데 어디로 감시 맹세를 할 수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흔히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 많은 서약을 합니다. 지난해 잘 못했든 것 회개하고 새해에 무엇을 하겠다면서 서원을 하고 봉투에 적어냅니다. 그냥 봉투가 아니라 돈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그들의 욕망과 목사의 욕망이 맞아 떨어지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빌고 비는 것은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라 오려는 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가족보다 자기 재산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예수님을 따라 올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조차 미워하여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런 예수님 앞에서 송구영신을 하면서 자기의 소원을 아뢴다고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피조물이며 죄인이라면 처분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되어야지 무슨 정성을 바치고 헌금을 바쳐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겠다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7-10절입니다.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 사탄이 쫓겨났습니다. 이 사탄이 옛 뱀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록이기에 시간의 순서대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보는 것입니다. 이 뱀은 천하를 유혹하는 자며 밤낮 참소하는 자입니다. 하늘에서 패배하여 쫓겨났으니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탄이 쫓겨난 장소가 땅과 바다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합니다. 이 사탄이 인간을 유혹한 것이 이미 에덴동산에서 있었습니다. 금지한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하면서 이것을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슨 뜻과 소원을 세워서 이루어내려고 하는 모든 것에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어 자기 영광을 받겠다는 것이 그 속에 다 숨어있습니다. 비 신앙인도 연말에는 자선냄비에 구제를 합니다. 흔히 보도 되는 내용들이 이름 없는 천사가 어느 동사무소에 쌀을 갖다 두었다는 말을 해 마다 듣습니다. 그 사람이 속으로 얼마나 뿌듯할까요?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자선을 하는 그 행위는 알리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 다 자기 영광으로 귀결이 됩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목이 터지게 외치는 교회들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속에 자기 영광, 자기 교회의 영광이 다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소원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용하는 구절이 빌립보서 2:13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말씀 한 절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어떤 소원이 나오면 그것을 하나님의 소원으로 알고 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송구영신 예배시간에 성경구절 뽑는 것도 아전인수 격의 해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서 소원을 두시는 것이 무엇인지 앞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지 않고 자기 소원을 하나님의 소원으로 같이 여겨서 사람들을 교회를 개척하기도 하고, 연말에 목회 계획 세우기 위하여 기도원에 기도하러 갔다가 와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성전을 지으라고 한다거나, 교육관을 지어야 한다거나, 주차장을 넓혀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노골적이면 더욱 선교에 헌신하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17절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자신을 전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제물과 섬김 위에 부어지는 포도주처럼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이 아니라 누구의 소원이 들어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바로 앞에 있는 빌립보서 2:5-8절을 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소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소원을 품고 삽니다. 어느 한 순간도 자기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오늘 분당에서 일 곱 분이 오셨는데 전화를 주시고 저의 설교를 잘 듣고 있으며 저를 보고 싶다고 이곳까지 온다고 하니 제가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가끔 전화도 오고 메일이나 댓글로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나 된 것처럼 착각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속을 제대로 아신다면 여러분들이 다 도망가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이 마음을 품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불가능한 일을 왜 이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태초에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빛이 있으라고 하시나 빛이 있었다고 하는 그 원칙을 하나님께서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그 원칙은 이미 창세전에 아버지의 아들의 언약대로 하시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자기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17-18절입니다.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항복하는 것은 이미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입니다. 이것의 결정적인 승리가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사탄이 쫓겨난 것은 예수님의 승리로 쫓겨난 것이기에 이제 땅에서만 사탄을 영원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지만 이 기도를 이루어 내실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늘 이 땅에 종말이 임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전쟁은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며 이 땅은 그 전쟁터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대한민국이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하여 열국의 각축장이 되었고 지금도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의 틈바구니에 있는 것처럼 이 지구 전체가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이런 전쟁터에서 무엇을 챙기려고 하거나 하나님께 무엇을 도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를 비워 종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어내신 이 공로를 성령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9-11절입니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늘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도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됩니다.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다 꿇게 됩니다. 믿는 자는 지금 무릎을 꿇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무릎을 꿇고 지옥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0절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3-14절을 봅니다. “봉독” 성도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습니다.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예정되어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것이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전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