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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4:1~37 느부갓네살의 간증 2015. 7. 29

 

1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3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오늘 본문이 상당히 깁니다만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이기에 전체를 다 봅니다. 그리고 제목을 느부갓네살의 간증이라고 잡았습니다. 간증이라는 말이 너무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어 설교 제목으로 삼기에 거리낌이 있었습니다만 우리의 엉터리 간증들 말고 성경의 간증이 어떤 것이지 보려고 간증이라고 하였습니다. 대 제국 바벨론 왕의 간증이지만 이러한 간증이 성경에 기록인 된 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위한 간증이지 느부갓네살 왕의 위대함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나오는 간증들은 간증하는 사람의 대단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오래 전에 기독교 방송에서인가 간증수기를 공모하였습니다. 물론 상금도 걸었습니다. 그런 간증들을 모아서 책으로도 출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고백이나 간증들은 결코 간증한 사람의 영웅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1~3절을 다시 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통치하는 영역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천하에 거주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왕의 조서를 내립니다. 왕의 조서가 왕의 간증입니다. 왕의 조서의 형식이 평강을 전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자기에게 행한 놀라운 일과 이적을 알리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찬송을 하는 것이 3절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적과 능하심을 찬양하면서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를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이어지는 느부갓네살의 간증들에는 이방 신들의 영향을 따른 표현들이 있지만 그 중심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본문 4~5절입니다. “4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5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느부갓네살이 자기를 위한 왕궁과 왕비를 위한 건축물과 궁을 건설한 것은 몇 달 전에 EBS에서 바벨론에 대한 다큐 방송이 있었습니다. EBS에 들어가시면 재방송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막에 바벨론 강물을 끌어들여서 도시를 건설한 것입니다. 현재의 유물들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 당시를 복원하여 보여줍니다. 이런 것이 다 완공이 된 상태이기에 자기 집에 편히 거하며 궁에서 평강할 때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꿈을 꾸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세상의 힘과 영광의 정점이라는 곳에서 평안하게 살지만 한 꿈을 꾸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러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볼 때에 참 평안해 보입니다. 그 사람의 환경과 조건을 볼 때에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어 보이는데 무언가 두려움이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사람 자신이 자신을 봐도 별 염려가 없습니다. 평생 먹고 살 염려가 없을 정도로 재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는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을 본인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에 무당을 찾습니다. 이럴 때 무당들은 그 불안감을 해소하여 주겠다는 조건으로 복채(卜債)를 요구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맞아떨어지면 그 사람은 그 무당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목사라는 이름으로도 이런 짓을 합니다. 기도 해 준다는 사람들, 예언 기도 받으라고 하는 사람들, 기도의 권능이 있다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종노릇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밀려오는 염려와 두려움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강해 보여도 얼마나 연약한지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견딜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공황장애(恐惶障礙)의 고통은 아는 사람만이 안다고 합니다. 정말 숨이 넘어갈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공황장애의 공황(恐惶)이라는 말은 두려울 공자에 두려워할 황자입니다. 두려워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제국의 왕인 느부갓네살도 두려워합니다. 느부갓네살의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꾼 꿈을 해석할 수가 없어서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들을 부릅니다. 지혜자란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들 곧 무당들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이미 다니엘의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도무지 해결하지 못한 자신의 꿈을 알고 해석하는 일을 다니엘이 한 것을 압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 불에서 타 죽지 않은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왜 다니엘을 부르지 않고 갈대아 사람들을 부른 것일까요? 자신이 대제국의 왕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너무 의존이 되면 안 되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러한 일로 인하여 다니엘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으로 드러납니다.

 

본문 6~9절입니다. “6 이러므로 내가 명령을 내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더라 7 그 때에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가 들어왔으므로 내가 그 꿈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지 못하였느니라 8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 이름 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내가 그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되 9 박수 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

 

갈대아의 지혜자라고 하는 자들을 다 불러 꿈을 말하고 해석을 알게 하라고 하였지만 아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는 꿈을 말하고 해석하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꿈을 말하고 해석하라고 하여도 해석을 하지 못합니다. 적당하게 해석할 수가 없는 것은 다니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해석이 잘못되면 자신들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해석도 내어놓지 못할 때에 다니엘이 왕 앞에 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그 안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어서 어떤 은밀한 것도 네게는 어려움이 아닌 줄 안다고 하면서 자신의 꿈과 환상을 말합니다. 이방종교의 표현으로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게 있다고 하지만 다니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0~12절입니다. “10 내가 침상에서 나의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높이가 높더니 11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12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13 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14 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15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16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18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지혜자가 능히 내게 그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라이것이 느부갓네살이 꾼 꿈의 내용입니다. 이 일로 두려워하여 갈대아 사람들을 불렀으나 해석하지 못하였기에 다니엘에게 이 꿈을 해석하라고 합니다.

 

19절입니다. “19 벨드사살이라 이름 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다니엘이 왕의 꿈의 듣는 순간 이미 그 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놀라면 마음으로 번민합니다. 이 사실을 왕에게 말하면 왕이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그런 번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해석을 재촉합니다. 그때 다니엘은 이런 꿈과 해석은 왕을 미워하는 자나 왕의 대적에게나 일어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해석을 합니다.

