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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50:6~10   바벨론에서 도망하라    2015. 2. 25

6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7 그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키며 그의 대적은 말하기를 그들이 여호와 곧 의로운 처소시며 그의 조상들의 소망이신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인즉 우리는 무죄하다 하였느니라 8 너희는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라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나오라 양 떼에 앞서가는 숫염소 같이 하라 9 보라 내가 큰 민족의 무리를 북쪽에서 올라오게 하여 바벨론을 대항하게 하리니 그들이 대열을 벌이고 쳐서 정복할 것이라 그들의 화살은 노련한 용사의 화살 같아서 허공을 치지 아니하리라 10 갈대아가 약탈을 당할 것이라 그를 약탈하는 자마다 만족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50장부터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내용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39장의 예루살렘의 멸망을 시작으로 주변나라의 심판과 멸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으로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합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은 온 세상의 멸망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멸망할 곳에서 도망쳐 나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도망쳐 나오는 자들이 남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임을 지금까지의 심판과 멸망의 말씀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은 아주 작은 소수임을 동시에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잃어버린 양떼로부터 시작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왜 잃어버린 양 떼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기에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다 목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양들을 돌보기는커녕 오히려 잃어버린 것입니다. 양들을 잃어버리게 한 것은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산과 언덕에 산당들이 있습니다. 참된 목자이신 여호와께로 이끈 것이 아니라 온갖 우상숭배로 이끌었기에 잃어버린 양 떼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책임의 중함이 목자들에게 있지만 이러한 거짓된 목자들의 말을 듣고 끌려간 그 양떼들도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5:30~31절입니다. “30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왕이 잘못하면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책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왕과 함께 선지자와 제사장까지 이렇게 타락을 하였지만 이것을 백성들이 좋게 여긴 것입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듯이 양떼들이 여호와의 말씀보다 이방의 풍요와 다산이 더 좋아 보이니 그런 말들을 듣고 따라 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산당과 저 산당으로 다녔지만 이것이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는 길이었기에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이제 이방인들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이 산과 저 언덕으로 양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23:1~8절을 봅니다. “봉독” 이미 자세하게 본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교회 부흥시키지 못하는 데 사용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양떼를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한 악행은 여호와의 말씀을 바르게 들려주지 못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악행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악행으로 양떼들이 흩어졌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를 세우실 것인데 그 목자를 맞이한 양들은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목자는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것이며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정의와 공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가 목자가 되심으로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할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 분의 일하심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9:35~36절입니다.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하신 것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길을 잃은 자들을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마10:6).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워주신다는 그 목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목자는 자기의 양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참된 목자이십니다(요10장).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찾아내시는 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아버지의 일입니다(요6:39).

본문 7절입니다. 거짓 목자들로 인하여 잃어버린 양떼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키며 말하기를 그들이 여호와 곧 의로우신 처소시며 그들의 소망이신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에 흩어졌고 그 흩어진 자들을 우리가 삼키는 것은 무죄하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에 이런 말을 하였고 바벨론이 남 유다에 이런 말을 하면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잡아먹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곧 의로우신 처소를 버린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양들의 처소여야 하고 소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품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한 것이 이스라엘의 목자들의 범죄였고 이러한 거짓된 목자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처소인 여호와를 떠난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흩어졌고 흩어진 양들을 사나운 이리들이 삼키듯이 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의 실제 역사에서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습니까? 기존의 교회들이 이단이라고 정죄하면서 이단을 방지하기 위하여 심지어 이단경계주일을 지키라고 공문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이단들에게 넘어가는 자들이 왜 이단들에 넘어가는 것입니까? 기존의 교회들이 바른 복음을 전하였다면 처음부터 종교인들은 교회로 몰려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죽는 것이 복음이라고 제시하였다면 과연 이 땅에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이라고 공개된 곳에서만 도망칠 것이 아니라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곳에서도 도망쳐야 합니다. 

본문 8~10절을 봅니다. “8 너희는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라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나오라 양 떼에 앞서가는 숫염소 같이 하라 9 보라 내가 큰 민족의 무리를 북쪽에서 올라오게 하여 바벨론을 대항하게 하리니 그들이 대열을 벌이고 쳐서 정복할 것이라 그들의 화살은 노련한 용사의 화살 같아서 허공을 치지 아니하리라 10 갈대아가 약탈을 당할 것이라 그를 약탈하는 자마다 만족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처소와 그들의 소망인 여호와를 버리고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여호와의 언약은 영원하시기에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하여 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할 바벨론에서 도망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 대제국이었던 바벨론은 매대 바사 제국에 의하여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의 바벨론은 무엇입니까? 바벨론이 어디인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지금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바벨론의 정신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0:1~5절을 통하여서도 보았습니다만 최초로 나타나는 바벨은 여호와를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는 모든 장소와 정신이 바벨입니다. 

