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열왕기하 19:1-7 히스기야 왕의 기도요청 2010. 6. 30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7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히스기야 왕은 아하스의 아들입니다. 히스기야의 약력은 18:1-8절입니다. 25세에 왕이 되는데 유다의 왕들 중에 이만한 왕이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다윗처럼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다른 왕들은 감히 손을 대지 못한 산당들을 제거하고 그 때까지 우상으로 섬겨온 모세가 만든 놋 뱀을 부수어버린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였습니다. 여호와와 연합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으며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까지 쳐서 정복합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아주 악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런 악한 왕에게서 어떻게 히스기야 같은 왕이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베푸셨는가 하면 열왕기하 19:34 절입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언약을 따라 남겨주시지 않았다면 이사야 선지자의 선포대로 소돔과 같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입니다(사1:9).

 

이 당시에 국제정세는 강대국 앗수르가 남진정책을 쓰면서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애굽까지 치려고 하였기에 애굽과 함께 반 앗수르 정책을 쓴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사람 히스기야가 정작 앗수르가 공격을 해 오자 어떻게 하였는지 봅시다. 18:13-16절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합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이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에 앗수르 왕에게 내가 범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떠나 돌아가시면 왕이 내게 지우는 것을 부담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앗수르 왕이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내게 한 것입니다. 금 한 달란트가 35킬로그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금 1천 킬로그램이 넘습니다. 금 한 돈이 3.75그램이나 그 양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 많은 은과 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고 여호와의 성전 문과 자기가 기둥이 입힌 금까지 벗겨 앗수르 왕에게 주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이 좋다는 히스기야도 적의 침략 앞에서는 앗수르를 배반한 것이 죄를 범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고백할 내용을 인간 왕에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앗수르 왕이 물러가고 다시 쳐들어오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잠시 물러갔을지 모르지만 다시 쳐들어온 것입니다. 18:17-37절을 봅니다.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합니다. 그들이 히스기야 왕을 부르자 왕궁의 책임자들이 나갑니다. 랍사게가 히스기야 왕에게 말하라고 하면서 전하는 내용이 왕을 모독하고 여호와 하나님마저 모독하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시면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고 합니다.

 

네가 누구를 믿고 이렇게 앗수르 왕을 반역하였느냐고 합니다. 앗수르 왕이 보는 히스기야의 믿는 것은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애굽입니다. 그러나 그런 애굽은 상한 갈대지팡이라고 합니다. 마치 선지자와 같은 말을 합니다. 애굽을 의지하여도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애굽 왕 바로를 의뢰하는 모든 자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방의 왕 앗수르의 말이지만 히스기야 왕이나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월드컵 열기로 묻혀버린 뉴스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전시작전권 반환 연기입니다. 6.25전쟁 때 미국에 넘겨준 군사작전권이 이제 겨우 평상시 작전권을 반환받고 전시 작전권은 2012년에 넘겨받기로 합의하였는데 다시 3년 더 연기하여 2015년에 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이 애굽을 의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이 합의를 해주면서 다른 부담을 줄 것입니다. 쇠고기 시장이나 자동차 시장을 다시 협상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런 말씀을 보면서 오늘 이 나라의 믿는 다는 정치지도자들이 과연 무엇을 믿는지 다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이 또 하나 히스기야 왕이 쓸데없이 의뢰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지적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애굽을 의지하여도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여도 구원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앗수르 왕의 교만인 것입니다. 22절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고 예루살렘의 제단에서만 예배하라고 하였지만 그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그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겠느냐는 조롱인 것입니다.

 

랍사게가 온 백성들이 다 듣도록 유다말로 하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들이 아람말로 해 달라고 해도 성 안에 모든 사람이 다 듣도록 자기 왕이 보냈다고 합니다. 랍사게가 유다 사람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말합니다. 히스기야 왕에게 속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물러가게 하여 이 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앗수르 왕에게 항복하면 오히려 편히 살 곳을 마련하여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족과 신들 가운데서 어느 한 신이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적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인들 여호와가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지겠느냐고 합니다.

 

앗수르는 여호와의 몽둥이로 사용되어 북 사마리아를 함락시키면서 다른 민족들도 함락을 시켰는데 이것이 교만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아무른 말도 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들을 히스기야 왕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이 그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갑니다. 전에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금과 은을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만 그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적들은 포위하여 있고 이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여호와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려움이 생기면 금과 은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조차 다 바닥이 나고 어찌 할 수 없으면 흔히 하는 말로 두 손 들고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것도 다들 자기 살길을 스스로 챙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라는 것이 여호와를 의지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다른 것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십니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식으로 아무리 은과 금을 갖다 바쳐도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면초가, 풍전등화와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니 이제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이사야에게 어떻게 기도를 요청하는지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19:3-4절을 보시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지만 해산의 힘이 없다고 합니다. 랍사게가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 것 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말 때문에 꾸짖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왜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사야가 하나님의 선지자이기에 그에게 기도요청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자신의 낮추어진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응답을 받습니다. 그들이 나를 모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말라고 하면서 그들이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방법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소문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가 죽게 하겠다고 합니다.

 

8-13절입니다. 랍사게가 라기스에 있는 앗수르 왕에게로 가니 앗수르 왕이 립나로 가서 그곳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도 또 소식을 듣기를 구스 왕이 앗수르 왕과 싸우려고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소식들도 하나님께서 한 영을 보내어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 앗수르 왕이 다시 편지를 써서 히스기야 왕에게 보냅니다. 히스기야 왕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하면서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한 신과 왕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합니다.

 

이 편지를 들고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 들어가 편지를 펼쳐놓고 기도합니다. 15-19절입니다. 다른 나라의 신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이기에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였지만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천하만국의 홀로 하나님이시면 천지의 주재시기에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셔서 천하만국에서 주 여호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거저 우리를 구원하여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기도입니다. 히스기야 왕으로 하여금 이렇게 몰아가신 것은 이런 기도가 나오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에스겔 36:22-23절입니다.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지만 그들을 구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이름과 자기 영광을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내가 잘 되어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나의 이름과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으로서는 어찌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려갔을 때에 여호와의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은 힘이 있다면 그것을 붙드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물에 빠진 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데 이제 더 이상 잡을 것이 없어서 축 늘어져 버릴 때에 건지는 것입니다.

 

20절을 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면서 이사야를 통하여 응답을 주십니다. 앗수르 왕이 그렇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이 교만하였기에 그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31절에서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그리고 34절에서 다윗을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35-37절에서 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치니 군사 십팔만 오천이 다 송장이 되어 있고 앗수 왕은 혼자 도망가서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자기 아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그 강한 앗수르의 왕의 신이 가짜임을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도 성도들에게는 히스기야 만큼이나 답답한 일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으로 몰아가시는 것은 왜 일까요? 고린도후서 1:8-10절입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