 

20~26절입니다. “20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21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 22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23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24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26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거대한 나무는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그런데 그의 교만함을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를 베고 그 그루터기를 남겨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일곱 때를 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심판의 집행자는 순찰자입니다. 느부갓네살의 표현이지만 거룩한 순찰자는 천사들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을 이 순찰자가 집행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집행의 결과는 왕이 사람에게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라고 합니다. 쇠와 놋에 묶는다는 것은 정신질환자를 묶어두는 것을 말합니다. 왕이 권력의 정점에 도달하자 교만하여져서 광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왕을 묶어서 일곱 때를 격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다하고 나야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것을 깨닫고 나서 왕의 나라가 견고할 것이라고 합니다.

 

27절입니다. “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다니엘이 그 꿈과 해석을 하면서 왕에게 권면을 합니다. 다니엘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의 권면은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라고합니다. 대제국의 왕이 공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공의와 긍휼을 베풀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할 것이라고 합니다. 왕이 다니엘의 권면을 듣고서 공의와 긍휼을 베푼다고 왕의 평안함이 반드시 장구할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혹시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의 행위여하에 기계적으로 돌이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위대로 심판을 집행하여도 마땅하지만 혹시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그 공의와 긍휼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심판을 받습니다.

 

28~29절입니다. “28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왕이 꿈을 꾸고 다니엘이 해석을 하면서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공의를 행하거나 긍휼을 베풀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열두 달이 지났습니다. 열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바벨론의 왕궁 지붕 위를 거닐고 있습니다. 거대한 제국을 바라보면서 잔뜩 교만하여진 것입니다. 꿈과 해석을 통하여 경고를 하여도 그 교만함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이러함에도 우리도 다들 이런 느부갓네살 왕이 되려고 합니다. 이것을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성공이라고 고지를 선점하라고 합니다.

 

30~33절입니다. “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3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바벨론의 영광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나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는 말이 그 입에서 다 나오기도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기는 네 왕위가 떠났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서 본대로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왕의 광기로 인하여 신하들이 감금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거라사의 광인에게 쇠사슬로 묶어 둔 것입니다.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보면 광인들을 어떻게 감금하고 처리하였는지가 나옵니다. 참으로 이상한 방법으로 광기로 진단하고 감금을 합니다만 우리나라도 광기를 다스린다고 들판의 나무에 밤새도록 사람을 묶어 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병도 있다고 합니다. 이 질병에 걸리면 자신이 정말 짐승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같은 왕은 권력의 정점에서 누구도 그를 막을 수가 없기에 나오는 광기입니다. 로마의 네로황제와 같은 자들도 광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절대 권력을 누리게 되면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기에 미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력과 지위를 탐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서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다 미쳐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과 힘을 따라가는 자들은 다 느부갓네살 왕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신의 이름까지 불러가면서 이러한 힘과 권세를 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세상이 어찌 심판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에스겔 28:1~10절입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7 그런즉 내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8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할지라 9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들 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 10 네가 이방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다 하라

 

선악과 따 먹은 인간들의 모습이 다 이와 같습니다. 내가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까? 우리도 형편이 이렇게 되지 않아서 이 정도로 나오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사회적으로 가장 작은 자라도 그 보다 더 작은 자들에게 얼마든지 나는 신이라고 하면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할 수 없으면 지나가는 강아지를 발로 차거나 주차해놓은 차들을 부수고 다니는 것입니다. 때로는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 내가 신인데 누가 나를 무시하느냐는 반발이 나옵니다. 이러한 자들의 극대화가 시돈의 왕이나 바벨론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왕들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처벌하시면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34~37절입니다. “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한이 차서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미치광이가 된 것은 땅을 바라보고 땅을 정복하며 땅에서 자기의 권세와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이 모든 것은 나의 권세와 능력이라고 하는 그 모습이 바로 짐승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의 짐승 곧 사람의 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것이 666입니다. 이러한 짐승의 정점이 세상 최고의 영광이라는 자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짐승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세상의 사람들은 세상의 방법을 동원하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의 이름으로 이런 힘을 달라고 하고 있는 정말로 짐승의 나라입니다.

 

이런 짐승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짐승의 머리를 향하는 그 방향성들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끌어 가십니다. 짐승의 나라에서 보면 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영원히 사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증을 하나님께서 세상 최고의 제국이라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하여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진행하시며 교마한 자를 낮추신다고 간증합니다. 그러나 그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들은 다시 짐승의 길로 갑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길이 짐승의 나라에서 짐승의 머리가 되려고 가다가 하나님께 깨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이런 간증들이 있습니까? 솔로몬 왕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력과 지혜를 가지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임을 성경은 이미 다 밝혀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본다고 하면서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방향성이 세상의 영광이라면 이것은 전혀 간증이 아닙니다. 이런 간증은 오히려 짐승의 나라로 가게 하는 간증들입니다. 그런 헛된 곳에서 돌이켜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십자가로 이끌려 가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하신 그 언약으로 인하여 일어납니다. 그 언약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에 그 십자가로 마음이 끌리는 자들이 참된 간증 자들입니다. 바울 사도의 간증을 봅니다.

 

빌립보서 3:5~12절입니다.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자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귀하다고 여긴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함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 은혜가 있는 자들은 이 무더위 속에서도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이 은혜를 맛보는 휴가기간 이기를 소원합니다.