오늘은 구약에서 바벨론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곳이 바벨론입니다. 갈대아 우르가 바벨론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비옥한 지역입니다. 세계의 4대 문명발상지 중의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불러내십니다. 문명 발상지는 다 강을 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은 강 하류가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만 농사가 되는 곳입니다. 인위적인 농사가 안 되는 곳이 약속의 땅입니다. 아브라함을 이런 곳으로 불러내셔서 바벨론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사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3:9~13절입니다.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라함과 롯의 재산이 많아지자 분가를 합니다. 선택권을 삼촌인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서 먼저 줍니다. 그러자 롯의 선택은 온 땅에 물이 넉넉한 요단 지역을 바라봅니다. 이곳은 소돔과 고모라의 성읍이 있는 곳입니다. 롯이 점점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에 이르러 소돔에 거합니다. 왜 물이 넉넉한 곳을 택할 까요? 예레미야 2:13절의 말씀처럼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린 자들은 땅의 물이 넉넉한 곳에 자리 잡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4대문명 발상지라는 곳이 다 강을 끼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강가인 바벨론과 강가인 애굽에서 나와야 하고 광야를 거쳐 천수답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가야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롯은 세상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벨론 정신입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가 바벨론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9:12~16절입니다.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바벨론과 같은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도망치라고 천사들이 말합니다. 그런데 롯의 사위들은 이 말씀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그러면 롯의 가족은 어떻습니까? 이들도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도망치라는 것이라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도망치라는 것이 같은 내용입니다. 천사들의 눈에는 멸망의 불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롯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에 지체합니다. 그러자 그 천사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둡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자비입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마지막도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바벨론에서 도망쳐야 할 이유가 분명하여 집니다. 바벨론이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정신이 바벨론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을 추구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이 다 바벨론입니다.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바벨론에서 도망치라는 이 말씀을 드리면 2001년 9.11테러 사건 이후에 카터 콜론 목사의 설교내용이 생각납니다. 전에도 한두 번 인용하여 말씀드렸는데 오늘 다시 도망치라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말씀드립니다.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 두 대가 돌진하여 건물이 무너지고 수 천 명이 죽고 수 천 명이 다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건물로부터 도망합니다. 그런데 무너지는 그 건물로 뛰어가면서 빨리 달려서 도망치라고 하는 소방관들과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설교하였습니다. 그러한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살기위하여 달리라고 고함을 지른 그 고함소리보다 적지 않게 하여 달라고 말합니다. 그 내용 중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진리가 길가에 버려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벗어나세요! 번영과 부와 성공에 집착하는 복음들로부터 도망가세요! 벗어나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자들로부터, 당신의 주머니를 예수의 이름으로 터는 자들로부터 도망치십시오! 자기 계발에만 집중하는 복음으로부터 도망하십시오!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이 영광 받는 교회로부터 도망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이여 도망하십시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마십시오! 성경이 없는 미국과 캐나다 교회에서 벗어나십시오! 십자가 없는 신학에서, 영혼을 돌이키는 말씀이 없는데서, 회개가 없는 데서, 예수님의 보혈이 언급되지 않는데서 도망치십시오! 죄가 편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도망치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에 당신의 삶에 죄가 있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악마들의 상에 앉아 있는 것일 겁니다. 정치꾼들로 가득한 강단에서 도망치십시오! 부정하고 순간적인 운동과 목적 없는 공허한 예언으로부터 도망치십시오! 사랑스러운 교회여 생명을 위하여 달리십시오! 서서 이야기와 농담을 하는 설교자들에게서 도망치십시오! 힘을 다하여 달리십시오!” 

일부분을 인용하였습니다만 달리라고 합니다. 도망치라고 합니다. 우리가 도망칠 바벨론을 부분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곳은 안전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교회를 소개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늘푸른 교회는 바른 교회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바른 복음을 전하는 곳이다. 우리 교회는 바른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있다는 곳에서도 도망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은 예수님께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찾아내십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느 교회에 속하였기에, 어느 교단에 속하였기에, 어느 목사의 가르침을 받기에 안전하다고 여기는 그런 곳이 바로 바벨론입니다. 그런 곳에서 도망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디로 도망가야 합니까? 

본문 7절을 봅니다. 여호와 곧 의로운 처소시며 소망이신 분에게로 피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벗어난 것이 범죄입니다. 우리가 거할 영원한 처소는 주님 안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처소는 사람이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만드셔서 자기 백성을 그 안으로 들여놓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어느 교회, 어느 교단, 어느 목사에게 소속이 되었다고 안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른 교회와 다르다. 우리 교회는 이런 저런 일을 하지 않고 이런 저런 일을 한다는 것들이 기준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로운 처소를 누가 만드시며 그 처소에 들어간 자들은 어떤 자들인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5:17절입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바벨론만이 도망칠 바벨론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도 바벨론이며 애굽도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이나 바벨론이란 한 마디로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온 자들이 하나님의 처소가 됩니다. 주님의 손으로 세우신 처소이기에 사람이 만들 수도 관리할 수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처소란 황금보석으로 꾸민 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시면 성령을 보내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더 이상 사람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고 그의 기름 부으심이 그를 가르칩니다(요일2:27). 이런 자들은 자신이 주 안에 주님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요14:20).  이런 자들은 날마다 주안으로 피하여 들어가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도망쳐서 십자가로 가는 모습은 세상이 볼 때는 죽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바벨론에서 사는 것이 사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이라면 바벨론에서 도망하여 세상의 죽음으로 보이는 십자가로 피하여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도망치라고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바벨론에서 이끌어 내어 그 십자가 안으로 끌어들이십니다. 그런 일을 당하실 때에 당황하지 말고 믿음으로 끌려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