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느헤미야 9:1-5 굵은 베옷을 입고 2010. 7. 28

 

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4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기도에 대하여 계속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라고 하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소원성취입니다. 자기의 소원을 신에게 빌어서 이루어 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소원만 빌어서는 신이 잘 들어주지 않기에 지극한 정성을 바치게 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종교성에 다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지극한 정성을 바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목욕재계를 하고 금욕과 금식과 철야와 특별 새벽기도회 며칠을 정하여 소원을 빕니다. 기독교나 불교나 성당이나 미신이나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원성취를 말하면서 교회나 기도원에 가보면 한 가지 더 언급을 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의 내용들은 세상에서 말하는 윤리나 도적적인 죄를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회개의 내용은 하나님 앞에서 잘 못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자주 회개의 주제로 삼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특히 구약의 말라기서를 인용하면서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는 말씀을 하면서 그동안 하지 않은 십일조를 다 하라고 합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저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십일조를 제대로 하여서 복을 받은 사람들을 이야기 합니다. 미국의 큰 부자가 되 사람들로 시작하여 한국에서 알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증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단을 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저 양산의 어느 기도원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후에는 법의 개념으로 하는 헌금은 없습니다. 받은 은혜대로 자원하여 하는 연보입니다. 그래서 연보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라고 하면서 오히려 탐심에 빠지게 만듭니다. 탐심이 우상숭배인데 회개하라고 하면서 돈을 사랑하게 하는 우상숭배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죄를 범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언약대로 70년 만에 조금 남겨주셔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겨우 숨을 돌릴만하니 다시 죄를 범하는 내용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때 회개하고 이방인과 결혼한 자들이 내어 보내기로 결단하고 서명을 합니다. 그러나 몇 사람은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일 후에 느헤미야도 바벨론에서 돌아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함께 사역하는 중에 일어난 회개입니다.

 

우선 8:1-8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일곱째 달 초하루에 일제히 일어나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율법 책을 가져오게 하여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읽게 합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특별히 만든 나무 강단에서 읽었습니다. 에스라가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나 율법에 대한 존경을 표합니다. 에스라가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니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레위인 들은 이 율법을 해석하여 깨닫게 합니다.

 

9-18절입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백성들이 죄를 깨닫고 웁니다. 그러자 에스겔은 오늘은 여호와의 성일이기에 울지 말라고 합니다. 음식을 먹고 단 것을 먹으라고 합니다. 준비 되지 못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합니다. 10절 끝에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합니다. 여호와로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그들이 읽어 들려준 말을 밝히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성대한 초막절을 지킵니다. 초막절은 출애굽 하여 광야를 지난 것을 기념하며 나무와 풀들도 임시 거처를 만들어 일주일을 보냅니다. 이 초막절동안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절기를 지키고 성회를 열었습니다.

 

오늘 본문 9:1-6절입니다. 8장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다시 그 달 24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여서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릎 쓰고 모든 이방사람들과 절교하서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합니다. 낮 사분의 일은 세 시간입니다. 세 시간 동안 율법을 낭독하고 세 시간 동안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를 경배합니다. 율법을 듣고 찔림을 받으니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4절은 부르짖고 5-6절은 찬양합니다. 회개를 하면서 그들의 죄를 고하고 또 여호와를 찬송하고 경배합니다.

 

7-8절입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고 호칭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특징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기에 주는 의롭다고 고백합니다.

 

9-15절입니다. “봉독” 출애굽의 과정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홍해의 기적과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시며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유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거룩한 안식일도 알리시며 그들의 굶주림 때문에 양식을 주시고 목마름 때문에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주께서 옛적에 맹세하시면 주겠다고 하신 땅에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기적을 직접 보면서 또한 구름기둥 불기둥가운데 있으면서도 거역합니다.

 

16-17절입니다. 15절 끝에서 그렇게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베풀어 주셨지만 우리조상들이 교만하여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거역하였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그들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진멸하여도 마땅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18절을 봅니다. ‘또’ 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 반역합니다.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였습니다. 그렇지만 19절에서 주께서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습니다. 전에 번역 성경에서는 주께서 연하여 긍휼을 베푸셨다고 합니다. 긍휼을 계속 베푸셨기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20-25절입니다. 주의 선한 영을 주셔서 그들을 가르치시면 만나가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물을 주시고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기르셨지만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늘 불평과 원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게 하셨다고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로 인하여 불평하고 음식과 물로 인하여 늘 불평과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런 회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대로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자족하면서 감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원망과 불평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제대로 알고 살아갑니까? 우리의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하여 은혜를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말씀을 통하여 점검받습니다.

 

22-25절입니다. 22절에서 ‘또’가 또 나옵니다.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주께서 열조에게 약속하신 대로 들어가서 차지하였습니다. 거역하여도 그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내신 결과물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을 차지하고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여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15절 끝에 ‘즐겼사오나’라는 말은 그 다음 말에 반역을 하였다는 것이 포함됩니다.

 

26-28절을 봅니다.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주를 거역하며 배신하였습니다. 심지어 주께로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을 주를 심히 모독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대적이 쳐들어오게 하셔서 환난을 당합니다. 환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면 주께서 들으시고 그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를 주어 대적에게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사시대 약 4백 년 동안 이렇게 하였습니다.

 

29-31절입니다.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참으셨습니다.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여 열방의 손에 넘기십니다. 그러나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회개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자기들이 한 것은 죄 밖에 지은 것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런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징계도 하셨지만 연속적으로 긍휼과 자비를 베푸셨기에 이만큼이나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기도하면서 이런 고백이 나옵니까? 자기가 그래도 지금까지 하나님께 어떻게 해 온 것을 주장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자기 죄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하나님이 갚으신다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32-33절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거역하였기에 환난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환난을 작게 여기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앗수르의 왕들이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의 왕들이 남 유다를 멸망시키면서 당한 환난을 작게 여기지 말아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그 환난을 받을 만큼 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다고 합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어려움은 당해도 우리가 무슨 잘못을 많이 했다고 이러시느냐고 항의를 하지 않습니까?

 

34-38절입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서도 우리가 한 일은 주를 섬기지 아니하면 악행을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서 종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이방 왕들이 우리를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여 우리의 곤란이 심하니 이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가기를 견고한 언약을 세워 인봉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회개의 기도를 하고 주께로 돌아가기를 언약하고 도장을 찍어서 인봉을 합니다. 그 도장 찍은 자들의 명단이 10장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다시 반역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다시 언약을 어기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는 방식으로 구원하십니다. 에서는 고난이 없고 야곱은 고난이 심합니다. 오늘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시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으로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그 언약의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말씀을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적용하십니다. 그러면 자기 죄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인 줄 알기에(요16:9) 날마다 회개하는 것은 날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