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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1-7 여호와께 여쭈어 2010. 2. 10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오늘부터 사사기에서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전에 지난주의 내용에서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하였을 때에 이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사사기에서도 보듯이 아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다 정복하지 못하였는데도 왜 이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갈렙이 온전히 믿음으로 차지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믿음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45년 전에도 그 땅이 비록 강한 자들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4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믿음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사람들 중에 가장 큰 사람들이 살고 있는 헤브론을 자신이 공격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곳이 어떤 곳입니까? 창세기 23:19-20절입니다.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23:2절에 보시면 사라가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밭과 굴을 사서 매장지로 삼은 곳이 헤브론입니다.

 

창세기 49:29-32에서 야곱이 유언하기를 자신을 조상들이 묻힌 곳에 묻어달라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막벨라 굴인데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레아가 묻혀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단지 무덤자리만 산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서 그 땅의 일부라도 사서 무덤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갈렙이 이 지역을 정복함으로 전쟁이 그쳤다는 것은 직접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에 그들은 죽어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 역사함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5-33절을 봅니다. “봉독” 3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담대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 이루심안에 있는 자들이 바로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제부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승리를 미리 보는 자가 갈렙인 것처럼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세상의 온갖 대적이 가득하지만 하나님께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님을 알게 되면 세상은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렵다고 여기는 것은 자기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기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이미 세상을 심판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의 입장으로 보면 두려울 것이 없이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에게 여쭈어 봅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울 것인지를 묻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응답을 하는 것입니까? 구약시대에는 여러 모양으로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통하여 응답하시고 또 사사기에서는 사사들을 통하여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민27:18-21절을 봅니다. “봉독” 제사장이 우림의 판결로 응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었습니다. 여호와께 여쭈어보는 것에 대한 방법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제사장에게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응답이 주어지기를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합니다. 유다는 시므온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 시므온이 싸울 때에 유다가 함께 하겠다고 하여 그들이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갑니다. 여호와께 여쭈었고 여호와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승리입니다.

 

4절을 봅니다. 유다가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명을 죽었습니다. 이런 전쟁을 붙여주시는 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은 여호와께서 하시는 것이고 유다는 그 전쟁의 증인으로 동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싸워서 이긴 것은 결코 그들의 용맹이나 무기의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강한 왕인 아도니 베섹까지 잡아서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 버립니다.

 

왕이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다는 것은 칼을 잡을 수도 없고 몸의 균형도 제대로 잡을 수가 없기에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인들이 아도니베섹을 그렇게 엄지수족을 자른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었다는 것입니다. 7절을 봅니다. 아도니 베섹의 말입니다.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리고 자기의 식탁에서 음식을 줍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오니 그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아도니 베섹을 물리치는 승리는 여호와께 여쭈어 응답을 받고 올라간 것입니다. 이런 승리는 이미 갈렙이 헤브론을 차지하였을 때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그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을 하자면 우리의 기도라는 것도 여호와께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게 하시겠습니까? 앞에서 이미 보았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1-2절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마지막에는 아들로 말씀하시는데 이 아들이 만유의 상속자이며 모든 세계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엇을 이루셨고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알고 믿는 것이 기도의 응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서 부활을 증거 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예수님의 말씀들이 기억이 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지상에서 다 이루셨다는 십자가가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룬 것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다 이루신 것이 됩니다. 그 이루심이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기대하는 바를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기대란 선악과의 유혹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런 것의 끝은 나도 신이라는 것입니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두로 왕의 모습이며 바벨론의 음녀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루신 나라는 이런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의논한 것이 바로 별세에 대한 것입니다. 출애굽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출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성도가 기도하여 응답받는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지상에서 삶에 합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기도라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던져놓고 그 욕망을 자기가 거두어들이는 모습인데 이것을 기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라고 하는 것도 자기 욕망의 투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제대로 여쭈어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되는 방향으로 응답을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어긋나게 한 축복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자기의 뜻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기도요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기도가 잡혀지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이 세상에 함몰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함몰이 되어버리면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사기 2:1-5절을 봅니다. “봉독” 이미 주어진 땅을 제대로 정복하지 못하고 적당하게 타협을 합니다.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 남은 자들을 쫒아내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를 높여서 웁니다. 그래서 그곳을 ‘보김’이라고 합니다. 우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사기 2:6-10절입니다. “봉독” 여호수아와 그를 아는 자들과 그 전쟁을 아는 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여호와께 여쭈는 일도 당연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노략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 적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주시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2:15절을 봅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재앙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시고 맹세하신 대로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여호수아를 통하여 계속하여 반복된 말씀입니다만 이제 그들을 여호와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여호와께 여쭈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 어디에 물어보러 가는 것입니까? 바알과 아세라에게 물어보러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앙이 임하고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괴로움이 가중되면 무엇을 합니까?

 

그제야 부르짖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그 사사가 죽고 나면 또 다시 우상숭배를 합니다. 다시 괴로움을 당합니다. 다시 부르짖습니다. 다시 사사를 세워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니 사사가 한 사람 세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상숭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여쭈어보면서 사는 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쭈어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괴로움을 당할 때에 부르짖는 것보다 미리 여쭈어보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4:6-7절입니다. “봉독”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기도 시흥에서 지진이 나서 서울사람들도 놀랐다는 그런 소식을 들을 때 가볍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명절 스트레스도 가볍게 날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늘 기도에 힘쓰시면서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는 소식이 우리의 담대함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